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를 타고 물푸레나무 숲으로

  안녕하십니까? 연일 폭염과 무더위로 잠을 설쳤습니다만, 이제 입추를 맞 았습니다. 이런 때는 열차를 타고 먼 데 여행이라도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젊은 시인 이병률의 시 「장도열차」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병률 시인은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고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왔습니다. 시집으로 『끌림』이 있습니다.

이번 어느 가을날,
저는 열차를 타고 
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
편지를 띄웠습니다

5시 59분에 도착하였다가
6시 14분에 발차합니다

하지만 플랫폼에 나오지 않았더군요
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뺀 십오 분 사이
겨울이 왔고
가을은 저물 대로 저물어
지상의 바닥까지 어둑어둑했습니다
                                                                -이병률, 「장도열차」 

  중국 사람들은 대륙이 넓어서 몇날 며칠을 열차침대에서 자고 깨며 긴 시간동안 장도열차(長道列車)를 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나 친척들을 아주 잠깐 동안이나마 열차가 쉬어 가는 역 플랫폼에서 만난다고 합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본인의 행로를 알리는 전갈을 미리 보내서 말이지요. 열차도 사람들의 재회를 위해 역마다 15분쯤은 멈추었다 갑니다. 외국여행객들은 그렇게 사람들이 중간 역에서 서로 만나면서 우는 모습을 곧잘 목격한다고 하지요.

  이 시에서 시인도 대륙을 여행하면서, 당신이 사는 데를 5시 59분에 도착했다가 6시14분에 떠난다고 편지를 띄웠습니다. 그런데, 당신이라는 사람은 플랫폼에 나오지 않고 말았습니다. 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뺀 십오 분 사이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올 정도로 길고 긴 ‘마음의 시간’을 헤아리지 못하고요. 

  기다림만큼 가슴 애리는 일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황지우 시인은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에서, 카페에 앉아 너를 기다리는 동안 카페 문이 열릴 때마다 들어오는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결국 네가 아닌 것을 확인하곤 합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외롭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는 당신의 선택을 내가 선택할 수 없으므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기다려도 당신이 오지 않는, 그런 정도로 실망하지 않는 법입니다. 시인은 너를 기다리는 동안 차라리 내가 너에게 간다고 말합니다. 천 년 전부터 오고 있는 너를 만나러 내가 간다고 합니다. 

  이 시에서처럼 시에서 자주 쓰이는 열차, 기차, 기관차의 뜻을 정확히 알고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열차는 기관차에 객차, 화차 등을 연결하고 운전 장치를 설비한 차량을 말합니다. 그리고 기관차란 객차, 화차를 끄는 철도차량의 원동력이 되는 차량을 말하지요. 증기기관차, 전기기관차, 디젤기관차 등이 그것입니다. 그럼 기차는 무엇일까요? 이는 열차의 속칭으로 특히 장거리 열차를 일컫는 경우가 많습니다.  
  
  입추가 지났어도 폭염은 계속되는데, 휴가는 잘들 다녀오셨는지요? 이번 시는 그 휴가를 다녀와서 쓴 듯한 이상국 시인의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라는 시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상국 시인은 1945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창작과비평>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집으로 『집은 아직 따뜻하다』 등이 있습니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개울물이 밤새 닦아놓은 하늘로 
일찍 깬 새들이 
어둠을 물고 날아간다 

산꼭대기까지 
물 길어 올리느라 
나무들은 몸이 흠뻑 젖었지만 
햇빛은 그 정수리에서 깨어난다 

이기고 지는 사람의 일로 
이 산 밖에 
삼겹살 같은 세상을 두고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나는 벌레처럼 잠들었던 모양이다 

이파리에서 떨어지는 이슬이었을까 
또다른 벌레였을까 
이 작두날의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이상국,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이 시는 어떤 시원(始原)의 체험을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미천골이라는 골짜기의 물푸레나무 숲에서 일박한 새벽, 이파리에서 떨어진 이슬이 이마에 떨어졌거나 아니면 어떤 서늘한 벌레가 얼굴을 스치는 감촉에 ‘나’는 깜짝 놀라 깨어나 두리번거립니다. 날은 서슬 푸른 작두날처럼 맑은데, 아마 그 하늘은 밤새 개울물 소리가 닦아놓은 것 같습니다. 그 하늘로 일찍 깬 새들이 어둠을 물고 날아가니 숲 속은 얼마나 맑고 깨끗하겠습니까. 보아하니 나무들은 산꼭대기까지 자란 우듬지로 물을 길어 올려 온몸이 흠뻑 젖어 있고, 이윽고 햇살은 그 정수리에서 깨어나 숲 속에 부챗살 같은 빛을 조명합니다. 

  이기고 지는 그 무한 경쟁의 사람일, 욕망과 속도로 차오르는 그 삼겹살 같은 세상을 모두 산 밖에 두고 그야말로 물푸레나무 숲에서 한 마리의 벌레가 되어 잠들고 나니 이렇게 싱그럽고, 이렇게 푸르고, 이렇게 찬연한 시원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막 깨어난 처음부터 그런 보이는 현상들에 취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의 몸과 영혼은 새벽 숲과 하나가 되어 있기에 새삼 그것들에 취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이미 젖을 대로 젖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마에 떨어진 그 싱그럽다 못해 서늘한 이슬 한 방울이나 스쳐 지나간 벌레의 감촉을 “누가 나의 이름을” 부른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누가 ‘나’의 이름을 부른 것은 누가 ‘나’의 존재를 호명한 것 아니겠습니까. 누가 나의 이름을 부른 것, 이는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렸던 신성이나 불성 같은 기운을 느꼈다는 것이겠지요. 아니 누가 나의 이름을 부른 소리를 들은 순간 나의 존재와 정신의 본질이 저절로 환하게 열리게 된 것이겠습니다. 

  여기에서 ‘개울’이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은 골짜기에서 흐르는 작은 물줄기를 말하고, 우리 흔히 쓰는 ‘여울’은 강이나 내에서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을 가리킵니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