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립다고 말했다

  그토록 무덥던 여름도 지나고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왔네요. 이때쯤 기러기가 편대를 지어 날아올 먼 산 능선 위로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마음에 그리움이 가득 일어서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정현종 시인의 「그립다고 말했다」라는 시를 소개해드립니다
  정현종 시인은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뒤 『고통의 축제』 『한 꽃송이』 등 많은 시집을 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로시인입니다.

  두루 그립다고/너는 말했다./그러자 너는/꽃이 되었다. 
  그립다는 말/세상을 떠돌아/나도 같이 떠돌아/가는 데마다/꽃이 피었다./닿는 것마다/꽃이    되었다. 
  그리운 마음/허공과 같으니/그 기운 막막히 퍼져/퍼지고 퍼져/마음도 허공도/한 꽃송이! 
  두루 그립다고/ 너는 말했다. 
                                                         -정현종, 「그립다고 말했다」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입니다. 뜨거웠던 여름이 다 가고 나니 어느새 그 여름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그러다보면 지난 열정의 순간들이 생각나고, 지금은 여기 이 자리에 없는 어떤 대상들에 대한 그리움이 일기 마련이지요. 그리움의 감정이란 바로 지금은 여기에 없는 어떤 대상에 대한 연모의 정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니까요.     
  특히 그리움의 감정은 여기 있는 나라는 주체와 저기 있는 너라는 대상 사이의 거리가 있어야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욱 강렬하게 일어나는 것임은 누구나 쉽사리 짐작할 수 있겠고요. 그런데 오늘날 휴대폰과 인터넷 문화가 전지구화 한 세상에서 바로 그 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사라져버린 바람에 우리는 그리워하는 일을 잃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이 가을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고 읊어댄 적이 있습니다. 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사라지고, 또 세상일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누군가를 그리워할 시간도 사라진 시대에 제발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그러니까 이렇게 맑고 아름다운 날에라도 한번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해보자는 것입니다.    
  정현종 시인은 어느 순간 “두루 그립다고/ 너는 말했다”고 합니다. 네가 그 말을 발화하는 순간 “너는 꽃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립다는 그 말이 세상을 떠돌아 가는 데마다, 닿는 데마다 꽃이 피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그리운 마음이 허공에 가득하니 세상은 그대로 “한 꽃송이”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사라진 세상이면 “두루 그립다”는 너의 한마디 말에 이렇게 세상이 “한 꽃송이”로 뒤바뀔 정도이겠습니까? 백 마디 장광설보다도 “두루 그립다”라는 말 한마디로 그리움이 사라진 세상을 질타하고, 그리움이 세상을 온통 꽃으로 화하게 하는 시인의 직관력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여기서 “그립다”라는 말은 형용사로 “고향이 그립다”와 같이 쓰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리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뜻과 “쌀밥이 그립다”와 같이 쓰이는 경우에서 보듯 ‘무엇이 요긴하고 아쉽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립다의 명사형이 “그리움”이라는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요.

  요즘 시골 내 서재에서 맑고 투명한 밤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들이 참으로 또륵또륵 영글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라는 시를 통해서 별을 노래해보지요.
  김광섭 시인은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나 많은 시를 발표한 뒤 예술원회원까지 역임하고 지금은 작고한 시인입니다. 시집으로 「성북동 비둘기」 등이 있습니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저녁에」 

  사람과 자연의 일체감을 노래한 「성북동 비둘기」의 시인 김광섭에게 「저녁에」란 시가 있습니다. 연애시로도 읽히는 이 시는 사실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시입니다. 우선 시적화자가 저녁에 하늘을 쳐다보니 참으로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 별을 눈치 챈 나도 물론 이 지상의 많은 사람 중의 하나로서 ‘그 별’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저렇게 많은 별들 중의 별 하나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내가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특별한 인연이 아니고선 불가능할 것입니다. 결국 시적화자인 ‘나’에게 ‘그 별’은 특별한 의미로서의 별인데, 이는 아무래도 시적화자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어떤 사람의 상징이겠지요. 그런 유일한 애인을 왜 별로 상징했을까요? 
  물론 그 별을 순수니, 이상이니, 사랑이니 하는 의미를 내포시켜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시적화자의 유일한 애인은 이미 죽어서 하늘의 별 하나로 존재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음 연의 “밤이 깊을수록/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라는 말은 시적화자의 고독의 밤이 깊을수록 별이 된 너는 천상의 밝음 속으로 아득히 멀어지고, 이어 “나는 어둠 속에서 사라진다”는 말은 지상에 홀로 남겨진 시적화자의 외로움과 고독과 슬픔이 더욱 짙어가는 어둠 속에 잠긴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지막 연에서 “이렇게 정다운/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라는 말은 천상과 지상으로 나뉜 너와 나 곧 우리는 더 이상 이 땅에서 만날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좌절감과 여기에서 파생하는 그리움의 단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라깡은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인간은 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길 원한다는 의미로 무엇보다도 타자의 성적 욕망이 되길 욕망하며, 또 타자로부터 인정받기를 욕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 나를 욕망하게 하고 꿈꾸게 하고 그리워하게 하는 타자는 이미 죽어 별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와 나 사이의 그리움은 더욱 강렬할 수밖에 없지요.
  
 우리는 이 시를 통해서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사람들, 가령 사소한 이유로 지금은 멀리 떠나버린 사랑이거나 사별로 인해 영영 볼 수 없는 살붙이 등을 추억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별로 상징되는 어떤 잃어버린 꿈, 아니 이루지 못해 폐기처분해버린 꿈들을 다시 수습하여 한번쯤 아득아득 그리워해보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겠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별’은 누구나 아는 단어임으로 이 별과 관계된 비유법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 “별 겯듯 하다”라는 비유인데, 이 말은 “별이 총총 박이듯 하다”라는 비유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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