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1587년 4월

떡배가 채 숟가락을 놓기도 전에 안방에서 광옥이가 눈을 비비며 대청마루로 나왔다. 
광옥이는 떡배에게 잠깐 시선을 던지고는 갖신을 신고 마당으로 나갔다. 곧장 근행석으로 올라가 기지개를 켰다. 근행석은 민경이가 처음 근행했을 때 가져왔다. 시집간 지 3년이 되면, 친정 어버이를 뵈러 친정으로 나서는 게 성촌마을의 관례였다. 이름하여 근행이라고 했다. 근행할 때 가져왔다고 해서 근행석이었고.

 민경이가 시집간 지 3년째 되는 봄이었다. 민경이는 친정 부모님을 뵌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민경이는 아장아장 걷는 두 살의 광옥이를 품에 안고 걸었다. 민경이가 모처럼 친정에 간다는 생각에 능주도 덩달아 기뻤다. 왜 3년 가까이 되어야 친정에 갈 수 있는지 능주는 이해할 수 없었다. 광옥이를 출산했을 때, 백일이나 돌 때, 민경이가 친정에 가고 싶은 마음이 하늘에 닿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만약 3년이란 관례가 없었다면 친정아버지가 먼저 불렀을지도 몰랐다. 딸을 애지중지했었으니까. 능주는 떡, 나물, 저육, 전 등의 ‘이바지’음식이 담긴 석작을 등에 지고 민경이를 따라나섰다. 성혼 문하에서 수학 중인 덕령이도 함께였다.
  길섶에 파릇한 싹들이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었다. 머지않아 나물을 캐러 다녀야 할 것이었다. 능주는 어디에 어떤 나물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민경이가 광옥이를 품에서 내려 편편한 바위에 올려놓았다. 얼핏 보아도 꽤 큰 돌이었다. 아니, 바위에 가까웠다. 길이가 족히 여섯 자는 넘어 보였다. 폭도 네 자가 넘고, 두께도 한 자가 넘었다. 능주는 민경이가 쉬었다 가려고 광옥이를 내려놓은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었다. 광옥이가 돌을 보고, 내려달라고 발을 차며 보채는 통에 하는 수 없이 내렸다고 했다. 
  
 광옥이는 바위 위에서 함박미소를 머금고 얏, 얏, 기합을 넣으며 검을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 절도 있는 동작에 기합에도 힘이 있었다. 제법이었다. 두 살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핏줄은 속일 수 없다더니. 능주는 어린 광옥이가 무술 흉내를 내는 장면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덕령은 흐뭇한 표정으로 광옥이를 지켜보았다. 쉬지 않고 양팔을 들어 죽검을 휘두르는 흉내를 내는 광옥이가 새끼 백호처럼 늠름해 보였다. 
  
 돌 위에서 광옥이가 내려올 생각을 않자 민경이가 강제로 품에 안았다. 광옥이가 내려달라고 몸부림치며 떼를 썼다. 민경이가 길을 재촉하려 하자 광옥이가 더욱 크게 울며 몸부림쳤다. 어찌나 완강하게 몸부림치는지 그대로 간다면 경기를 일으킬 것만 같았다. 민경이는 걸음을 떼지 못하고 광옥이를 어르고 달랬다. 하지만 광옥이는 몸부림을 멈추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돌을 가리키며, 내려달라고 떼를 썼다. 민경이는 어쩔 수 없이 광옥이를 돌 위에 내려놓았다. 광옥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활짝 웃으며 죽검을 휘두르는 흉내를 내며 기합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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