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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지역밀착형 기사/귀농일기(33)귀농인 이권신 님의 “자수를 개발하듯”

 

 귀농하기 전 서울에서 20년 이상 살았다. 
서울에서의 생계 수단은 자수였다. 20년 넘게 자수 관련 사업을 했으니 그 분야의 전문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개발한 자수만 해도 수십 가지다. 가수들의 무대 의상에 많이 사용하는 스팽글을 기계로 부착할 수 있게 방법을 고안 한것도 나였다. 그 전에는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했다. 올림픽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일릿도 내가 고안했다. 지금도 자수업계에서는 내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부지기수다. 기술력이야 누가 뭐래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수업계의 무분별한 난립과 컴퓨터와 기계의 발달로 기술을 발휘할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일감이 줄어든다는 것은 여간한 스트레스 요인이 아닐 수 없었다. 일을 계속하려면 최신 설비에 규모를 대폭 확장하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잘 된다는 확신이 섰다면 투자를 했을 텐데,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무래도 미래가 불투명하게 느껴졌다. 사양산업이 되어가는 자수를 붙잡고 늘어지기보다,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게 귀농이었다.
시골 출신이라 자연스럽게 떠오른 측면이 있었지만 고향이 그리워서 귀농을 먼저 생각했는지 몰랐다. 한번 귀농을 떠올리자 다른 일은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내 머리 속에는 9할 이상이 귀농 생각이었다. 귀농하려면 서울을 떠나야 하는데 문제는 가족이었다. 나야 고향으로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볍고 기대까지 되었지만 아직 학생인 애들과 애들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아내는 서울을 떠난다는 걸 부담스러워 했다.
  아들 하나에 딸이 둘인데, 아들과 딸은 대학에 재학 중이다. 늦둥이 막내는 다섯 살이라 아직 취학 전이다. 막내는 몰라도 둘은 졸업할 때까지 서울을 떠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 상황이라 귀농을 하기에 적잖이 주저했다. 하지만 귀농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은연 중 속내를 까발린 모양이었다. 아내가 당신이라도 먼저 귀농해서 자리를 잡으면 어떻겠냐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내 말 때문에 나는 큰 고민은 해결했음에도 귀농을 바로 실행하지 못했다. 아들 때문이었다.

  아들이 우리나라에 200여 명이나 밖에 없는 희귀병에 걸렸다. 혈액암이었다. 아들이 앓고 있는 탓에 바로 떠나지 못했다. 아들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했으니 치료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아들은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견디고 많이 호전되었다. 내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치료에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이대에 합격하고도 홍대를 택한 딸도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어 귀농하더라도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제야 나는 고향으로 터전을 옮겼다. 

자라 양식장

 고향이 그립고 농사가 그립고 흙냄새가 그리워 귀농했지만 현실은 팍팍했다. 농부에게 가장 종요한 건 농지인데, 내 소유의 농지라고는 100평도 되지 않았으니 한 뼘 정도에 불과했다.
나중에 합류할 가족을 위해 기반을 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땅을 사려고 해도 매물이 잘 나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논과 밭을 임대했다. 임대한 농지에 당장 재배 가능한 벼와 잡곡을 심었다. 벼나 잡곡만을 지으려고 했다면 귀농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라

  오래전부터 구상한 게 있었다. 사실 그것 때문에 귀농하고 싶었다. 나를 고향으로 이끈 여러 요인 중 하나. 그것은 바로 자라였다.
자라가 돈이 될지 어떨지 알지 못한다. 지인이나 서울에서 교류했던 분들에게 판매한다는 것이 한계가 있음도 안다. 그럼에도 나는 자라를 길러보고 싶었다. 자라는 농업이 아니라 내수면어업에 속한다. 그러므로 나는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자라의 비중이 농업보다는 낮다.

  나는 향후에 농지를 더 구입할 예정이다.
귀농창업자금을 지원 받아 농지를 구입하고, 부족하면 자비를 들여 시설하우스를 세울 것이다. 내가 안정적인 기반을 확보해야 가족이 부담 없이 귀농할 테니, 기반 조성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시설하우스에 무엇을 재배할지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보를 취득 중이다. 남들이 많이 하는 작목은 안정적인 판로가 있는 반면 부가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안정적인 판로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작물이 무엇이고, 우리 땅에 어떤 작물이 맞는지, 판로는 어떻게 되는지 꼼꼼하게 체크한 후에 재배에 나설 생각이다.
  
 자수를 개발하면서 재미와 보람을 느꼈는데, 작물을 공부하면서 비슷한 보람을 느낀다. 내가 기르고 싶은 작물에 대한 확신이 서면 자수를 개발하듯 나름의 재배법을 고안할 것이다.
그 방법이 어떤 것이든 노동력이 부족한 농촌 현실에 적잖이 도움이 될 것이다. 자수를 개발하듯, 농법을 개발해보고 싶다. 농부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을 것이다. 물론 가족의 귀농을 대비하여 농업기반을 튼튼히 구축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강성오 군민기자

※ 귀농인 이권신 님은 1965년생으로 2020년 무정면 덕곡길로 귀농했다.
(연락처 : 010-4745-8207)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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