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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시평 【대숲소리】/ 달빛내륙철도 운항을 기다리며전고필 칼럼위원

 군청에 들렸더니 달빛고속철도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는 플랭카드가 펄럭인다. 
불현 듯 몇해전 인문학 도시 칠곡군에서 담양에 배움여행을 온 기억이 떠 오른다. 그때 이분들이 택한 장소는 소쇄원과 관방제림과 메타세퀘이어 가로수길과 죽녹원이었다. 40여분이 함께한 자리에서 각 공간의 조성 배경과 현재의 활용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칠곡분들은 역사적 자원이나 자연자원을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으로 활용하며 또 지켜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대단하게 바라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본인들이 사시는 고장과 비교가 되기 때문에 더욱 현실적으로 체감한 모습이었다. 

담양도 인문도시를 향해 희망의 걸음을 하고 있던 터라 서로 마주하고 이해하며 격려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몰라도 한편으로는 담양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샘솟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대전면의 행복마을 추진단에서는 칠곡군을 방문하여 이번에는 칠곡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인문도시 사업들을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칠곡 할머니들의 열망을 담아 진행했던 문해교실이 한해 두해 성장하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 나오고, 어록이 나오고, 그것이 진화해 할매 시집인 “시가 뭐꼬” 라는 시집이 전국의 문장가들에게 죽비처럼 다가가는 시간을 가진 것이 칠곡이었다. 

 자원을 이용하여 가치의 생태계를 만드는 담양이라면, 칠곡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최소화하고 서로를 응원하고 서로에게 비빌언덕이 되어주는 사람 중심의 도시로 성장하는 중이었다. 두 동네의 지리적 위치는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바로 인접하여 대구광역시를 끼고 있는 점이나, 광주광역시를 끼고 있는 점. 바로 대도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도시로서의 입지가 그러하다. 근교 농업을 통해 도시의 밥상을 책임지는 역할이나, 도시민의 활력을 증진하기 위한 드라이브 코스나 산책 장소, 외식 공간의 제공과 같은 것도 유사하다. 그럼에도 다름이 존재한 것이다. 

 사람을 찾는 칠곡과 자연을 찾는 담양의 다름에서 우리는 서로의 도시를 배워야 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이런 유사성 말고 또 하나는 담양향교 앞에 서 있는 선정비 중에 칠곡 출신의 이윤우 라는 부사의 공덕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사로 재임하던 시절 학문을 권장하고 선정을 베풀어 그 고마움에 답하기 위해 비를 세웠지만, 당대 담양사람들은 이윤우 부사가 임기가 끝나자 그에게 감사의 선물을 상례대로 드렸지만 간곡히 거절하는 바람에 드릴 수 없었다. 이에 다시 담양사람들은 이윤우 부사의 생가인 칠곡까지 찾아갔다. 추수철인지라 그댁의 가을걷이를 도와주고, 내친 김에 무너진 담벼락까지 쌓아주고 왔다. 이것을 잊지 못하는 집안에서는 그 담을 “담양담”이라고 명명하고 오늘까지 지켜오고 있다. 칠곡이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리고 또 두 해 전 대구를 지나 강원도 태백으로 가는 길에 봉화를 거쳐 가는데, 관광안내 표지판에 이몽룡 생가라는 글이 보이는 것이었다. 혹시 잘못 보았나 다시 가는데 또 표지판에 같은 글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 표식을 따라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다음을 기약했다. 소설속의 이몽룡이 어떻게 가장 깐깐한 양반 마을중의 하나라는 봉화해서 튀어 나왔지 라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런 저런 자료를 검색해 보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담양의 관방제림을 축조한 이가 담양부사 성이성인데 그는 봉화 사람이었다. 그의 부친은 남원 부사를 했었고, 그가 소년기에 아버지를 따라 남원에 있었고, 나중에 암행어사와 담양부사를 했었다. 담양부사 일 때 그는 영산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관방제림을 축조했던 것이다. 
성이성은 말년에 자신의 삶을 회고한 글에서 남원에서의 애틋한 추억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힌 것을 기록하고, 이것들이 알려지며 성씨 성을 가진 춘향과 이도령, 그 사이의 행간을 분석하고 알리바이를 대며 이몽룡의 현신이 성이성이라는 것을 알리게 된 것이다. 

 수많은 목민관들이 다녀갔던 담양이지만 이렇게 자취가 선연한 이들이 있음에서 칠곡군이나 봉화군이 가까운 곳으로 보이는데, 이제 그토록 갈망했던 동과 서를 잇는 고속철도가 등장하면 망설였던 방문의 발걸음이 한결 더 가까워 질 것 같다.
서로 역사를 들춰보고, 오늘 현장의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한결 더 이해할 수 있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데, 교통의 결절이라는 난제와 이를 교묘히 이용했던 정치 세력 때문에 재금난 현실이 기적 소리와 함께 사라져 갈 날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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