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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지역밀착형 기사/귀농일기(35)귀농인 유승희 님의 “나는 농부의 딸”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중증환자가 있다면 가족이라면 누구라도 정상 생활은 거의 불가능하다. 
장기적으로 환자를 돌보는 이라면 남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가 더욱 어렵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보조해 생리적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거나 식사를 해결하게 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다. 사랑하는 가족일지라도 오래 보살피다 보면 짜증날 때도 있다. 이런 가족이나 중증 환자를 위해 국가에서 다양한 정책을 편다. 그중 하나가 활동보조다.
  
 나는 서울에서 활동보조를 7년 넘게 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참으로 힘겹고 어려운 환자들을 많이 보았다. 어린 아이부터 연세 지긋한 어르신까지. 환자를 보고 있노라면 나이에 상관없이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만이라도 손과 발이 되어주겠다고 늘 마음을 다잡았다. 그들도 나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내가 가면 가족처럼 반겨주었고 갈 때가 되면 누구보다 서운해 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한 탓에 나는 보람을 느끼며 활동보조에 전념했다.
  하지만 나는 뜻하지 않게 활동보조를 접고 담양으로 내려와야 했다.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께서 뇌출혈로 쓰러져 돌볼 사람이 필요했다. 다른 가족도 있지만 나는 내가 어머니를 돌보겠다고 선언했다. 남들을 간병하는 것보다 내 어머니를 간병하는 게 더 값지고 옳은 일로 판단했다. 딸이기에 나는 어머니 간병에 최선을 다했다. 활동보조를 한 경력 때문에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 생활을 2년 넘게 했다. 그러나 차도가 별로 없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던가. 그 말은 내게도 적용이 되었다. 효심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비싼 입원비에 비해 차도는 한없이 더디기만 했다. 그동안 모아 놓은 돈도 바닥날 지경이었다. 어머니만 간병하다가는 내가 굶을 것 같은 불안감이 은근히 자라났다.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내 살길을 찾아 나섰다. 어머니를 돌보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길. 그것은 다름 아닌 귀농이었다. 
어머니께서 농사를 지으셨기에 농지도 있었다. 

비트밭에서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놓고 나는 본격적으로 농사에 뛰어들었다. 유년시절 농사를 지은 추억 때문에 농사를 가볍게 생각하고 덤빈 것이었다. 무엇보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작물 재배에 나섰다. 콩이며, 비트, 토란, 야콘, 콜라비 등을 경작했다. 모종과 씨앗을 파종하고 은근한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거의 빈손이었다. 산 아래 쪽의 밭에 심은 콩은 새들이 모조리 먹어버렸다. 
새 때문에 콩이 남아나지 않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처참한 결과를 보고 망연자실했다.
  비트나, 토란, 야콘 등도 내다 팔기에 부족했다. 재배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코로나19로 어머니 면회가 제한되어 밭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많았는데도 판매할 정도까지는 생산하지 못했다. 그러니 가족들이 나눠 먹을 수밖에 없었다. 배추나 무도 심었지만 역시나 가족들이 나눠 먹는데 만족해야 했다.

  비록 첫해 농사는 실패했지만 값진 교훈을 얻었다. 어차피 고생할 거 돈 되는 농사를 짓고 싶었다. 어떤 작물이 내게 맞는지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블루베리와 표고버섯이었다. 블루베리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주위에 물어볼 문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표고버섯인데, 주먹구구식으로 재배할 수 없었다. 버섯 농가에서 적당히 배워서 하는 거보다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체험까지 한 후 뛰어들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강화도에서 교육을 받았고 경북 상주에서 체험까지 마쳤다. 
교육과 체험을 마치고 나니 재배에 자신이 생겼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자금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과감히 일을 저지르려 한다. 귀농창업자금이 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이에게 귀농창업자금은 더없이 큰 힘이 된다. 농지를 구입하여 버섯 재배사를 지으려고 귀농창업자금을 신정해 놓은 상태다. 선정 결과에 따라 시기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포기할 생각이었다면 애당초 농사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비트

  내가 절대로 농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자신하는 것도 활동보조를 한 경력 때문이다. 사람을 돌보는 일보다, 식물을 돌보는 일이 훨씬 스트레스가 덜 하다는 것을 몸소 느꼈으니 농사를 포기할 리 없다. 사람들에게 쏟았던 열성과 정열이 아니라도, 그것의 절반에 불과할 지라도, 내가 노력한 만큼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짧은 농사 경험으로 깨달음과 같은 큰 소득을 얻었으니 농사를 완전 실패한 것은 아니지 싶다. 
 
  나는 요즈막 매입 예정지를 날마다 드나든다. 내 땅이 될지 되지 않을지 알 수 없지만 그곳에 다녀오면 활력이 샘솟는다. 활동보조 때 느꼈던 보람과는 결이 다른 묘한 감동이 마구 차오른다. 이미 풍년을 맞은 것처럼 마음도 풍요롭다. 이런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농부의 핏줄을 타고난 듯하다. 어차피 농부의 딸로 태어났으니 농사에 전념하여 성공한 귀농인이 되고 싶다. 7년 넘게 활동보조를 했지만 작물을 상대로 한 활동보조는 평생 할 것이다. 지금 내 가슴에 가득한 생각은 오로지 그것뿐이다./ 강성오 군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1972년생 유승희 귀농인은 2017 대덕면 장동길로 귀농했다. (연락처 : 010-7342-7070)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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