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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대밭(田)과 대숲(林) 사이에 선 담양의 대나무박환수 칼럼위원

법정스님이 기거하셨던 송광사 불일암을 가다보면 대나무 숲길을 걷게 된다. 
고요한 산속 암자에 오랜 선각자는 왜 대나무를 심었을까. 양산보는 정원을 만들 때 왜 대나무 숲을 만들고 송순은 그 정원에 ‘맑고 깨끗하다’는 뜻을 가진 소쇄원(瀟灑園)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게 되었을까. 전쟁시 대피소인 고창읍성에 들어가면 맹종죽으로 만들어진 대나무 숲을 찾을 수 있다. 많은 대나무 중에서 죽도(竹刀) 죽창(竹槍)을 만들 수 있는 대나무를 키웠다는 것은 산속 암자에 심는 대나무 숲과는 또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국민들에게 ‘담양’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느냐고 질문을 하면 대나무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말한다. 아마도 관광코스로 개발하여 홍보한 효과가 컸고 결국 담양의 이미지로 각인된 것으로 생각한다. 
대나무는 전국에 걸쳐 자라고 있지만 산림에서 대나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다. 희소한 대나무의 25%를 점유하고 있는 담양군에서는 그래서 군목(郡木)으로 대나무를 지정하였나 보다. 대나무의 굳고 곧은 형태가 진실과 덕(德), 도(道)를 상징한다고 지정의미를 설명하고 있지만 담양의 대나무는 역사 속에서 우리 삶의 생계 수단이었고 방법이었다. 그래서 어릴 적 우리는 대나무 밭이라고 했고 대나무 숲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삶의 현장을 외지 사람이 봤을 때 신기하고 아름다웠을 뿐이었다.  

 2015년 담양에서는 세계 대나무 박람회가 있었다. 그리고 매년 대나무 축제를 열고 있다. 
왜 담양에서 이런 국제적 행사와 국내 대표 축제행사를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이 행사의 주된 테마는 대나무 산업이었는지 관광이었는지 돌아보고 현재의 대나무 정책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즉, 담양의 대나무는 관광을 위한 대나무 숲인지 조상들의 삶의 현장이었던 대나무 밭인지 그 근원이 어디에서 출발하게 되었는지 주(主)와 부(副)에 대해 생각을 해 보자는 것이다. 
대나무로는 식기나 물병, 땔감과 무기, 뗏목이나 건물 뼈대, 죽순까지 신이 내린 식물이라 할 정도로 대나무는 못 만드는 것이 없었고 우리 삶의 일부였다. 죽통 밥, 죽통 술, 죽엽 차, 죽염, 대 숯과 액 등 모두가 대나무와 함께 살았던 우리 삶이 대중에게 등장한 것뿐이다. 명품 와우딸기는 대나무를 휘어 만든 시설 하우스에서 시작했다.

 그런 대나무 밭이 지금은 경제성이 없어 방치되고 애물단지가 되어 여기저기 파내고 집터를 만들고 투기꾼들의 부동산 먹잇감으로 그렇게 사라지고 있다. 
죽녹원 이라는 이름의 대나무 숲을 만들고 하천이나 도로 주변에 관상용 대나무를 심어 유명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담양의 대나무는 관광을 목적으로 심은 것이 아니다. 천년 담양의 삶속에 깃든 대나무를 찾아서 오늘의 담양이 있음을 인식하고 대나무 보존과 활용정책에 대한 방향이 설정되어야 한다. 
윤선도의 오우가에 등장하는 대나무가 아닌 대나무 발 돌 넘기는 소리와 함께 밤을 지센 아낙네들의 애환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숲 일렁이는 소리, 대숲의 향기, 대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바로 우리 삶을 지탱해 준 대나무 밭에서 유래했음을 인문학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담양은 대나무 밭을 지키고 보존해야만 그 생명이 유지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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