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이야기(32)/담양의 6.25전쟁③

올해 6.25전쟁 71주년을 맞아 이번 담양이야기는 ‘담양에서의 6.25’는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다시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 글은 지난 2007년 담양향토문화연구회가 발행한 ‘이해섭의 담양이야기’에 수록된 <6.25와 담양>편에서 발췌한 것으로 6.25전쟁 발발 이후 담양에서 있었던 일들을 주요내용만 간추린 것이다. 따라서 내용은 당시 필자인 이해섭 님의 1인칭 서술이다/ 편집자 주.  

■ 담양경찰 순천에 집결, 적 보고도 총 한 방 못 쏘아
1950년 7월 23일 새벽 담양을 후퇴한 담양경찰부대가 무사히 부산에 도착한 경유는 당시 담양경찰서 사찰계에 근무하다가 6·25 후퇴 당시 부산까지 이동작전을 수행한 한(韓)모 순경 외 두 사람으로부터 취재한 생생한 당시의 기록을 다시 적어 본다.

담양경찰부대는 50년 7월 23일 오후 3시경 순천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전라남도 경찰병력이 모두 집결하여 있었다. 어느 상급 지휘관이 단상에 올라와 호령을 내린다. “우리는 광주를 탈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 남하하는 적의 진로를 차단 분쇄하고 계속해서 광주 탈환작전을 수행한다. 이 작전명령을 불응한 자는 무조건 총살형에 처한다.!”
사기는 떨어지고 장시간의 후퇴길에 시달린 경찰병력은 총살형이란 준엄한 작전지시에 모두 바짝 긴장하게 된다. 지시가 끝남과 동시에 중대 편성이 시작되었다. 중대원 모두는 120여명으로 3개 소대가 편성되고 중대장은 박노철 경위가 임명되어 그의 지휘 하에 움직이게 되었다.

50년 7월 23일 오후 5시경, 작전지시에 따라 순철관할 철도역부근 철로변에서 기차를 멈추게 하고 화물차칸에 몸을 실은 우리 부대원들은 광주방면으로 역진(逆進)을 시작했다. 약 2시간을 달린 기차는 화순군 관할의 어느 철도변에서 멈춰섰다.
어둠이 서서히 깔리는 저녁 7시경이었다.
박중대장의 지휘 하에 화순의 어디인지도 모르고 선두 가는 대로 따라만가던 대원들은 쉴새없는 강행과 부족한 식량 등으로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이날 밤 9시경 행군을 멈추고 부근일대에 잠복근무의 명령이 내려진 곳은 화순군 이양고개인 것 같다. 각 소대장들은 분대별로 이양재를 중심으로 지형 지물을 이용 배치하여 적의 남진(南進) 차단에 만반의 태세를 완료하였다. 이때 시간은 밤 10시경.
짙게 깔린 어둠, 너무나도 삭막한 분위기 속에 윙윙거리며 달려드는 모기소리는 저마다 대원들의 귓가를 스쳐가며 괴롭힌다. “짝! 짝!” 나도 모르게 내리치는 손은 나의 뺨을 후려친다. 여기 저기서 모기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음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느냐! 죽느냐! 생·사 양 길의 갈림길을 문득 생각하며 졸음도 모기의 공격도 무서운 공포감에 휘말려 눈이 번쩍 띈다. 이때의 시계바늘은 7월 24일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 순간 저 멀리에서 간혹 자동차의 불빛이 보이면서 살벌한 찬바람이 엄습한다. 그 찬바람을 타고 귓전을 때리는 것은 탱크소리와 차량소리, 함께 몰려오고 있다.
시간은 흐르고 생각만 해도 무서운 탱크소리는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공포로 혼미해졌던 정신을 다시 차려 광주 탈환의 일념만을 생각한다.

“지금 광주를 찾지 못하면 내 부모와 가족 그리고 나의 조국은 어떻게 되는가! 또 나는...!”
먼동이 밝아오면서 서서히 광주에서 순천방향 도로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탱크소리가 더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하더니 저 멀리 내려다 보이는 커브길에서 무언가 눈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순간, 먼지 속에서 모습을 나타낸 탱크와 차량행렬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적 발견!”
대원들은 저마다 “적을 죽이는 길이 나의 살길이다” 일전(一戰)을 각오하고 가슴을 조이며 불 켜진 눈동자를 남쪽으로 향하는 적의 행렬에 몰아 총구와 함께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애국심이 불타오르고 적개심은 끌어 오른다.
약 300m정도 아래, 그러니 우리들의 코밑에 그들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지나가고 있다. 발포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

“이제나 발포 명령이...?”
조마조마한 가슴, 방아쇠에 매달린 손가락, 식은땀이 온몸을 적신다.
발포명령만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대원들은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그 순간이 그때는 몇 시간을 기다린 것 같다. 그 발포명령!
그러나 발포명령은 끝내 내려지지 않았다. 소대장의 전달이 왔다. 박중대장이 감쪽같이 전지(電池)를 이탈해 행방불명 됐다는 것이다. 작전지휘는 공백 상태가 되고 부대는 부모를 잃어버린 미아가 된 신세가 되고 말았다./담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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