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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지역밀착형 기사/귀농일기(39)귀농인 조창원 님의 ‘나는 장아찌 전승자’

 

 내가 담양으로 내려온 것은 장아찌를 전승하기 위해서였다. 
담양으로 오기 전에는 군산에서 살았다. 장아찌를 업으로 했는데 혼자 하다 보니 힘에 겨웠다. 장아찌를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가 한다면 좋을 것 같아 공장을 넘겼다. 공장을 인수하신 분이 담양 분이었다. 그 분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때까지 기술 자문을 하려고 담양으로 내려온 것이다.
 고향과 삶의 터전인 군산을 떠나 낯선 담양까지 오게 된 것은 오직 장아찌 때문이었다. 장아찌만 아니었다면 굳이 담양으로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육십이 넘으면 삶을 즐겨야 하는 황금시기가 아닌가 싶다. 아직 젊음이 남아있고 친구도 많기 때문이다. 조금 더 지나면 놀고 싶어도 함께 놀 친구도 줄어들고, 체력도 부족해 마음처럼 즐길 수 없을 것이다. 
담양으로 오기 전, 군산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장날 같았다. 매일 만날 친구가 지천이었고 지나가다 만나도 한잔 하자는 지인이 많았으니 마치 장에 나간 것처럼 나의 하루하루는 활력이 넘쳤다. 신선놀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군산을, 장아찌가 아니었다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장아찌에 관심을 건 몇 가지 사업을 실패한 후였다. 
마냥 놀고만 있을 수 없으니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장아찌였다. 군산은 울외가 많아 울외로 장아찌를 담으면 좋을 듯했다. 어떤 울외로 장아찌를 담아야 경쟁력이 있을지 생각했다. 결론은 토종 울외였다. 개량 울외는 군산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으니 경쟁력이 없을 게 뻔했다. 문제는 토종 울외를 재배하는 농가가 없다는 점이었다. 나는 토종 울외를 재배한 노인 분들을 찾아 다녔다. 만난 분마다 씨앗이 없다고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러다 한 분을 만났다.
 씨앗이 있기는 하지만 20년도 넘었을 거라고 했다. 발아가 될지 어떨지도 모르겠다고 자신 없어 했다. 워낙 귀한 씨앗이라 그거라도 나는 감지덕지였다. 어쨌든 그 분이 씨앗을 건네주었다. 신문지에 돌돌 말아 장롱 깊이 넣어둔 흔적이 역력했다. 신문지가 노랗게 바래 있었다. 몇 번이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왔다.
 워낙 귀하게 얻은 씨앗이라 파종하기 전에 다양한 정보를 습득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종합해 심혈을 기울여 파종했다. 파종 전에는 일말의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걱정이 앞섰다. 일주일이면 싹이 고개를 내밀 줄 알았는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너무 오래된 씨앗이라 싹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관리했다. 그랬더니 보름 후에 싹이 돋기 시작했다. 희망이 다시 솟구쳤다.

토종울외 재배를 위해 담양에 터를 잡고 정착

 내가 얻은 씨앗은 50여개였다. 50여개를 전부 파종했지만 싹이 돋는 건 단 두 그루였다. 그 싹이 잘못되면 토종 울외를 영영 구할 수 없을 것 같아 더욱 애지중지 했다. 마치 신생아 다루듯 지극 정성을 기울였다. 그런 정성에 보답한 탓일까. 드디어 열매를 맺었다. 하지만 단 두 개 였다. 나는 그 중 큰 열매에서 씨앗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 해 씨앗을 파종해 새로운 씨앗을 확보했다. 씨앗이 넉넉하니 마음이 놓였다.
 토종 울외로 장아찌를 만들어 경쟁력을 확보해야 했으니 씨앗이 외부로 반출되는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분에게 부탁을 하지 못하고 손수 농사를 지었다. 혼자 3만평 정도를 지었으니 몸이 배겨나질 못했다. 그럼에도 토종 울외로 만든 장아찌를 생산한다는 생각에 버틸 수 있었다.
 토종 울외로 만든 장아찌는 성공이었다. 혼자 하는 것보다 규모를 갖춘 업체에서 하면 더 크게 성공할 것 같아 공장을 내놓았는데 담양 분이 인수하였고, 나는 그분에게 몇 년 간 자문을 해주려고 담양으로 이사 왔다.
담양에 터를 잡으니 뜻하지 않은 친구가 생겼다. 양이와 옹이였다. 둘은 원래 길고양이다. 녀석들이 나의 외로움을 알고 찾아온 것인지 배가 고파서 찾아온 것인지 알 수 없으니 어느 날 우리 집에 어슬렁어슬렁 방문했다. 길고양이면 사람을 두려워 할 텐데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치 오래 전부터 가깝게 지낸 것처럼 살을 몸을 부비기까지 하였다. 녀석들하고 살아갈  팔자인가 보다 생각하여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양이와 옹이라고.
 
 나는 지금 시간이 넉넉한 편이다. 마냥 허송세월을 보내고 싶지 않아 죽순을 장아찌로 만들고 있다. 순수한 연구 목적이다. 이 좋은 재료로 어떻게 만들면 많은 분들의 입맛을 사로잡을지 호기심을 가지고 연구 중이다. 연구에 성공한다 해도 판매는 않을 것이다. 만약 내 생각대로 훌륭한 장아찌가 탄생한다면 담양으로 이사 온 보람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더 클 테니까 말이다./강성오 군민기자
※ 조창원 귀농인은 2020년 월산면으로 귀농했다(연락처 : 010-8581-8862)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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