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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담양의 역사인물(35)삼은 전선생

담양의 역사인물(35)/고려의 충신 담양전씨 3형제 ‘삼은(三隱) 전선생’

삼은 전선생 유허비
삼은 전선생 유허비

 

 담양 전씨의 시조인 전득시는 고려 때 현량으로 천거된 뒤 벼슬이 좌복사 참지정사에 이르고 담양군에 봉해졌으며 후손들이 담양을 본관으로 삼고 뿌리를 이어오고 있다. 
전득시의 후손은 6세(世)까지 독자로 내려오다가 7세에 이르러 녹생, 귀생, 조생의 3형제가 태어났는데 이들이 바로 ‘삼은 전선생’ 이다. 

‘삼은 전선생’ 3형제 중 맏형인 야은 전녹생(1318~1375)은 고려 공민왕 때 정당문학,문하평리 등을 지내고 문신이면서도 무예에 뛰어나 ‘문무전재(文武全材)’란 칭호를 받았으며, 성품이 강직했다. 조선시대 서당의 주요 교재로 사용된 ‘고문진보(古文眞寶)’를 처음으로 들여온 인물이다. 
둘째 뇌은 전귀생은 삼사 좌윤과 밀직제학을 역임했으며 조선이 건국되자 두문동에 은거했던 인물이다. 두문동에서 나와 예성강의 벽란진을 건널 때 채귀하, 박담과 주고받은 “마침내 나라가 망했는데 숨은들 무슨 소용이리. 북문을 나와 서쪽 멀리 바다 섬을 찾아가네.” 내용의 시가 전해진다. 
3형제중 막내인 경은 전조생은 참지정사 벼슬을 지냈으며 정몽주에 견줄 만큼 도학(道學)에 밝았다. 그는 “학문의 요(要)는 호기심을 좇아 한없이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거두어 두는 것이니, 마음을 거두어 두는 공부는 하나도 경(敬)이요, 둘도 경(敬)이다”로 시작되는 글인 ‘경학문(警學文)’을 남겼다.

이들 3형제는 모두 문장에 뛰어나고 학문이 깊었으며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고려에 대한 충심을 보여 칭송을 받았다. 
둘째인 귀생은 고려 멸망 후 두문동(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것에 반대하는 고려 유신들이 모여 살던 곳)에 들어갔으며 막내 조생은 깊은 산 속에 숨어서 절개를 지킴으로서 ‘두문동 72현록’에 올랐다. 이후 세상 사람들이 이들 3형제를 가리켜 ‘삼은 전선생’이라 불렀다. 야은 전녹생, 뇌은 전귀생, 경은 전조생 이 3형제를 고려말 3은(三隱) 목은·포은·야은)에 견주어 ‘전씨 3은’ 이라고도 부른다.

죽녹원 인근 담양읍 향교리 소재 담양향교 앞에 ‘삼은 전선생유허비’가 있다./담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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