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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4주년 기획연재Ⅲ(소설)/소쇄원의 피로인(제32화)양진영 작가

<제32화> 탈출전야

 이튿날 아침. 몽인과 유명환은 이도와키 등 가마터에 남은 도자기를 죄다 배에 싣고 오사카를 향해 떠났다. 배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야 나중에 막상 탈출할 때 야스모토도 눈치를 못 챌 것이다. 또 자신들이 조선으로 도망치면 어차피 이 가마는 폐쇄될 터인데 구태여 도자기를 남겨둘 필요가 없었다. 오사카의 차 도구 상인에게 싼 값으로라도 처분해서 귀국에 필요한 노잣돈을 챙겨둘 속셈이었다.  

몽인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도자기를 배에 싣고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왜상들은 약삭 빠르게 움직였다. 그중 사카이의 호상인 카미야 가문이 차 도구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6대 당주이며 센리큐의 7대 민간인 제자에 속한 소탄이 승려 이름을 쓰면서 다인으로 행세하고 있어서 그 아들이 도자기 시장을 주물렀다. 그가 농간을 부렸는지 예전에는 몽인이 가져온 이도와키를 보면 환장했던 왜상인이 코빼기도 안 보였다. 몽인을 안달 나도록 해 헐값에 도자기를 차지할 속셈인 듯했다. 이삼 일이 지나도 얼씬거리는 상인이 없자 몽인을 호위해 온 산척패가 투덜거렸다. 오사카에는 중화에서 온 상인도 많아서 몽인은 산척패를 데리고 다니며 농담이나 해 댔다.  

“저 연보라빛 대접은 균자라 불린다네. 황금의 값어치는 정해져 있으나 저것은 부르는 것이 가격이지. 가마 속에서 천 가지 변화를 일으켜서 어떤 색깔로 나올지 아무도 몰라. 송나라 황제들은 저 도자기를 독차지하고 싶어서 해마다 서른 여섯 개만 만들도록 했어.” 산척패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몽인은 홀로 주절거렸다.  

“저기 토끼털 무늬가 고드름같이 맺힌 청흑색 그릇은 휘종황제가 아꼈다는 토호잔인 듯하구먼. 저것은 투차(차 맛 겨누기)놀이에서 으레 이겨서 비슷해 보이는 천목 찻사발이 일본 다도를 이끌었던 것이야.” “저것은 값이 얼마나 되오이까?”모두 침 먹은 지네인지라 막내인 가야지가 마지못해 말대답했다. 만 이틀간 몽인의 휘장에는 개미 새끼 하나 볼 수 없었다. 명나라 상인들 좌판은 물론이오, 마구잡이로 쌓아 둔 일본 도자기 앞에도 왜상이 줄을 섰는데.  

“글쎄. 우리들 재산을 죄 모아도 한 개를 못 살 것이야.” “배곯은 사람이 지천에 널렸는데 돈이 넘치는 놈은 저런 흙덩이 사발을 임금님 모시듯 하고 뻐기다니. 에라, 육실할 놈아, 퉤퉤.”다방동이 가래를 한 움큼 뱉었다. 뙤약볕 아래에 종일 서 있는데 그릇이 안 팔리니 화가 날 법했다.  “왜인이 불티나게 사는 저 명나라 백자는 몇 푼이나 될까나?”좌준까지 넋두리하듯 중얼거렸다. 오후 내내 미간을 찡그린 그가 측은했는지 몽인은 어깨를 토닥거렸다.  

“청화백자매죽문호는 그대가 받는 년간 소작료보다 더 비쌀 것이네. 그 옆에 청화운룡문호는5년을 일해야 살 수 있을 것이고.” “하면 저것보다 더 귀하다는 우리 사발 앞에는 왜 놈들이 얼씬도 않는 것이오?”좌준은 앵돌아진 낯으로 이도와끼를 가리켰다. 그 옆에는 왕주발, 갱그릇, 술잔, 향로, 화병도 널려 있다. 글컹거리는 말투가 심사를 긁었나 보다. 평소에 젊은이치고는 느긋한 몽인이 감때사납게 쏘아붙였다. “내사 그것을 어찌 알겠어. 궁금하면 가서 직접 물어보게.” “도편수님, 왜놈이 대놓고 우리를 무시하는 데는 흉계가 있을 법하오. 속 시원하게 말 좀 해보시오.”분통이 터진 다방동이 씩씩거리자 유명환이 몽린을 대신해 답했다.  “왜인은 원래 간계에 능한 자들이야. 보나 마나 우리를 따돌려서 이도와키를 헐값에 뺏으려는 수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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