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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지역밀착형 기사/귀농일기(31)귀농인 김기용 님의 “축산단지를 꿈꾸며...”

  축산은 많은 분들에게 관심의 대상이다. 
현지인이나, 귀농귀촌을 희망하신 분들, 농업으로 소득을 창출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너나없이 한번쯤 알아보는 분야가 축산이다. 열정적으로 알아보러 다니다 얼마 가지 않아 열정이 식고, 더 이상 알아보는 걸 포기하고 만다. 다양한 규제 때문에 축산업에 뛰어들기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축산업에 뛰어들기가 만만치 않다. 
  
 담양에 정착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축산업에 종사하고 싶은 욕망이 마음 깊은 곳에 깔려 있음을 느꼈다. 사실 까다롭지 않다면 많은 이들이 축산업에 뛰어들 것이다. 초기 자본이 상당히 투자 되더라도 감수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행정적인 절차의 까다로움이 아니더라도 인근 주민의 동의조차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자주 듣다 한 가지 꿈을 갖게 되었다. 축산 단지. 바로 그것이었다.
  인근 주민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적하고 깊은 곳에 축산 단지를 만들면 어떨까. 산업공단을 만들 듯 축산단지를 조성하면 축산업에 뛰어들려는 분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언젠가는 단지를 조성하겠다고 계획을 잡았다. 단기에는 실천하기 어려운 계획이라 언제 목표가 실현될지 모르지만 일단 그런 꿈을 갖고 있다.

담양으로 귀농후 축산단지 조성을 꿈꾸며

 이런 꿈을 갖게 된 건 그동안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나는 줄곧 건설업에 종사했고 지금도 종사하고 있다. 블루베리를 재배하고 싶어 농지를 알아보러 다녔는데, 농지가 잘 나오지도 않고 나왔다 해도 감당하기 벅찰 정도의 가격과 규모였다. 내 형편에 맞는 농지를 구입하기 전까지는 당분간 건설업에 종사할 것이다. 어쨌든 지금 내가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전원주택 조성사업이다. 전원주택 조성을 하다 보니 축산 단지 조성의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축산 단지를 조성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나는 청주에서 나고 자라 결혼했다. 처가는 수북 오정리다. 장모님과 처남이 광주에서 사는데 언젠가는 귀농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직 실행하지 못한 것은 소득 때문이다. 귀농해서 마냥 놀 수도 없고, 오래 전에 지었던 농사는 가물가물하고, 몸이 따라주지 않을 나이가 걱정이라 어떤 농사를 지어야 할지 감히 결론을 내리지 못해 머뭇거렸다. 식구들이 축산업에 종사한다면 그런 고민이 해결되지 않을까 싶었다.
  한편으로는 나의 미래를 준비하고 싶은 저변의 욕구도 작용했다. 건설업은 한계가 있음을 느끼고 있다. 치고 올라오는 젊은 그룹과 거대 자본력을 앞세운 그룹을 상대하기란 계란을 바위에 던지는 것과 비슷하다. 죽을 둥 살 둥 노력해도 현상유지 조차 버거운 시기가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다. 계속 건설업에 종사하다가는 어떤 참혹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다. 그래서 귀농을 결심했다.
  
 담양으로 전입한 건 3년 전이었다. 
아내 고향이 담양인 것이 작용했다. 담양으로 이사 와 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교육을 받았고, 산림청에서 순회 실시하는 귀산촌교육도 수료했다. 농지를 구입하기 어려워 귀산촌 교육을 수료한 것이었다. 임야를 구입할 경우를 대비한 조치였다. 월산으로 귀농하신 모 선배와 가깝게 지내는데, 선배님의 조언을 들은 후였다. 선배님께서 자상하게 관심을 갖듯 주위에 따뜻한 분들이 많다.
  고향이 따로 있나, 정 붙이고 살면 고향이라는 노랫말이 꼭 내 마음을 표현한 듯하다. 처가가 담양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담양 자체가 좋았다. 담양에 오면 왠지 포근하고 따뜻하고 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맛집이 지천에 널렸다는 것도 좋았다. 도시와 다르게 조용했고, 만나는 대부분이 포용적이었다. 어디 가나 모난 분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담양에는 그런 분들이 별로 없었다. 그런 점에 반해 담양으로 전입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담양 생활은 만족스럽다. 도시처럼 빡빡한 일정에 갇혀 생활하지 않는 게 좋았다. 유유자적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그 어떤 약보다 가치가 높다고 보았다. 담양에서의 이런 삶을 가족에게 수시로 말했다. 내 말에 공감한 탓인지, 형과 여동생도 담양으로 귀농을 준비 중이다.
장모님과 처남, 형과 여동생이 언젠가는 담양에서 함께 살 것이다.
가족들이 미소 지으며 오순도순 사는 게 바람이다.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려면 적당한 수입이 있어야 가능하다. 귀농분야에서는 내가 가족보다 선배이니 내 역할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온가족(처남, 장모님, 형, 여동생) 이 함께 살 귀농 미래의 전원주택 조감도

 언젠가는 귀농할 가족을 위해, 축산업에 뛰어들고 싶어 하는 지인이나 예비 귀농자, 현지인들, 필요한 많은 분들을 위해서 축산 단지를 조산하겠다는 꿈을 반드시 실현하고 싶다. 월드컵 때 등장했던, “꿈은 이루어진다” 는 구절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리나라가 4강의 꿈을 실현했던 것처럼 나의 꿈도 실현될 거라 믿으며 미래를 준비한다. 하루하루의 삶이 도시에서처럼 다시 빽빽해질 듯하다./강성오 군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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