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론광장 기획연재(소설)
담양뉴스 기획연재Ⅴ(소설)/추월산 길라잡이(제15화)강성오 작가

■ 1594년 3월
<15화>

 떡배는 힘 있는 목소리로 말하고 능주를 채근했다. 능주는 무거운 표정으로 산자락 길을 따라 내려갔다. 떡배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자기도 그런 은혜를 입었다면 어떻게든 갚으려고 머리악을 쓸 것이다. 능주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일은 꼭 떡배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워낙 위험한 일이라 누가 선뜻 나서 줄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능주는 그 누구에게도 부탁하지 않았다. 자칫 하다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 부탁할 수가 없었다. 떡배가 귀한 생향에 몸 둘 바 몰라 하는 걸 보고, 얼핏 스친 생각이지만 참으로 꺼내기 어려웠다. 그런데 떡배가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통에 말이나 해보고 싶은 충동도 일었다.
  
  “나리님의 많은 후손을 위해 석청을 따러 다닌다고 했잖여?”
  “그랬지예. 근데예?”
  “추월산 암벽에 석청이 있는디, 워낙 위험한 곳에 있당께. 밧줄도 긴 것이 필요하고, 칡넝쿨을 새끼처럼 꼬아갖고, 타고 내려가야 딸 수 있어. 너무 위험한디라 같이 따자고 누구한테도 말을 못 했당께.”
  “애오라지 그것 때문입니꺼? 그런 거라면 마, 걱정 꽉 붙들어 매이소. 산 타고 바위 타는 건 제 전문 아입니꺼? 제가 예? 부모님만 빼내고 바로 올 테니, 그때 함께 가입시더!”
  
 떡배가 호기롭게 말했다. 생향을 얻은 탓에 나온 입찬말 같지는 않았다. 능주는 떡배의 호언장담에 말을 꺼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떡배가 부산에서 언제 올지 모르고, 설령 오지 않을지라도 말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머지않아 질 좋은 석청을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능주는 가벼운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능주는 자기도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걸었다. 온 세상이 황금물결이었다. 길섶의 풀들이 능주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듯했다. 아니면, 생향의 향기에 매혹되어 활짝 웃고 있는지도 몰랐다.

  민경이는 바자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고샅을 살폈다. 아침이면 닭이 훼치는 것만큼이나 시간을 잘 맞추는 능주가 늦은 것이다. 올 시간이 지났는데, 능주가 오지 않아, 무슨 일이라도 생겼지 싶었다. 시묘살이 중에는 죽도 감지덕지라며, 오직 죽으로만 끼니를 때운 덕령이였다. 기력이 쇠잔하여 쓰러지셨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민경이는 안 되겠다 싶어 대문을 열고 어귀로 나갔다.
  
 능주가 낯선 남자랑 걸어오고 있었다. 저 남자 때문에 늦은 건가. 민경이는 남자를 자세히 뜯어보고 싶었지만, 외간 남정네에게 그럴 수 없어 스치듯 바라보았다. 넙데데한 얼굴, 쌍꺼풀진 눈, 날카로운 콧날과 가느다란 입술에 허우대는 건장했다. 얇실한 입술 때문일까. 남자에게 호감이 가지 않았다. 나리께서 제 때에 드실 수 없게, 능주를 늦게 도착하게 했다는 생각 때문에 남자가 미웠다. 남자와 어떤 관계인지는 몰라도 아침을 늦게 가져다 드리면 안 되는 거잖아. 이미 식을 대로 식었을 텐데 말이다. 민경이는 손잡이가 달린 사각 대나무 쟁반에서 식어가는 죽이 떠올랐다. 덕령이에게 보낼 생각에 정성껏 끓여 큰 사발에 가득 담아 놓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흐뭇한 표정으로 잠깐 보다가, 행여나 식을까 봐 즉시 보자를 덮어 놓고, 능주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헌데 낯선 남자랑 여유롭게 오고 있다니.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담양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