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 

  안녕하십니까? 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리는군요. 이런 날은 마을 주막에 나가 막걸리라도 한 잔을 마시며 더위를 식혀도 좋으련만 요새 마을 구판장은 거의 문을 닫았네요. 그래서 오늘은 백석의 「주막」이라는 시로나마 마음을 달래려고요. 백석 시인은 평북 정주 출생으로 한국전쟁 당시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1996년엔 작고했다는 소문이 있네요. 그러나 그는 『사슴』 등의 시집을 통해 짙은 향토적 서정성으로 북방정서를 노래했는데, 우리 민족의 유구한 삶의 애환과 풍물을 탐구한 시인입니다.

  호박닢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팔모알상이 그 상 우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잔이 뵈였다
  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
  울파주 밖에는 장꾼들을 따러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백석, 「주막」

  예전 시골에는 마을마다 입구에 주막이 있었습니다. 이 주막에서는 마을사람들이 필요한 몇 가지 식료품이며, 아이들의 군것질 과자를 팔기도 하고, 일하다가 으레 들러 두부전골에 뜨거운 소주며 컬컬한 막걸리를 들기도 했는데, 때로 앞마당에선 두부내기 윷놀이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마을은 마을회의를 주막에서 치르는 바람에 마을의 사랑방 구실도 톡톡히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주막은 마을사람들의 온갖 서사가 발생하는 곳이었으며, 때로는 육두문자가 남발하는 난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백석 시인의 <주막>은 1930년대 우리 시골의 주막풍경을 선연하게 그려놓은 시입니다. 호박잎에 싸서 먹는 맛있는 붕어곰이 있고, 부엌에 빨갛게 길든 팔각모양의 상이 있고, 그 상 위에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잔이 있으며, 잔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주모의 아들 범이가 있는가 하면, 울타리 밖에는 장꾼들을 따라와서 어미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는 그런 풍경입니다.
  물론 이 시는 어릴 때 겪은 주막을 형상화했기에 그곳에서 벌어지는 각종 민중서사는 생략되었지만, 당시 평안북도 방언을 시행마다에 적절히 사용하여 구체적 실감의 감동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1행의 붕어곰은 오래 곤 붕어조림을 말하고, 2행의 팔모알상은 테두리가 팔각모양으로 만들어진 상을 말합니다. 3행의 장고기는 조그마한 물고기를 말하며, 4행의 울파주는 울바자 혹은 울타리의 평안북도 방언이고, 엄지는 짐승의 어미를 가르킵니다.
  이처럼 방언의 활발한 사용으로 우리의 민속 풍물을 재현하는 데 애쓴 백석 시인은, 식민지의 획일화된 중앙집권문화에 대한 저항으로써 지역 민중의 피와 땀과 숨결이 밴 방언을 시 속에 풍성하게 사용했던 것입니다. 백석은 한국의 <문학세계>라는 잡지에서 최고의 시인 1위로 뽑힌 인물이기도 합니다.
  
  저는 시골생활을 오래 해놔서 요새도 어디 가다가다 가끔 주막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술을 완전히 끊은지가 한 3년쯤 되어서 주막 출입은 거의 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시골에서 농사짓던 1995년 무렵 주막 풍경을 표현한 시 한편이 있습니다. 다음의 「파안」이라는 시로 제 이름이 많이 알려지게 된 시이기도 합니다.
 
마을 주막에 나가서
단돈 오천원 내놓으니
소주 세 병에
두부찌개 한 냄비 
 
쭈그렁 노인들 다섯이
그것 나눠 자시고
모두들 볼그족족한 얼굴로 
 
허허허
허허허
큰 대접 받았네 그려 !
                                                             -고재종,「파안」 

  지금도 주막에서 벌어지는 일이겠지만 거의 30년 전 주막에서 벌어진 풍경을 표현한 시이지요. 당시 일을 하고 저물 무렵 주막에 나가면 이빨 빠진 노인 몇몇이 막걸리 값 단돈 1,000원 때문에 서로 입씨름을 하는 풍경을 종종 연출했습니다. 요새는 상업농으로 큰 부를 이룬 농민들이 많지만 전통적인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늘 살림에 찌들어 사는 게 농민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액의 막걸리 한 병 값이 힘들어 서로 “너는 왜 만날 얻어만 먹고는 한 병도 안 사냐?” 어쩌냐 하며 입씨름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그때 저는 거기에 단돈 5,000원 혹은 10,000원을 내놓습니다. 두부찌개 한 냄비에 소주 두어 병이면 노인들 몇몇이 그것을 실컷 나눠 자십니다. 그리고는  모두들 불그족족한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허허허, 허허허, 큰 대접 받었네 그려!” 라며 몸 둘 바 모르게 칭찬을 해대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소박하면서도 가슴이 뭉클한 일이지요. 단돈 5,000원의 막걸리 값에도 이토록 과분한 답례를 하는 노인들은 그 얼마나 순박한가요? 그 칭찬은 아무런 사심도 없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습니다.
  
 이 시가 발표되자마자 불세출의 시인 고은, 서울대 교수이자 시인인 오세영, 인기 시인 안도현, 이화여대 교수인 정끝별 시인 등 많은 시인, 평론가들이 이 시를 평가해주셨습니다. 어느 평론가는 “북에 백석이 있다면 남에는 고재종이 있다.”라고까지 극찬을 하며 백석의 「주막」과 저의 「파안」을 비교하며 문학적 평가를 내렸습니다.
  그들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예전 고향의 주막집 풍경이 선연하게 그려진다며 단돈 5,000원의 술대접에도 그토록 감사할 줄 아는 노인들의 심성이 곧 우리 민족의 원형 심성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런 풍경을 백석 시처럼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을 뽑아낸 직관으로 사람들 가슴에 직방으로 달려드는 시의 감동이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저는 아직도 그 감동의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지금은 ‘주막’이라는 말도 거의 사라지고 무슨 카페니, 소주방이니 하며 이름도 다 바뀌어버렸지만 우리들 마음 안에 소박한 인정이 넘치는 주막 하나쯤은 간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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