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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지역밀착형 기사/귀농일기(36)귀농인 김경이 님의 “천천히, 그렇지만 끝까지”
귀농인 김경이님

 

  나는 한 번 시작한 일은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런 성격이기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직접 체험해본 후 신중히 판단하여 결정한다. 귀농도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 결심했다. 사실 내가 귀농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귀농하게 된 건 남편의 권유 때문이었다.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근로 현장에 뛰어든 것도 남편의 어깨를 좀 가볍게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 슬하에 3남매가 있다. 남편이 혼자 벌어 3남매를 키우다 보니 경제적으로 버거웠다. 
자식이 셋이라도 어렸을 때는 잘 키울 것 같았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뒷바라지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과외는 시키지 못할망정 남들처럼 학원은 보내야 했다. 남편 혼자 벌이로는 감당하기 벅찼다. 그렇게 살다가는 미래가 아득해 보였다. 무엇이라도 해서 남편의 어깨를 가볍게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할 만한 일을 찾았다. 하지만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도 취업이 어려운데 주부가 취업할 곳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식당에서 서빙이나 설거지를 하거나, 마트에서 케셔를 보거나, 일용직으로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한 번 발을 들이면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라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리고 결심한 게 청소였다. 
  팀을 꾸려 청소 일에 뛰어들었다. 이사 나간 집이나. 새 아파트, 새로 이사하려는 아파 등 일감이 있으면 가리지 않았다. 청소한다고 깔볼 수도 있지만 남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일에 전념했다. 필요해서 뛰어들었으니 사실 남의 시선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설령 그런 시선을 느꼈다 할지라도 계속 했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일이었으니까. 나는 그 일을 8년 정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제안했다. 평생 청소를 할 수도 없는 일이니,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 말끝에 남편이 귀농을 들먹였다.

▲텃밭

  남편은 시골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대화 중 시골 이야기의 비중이 가장 높았으니 남편이 어떻게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모를 리 없었다. 남편은 시골을 동경하고, 귀농을 동경할지 몰라도 나는 사실 농사가 두려웠다. 남편이 귀농 이야기를 꺼내면 선뜻 맞장구치지 않은 것도 본심이 작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애들에게 들어가는 돈의 단위가 점점 커지자 마음이 흔들렸다. 앞으로 돈이 더 들어갈 텐데 청소만으로 뒷바라지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남편의 정년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나는 끝내 남편의 말대로 귀농하기로 했다. 마음은 굳혔지만 농사를 모르니 아득하기만 했다. 그때 남편이 또 제안했다. 미리 농사를 경험해보라고. 남편의 말에 따라 텃밭을 빌려 체험과 공부를 겸했다. 텃밭에서 야채를 키웠다. 야채를 키우다보니 잡초를 뽑는 게 가장 힘들었다. 틈만 나면 텃밭에 쭈그려 앉아 잡초를 뽑았다. 동작이 굼뜬 건 아니지만 빠르지도 않기에 천천히 했다. 그렇지만 끝까지 매달렸다. 뽑을 때는 징글징글하고, 허리도 아프고, 뭐하는 짓인지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잡초 없는 텃밭을 보니 뿌듯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귀농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내가 귀농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나니 남편이 지인에게 부탁했다. 
남편과 20년 이상 교류를 이어온 분이었다. 그 분은 탱자묘목을 식재해 판매하신 분이였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지 않았는데 애들 셋 키우느라 고생한다고, 어차피 귀농할 거라면, 자기가 도와줄 테니 탱자묘목을 하라고 조언했다. 그분의 말이 내겐 천군만마 같았다.

▲탱자묘목

남편 지인의 자문대로 작년에 처음으로 탱자묘목을 식재했다. 지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노하우를 아낌없이 제공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판매처까지 확보해 주셨다. 자신이 추천했으니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마음가짐이 은연 중 엿보였다. 덕분에 나는 비교적 수월하게 묘목관리와 판매까지 할 수 있었다. 그 경험으로 올해는 묘목 10만주를 식재했다. 내년 3월이면 모두 판매될 예정이니 벌써부터 마음이 풍족하다.
 귀농을 결심하고, 체험까지 거쳤지만 막상 귀농하려니 두려운 건 사실이었다. 묘목 밭에 잡초가 자라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은 성격이라 허구한 날 밭에 나가 잡초와 씨름할 때도 잘한 일인지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잡초가 말끔하게 제거된 밭을 볼 때면 괜히 뿌듯했다. 성취감이 가슴 가득 피어올랐다. 내 몸에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제 갓 귀농한 신참내기 농부지만 이제는 귀농을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이 동경하는 시골살이를 할 수도 있고 정년 걱정 없이 애들을 뒷바라지 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싶다. 이런 좋은 귀농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길 바란다. 아직은 초보 농부지만, 지인의 가르침을 뼛속 깊이 새겨 탱자묘목을 활성화 시키고 싶다. 누가 탱자묘목을 하고 싶다면 지인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묘목관리부터 판매까지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싶다. 그런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미래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니, 천천히, 그렇지만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강성오 군민기자
※ 1971년생 김경이 님은 금성면 덕성리로 귀농했다.(연락처 010-4601-0046)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잘 자라고 있는 탱자묘목
▲귀농하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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