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을 보고 활용하는 방법을 배운 하루

 중복인 7월 21일 김현모 문화재청장이 소쇄원을 방문하셨다.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의 기획사업 중의 하나인 “소쇄처사 양산보와 함께 걷는 소쇄원”이라는 체험 프로그램의 관람과 더불어 명승 제40호인 소쇄원의 현황 점검을 위한 발걸음이었다.  손소독을 먼저하고 체온을 측정하고 정해진 소수의 인원과 함께 순차별로 소쇄원 내부를 탐방하는 매 순간 마다 각각의 공간에 깃든 의미를 조곤히 들으시며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이었다. 

 화사하게 피어있는 배롱나무가 갖는 상징성에 내포된 선비의 절제와 자기 수양이라는 특징, 대봉대가 단순한 봉황만을 기다리는 공간이 아니라 천하가 태평한 세월을 만들어 나갈 왕이 오길 기다리는 처사공 양산보의 꿈, ‘옥추횡금’이라 하여 바위에 거문고를 연주하는 모습이 연출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왜 거문고야 라는 질문. 그것은 가장 절친 한 벗을 일컫는 “지음(知音)”과 연관이 있고, 그 말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백아’라는 거문고 명인이 있었는데, 그가 거문고를 켜면 그 음안에 담겨진 의미를 가장 잘 알아주는 ‘종자기’라는 친구가 있어 이 둘 사이를 일컬어 “지음”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어느 날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더 이상 자신의 연주를 알아듣는 이가 없음을 슬퍼하며 거문고를 부셔 버렸다는 ‘백아절현’이라는 고사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상징한다는 것과 양산보의 생애와의 연관성 등을 설명하고 감응하는 자리가 되었다. 

 공간 하나 하나, 나무와 식물 하나하나에 내포된 소쇄원의 뜻은 넓고도 깊을 수밖에 없다. 청장께서는 문화부에 재직하던 시절에도 소쇄원을 깊이 익히고 감동했던 시간도 가졌었다. 그러기에 코로나19로 엄중한 시기임에도 일정을 변경하지 않고 방역수칙을 엄수하면서 이 시간을 가진 것이다. 1시간 정도의 탐방과 체험행사를 마치고 이 공간의 모든 것들이 보존되고 지속되는 방안을 찾아야 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그 가치를 공유하는 이런 프로그램이 갖는 현장성과 내용성을 유지해 주시길 당부한다. 

 이윽고 제월당 마루에서 담양군 관계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종중과 종손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셨다. 미리 연락이 닿았던 터라 소쇄원 보존에 당면한 현실의 어려움과 소쇄원의 영역이 지극히 제한적인 내원으로 머물고 가는 작금의 현황이 답답하기만 하다는 아픔을 말씀 하신다. 1980년대 조사된 소쇄원의 복원 계획과 90년대 말 작성된 복원계획 등이 있지만, 이제 다시 종합 복원계획의 용역을 하고 있는 상황임을 여쭈면서 조선의 민간을 대표하는 정원이자 사림들의 처소로서 소쇄원의 위상을 세워 나가는 중책이 후손에게 있음을 누구보다 깊이 아시는 분들이기에 그 간절함은 절박하고 간절했다. 
꽃과 나무와 돌과 물과 이끼와 석축과 담장, 건물, 아궁이, 연기 하나 하나가 자원인 곳이 소쇄원이란 것을 유전자 안에 담고 있는 문중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를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안스러웠다.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 명승인 소쇄원과 어울리지 않은 정비되지 않은 입구의 환경을 자꾸 질문하는 문화재청장을 뵈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책임이라는 것, 한 분야에 관통하는 전문가의 역할, 행정의 역할, 후손의 역할, 활용하는 이의 역할 같은 것이 모두 줄탁동시를 이뤄야만 해결되는 것이 이 지상에는 넘치고 넘친다는 것이다. 나라에서 벼슬을 주어도 나아가지 않았던 처사로 살아왔던 집안에서 저 공간을 가꾸고 보전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을 지를 알아주는 “지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소쇄원의 가치는 남도를 넘어 한반도와 세계속의 정원으로 우뚝 솟아날 것이다. 

 공식행사로 이어진 처사 밥상을 먹는 자리에서 ‘일동지 삼승’이라는 이 동네의 환벽당과 식영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내신다. 
지난 5월 환벽당의 경내를 긴급 발굴할 때 담당연구원이 4-5개 정도의 건물터가 나왔고 담장과 아궁이의 흔적이 보여지며, 분청사기와 백자편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묻어 두기에는 아쉬움이 커서 “성산계류 탁열도”를 자꾸 들여다보았었다. 그리고 그림에 등장하는 건물지가 바로 이곳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있었던 터였다. 
해서 연구원에게 다음의 절차가 무엇이냐고 하니, 조사 보고서를 올리면 문화재위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는데, 정밀 발굴의 필요성을 언급해 주시면 광주시의 결의를 거쳐 문화재청에 보고되고 발굴 결정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장님께 그 과정을 말씀 드리니 당연히 절차대로 하시면 되는데, 한 동네의 조선을 대표하는 명승이라는 사안의 중대성을 지역에서 함께 인식하고 밟아나가면 무엇이 문제겠느냐는 말씀을 주신다. 

 공식행사를 마치고 난 후, 뒷자리에서 한 선배와 얘기를 나누는데, 한 말씀 주신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문화부나 정부기관에 가면 한 두페이지의 요약된 보고와 사업의 필요성을 가지고 여기까지는 우리가 했는데, 막힌 곳이 여깁니다. 도와주세요 라고 하는데, 우리 전라도 사람들은 중앙정부에 올라올 때 자료를 몽땅 챙겨와서 정작 담당자나 사무관이나 과장의 출신지를 찾아 호구조사 하고, 조금이라도 인연이 닿으면 동생, 후배 하면서 정작 일은 꺼내지고 않고 “그냥 난 믿고 갈 테니 자네가 알아서 하소” 그라고 내려가는데 익숙한 동네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반나절이 아니라 55살의 인생을 살아버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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