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탈출 전야

“이도와키를 왜인이 잘 보도록 일렬로 놓으시게. 그래야 우르르 몰려올 것이야.”몽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산척패는 무명 두루마기를 풀더니 그 위에 그릇을 나열했다. 여기저기서 종일 염탐질하던 왜인들은, 드디어 헐값에 팔려나 보다, 하고 슬금슬금 모였다. 구경꾼이 칠팔십여 명이 넘어서자 몽인은 돌망치를 성큼 집어 유명환에게 쥐어 주었다.
“떡메 둘러치는 솜씨는 명환이 형님이 으뜸이지요.”유명환은 손바닥에 침을 퉤 뱉은 다음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망치를 거머쥔 손에서 퍼런 힘줄이 꿈틀댔다.
“자, 마음껏 구경하시오.”몽인은 풍물재비라도 되는 양 박수까지 짝짝 치면서 흥을 돋우더니 차례를 외웠다. 몽린 형님에게서 어린 시절 선친이 회초리를 때릴 때 그렇게 했었다고 들었다.  
“하나요.”
“퍽!”유명환의 손끝에서 이도와키가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튀었다. 그 그릇 한 개면 농사꾼이 평생 버는 품삯이다. 놀란 왜인은 어어어! 탄식만 내지를 뿐. 바위라도 깨뜨릴 듯한 유명환의 망치질에 사람들이 주눅이 들었다. 몽인은 하늘을 향해 연이어 외쳤다.
“둘이요.”
“퍽!”
“셋이요.”
“퍽!”어차피 이번에 팔지 못하면 두고 가야 할 물건이었다. 힘들게 오즈까지 다시 가지고 가느니 여기서 깨트리고 가는 편이 나을지 몰랐다. 
“그만 두시오.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이 무슨 행패요.”평소 거래해 왔던 카미야 가문의 집사가 기어코 뛰어들었다. 이대로 죄다 버리면 당주가 펄펄 뛸 것이다. 몽인이 귀한 사발을 깰 줄은 상상도 못했다.
“행패라…… 우리 그릇을 우리가 부수는 것도 죄가 되는가?”유명환은 몽린을 가로막고 나섰다. 집사를 호위하는 무사가 칼 손잡이를 반 치쯤 올렸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솜씨면 칼 빛이 번쩍이는 순간 몽인의 목이 날아간다. 산척패도 순식간에 몽인을 에워쌌다.야스하루의 후시미 저택이 한나절이면 가는 거리에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몽린이 야스하루를 움직여 군사들이 득달같이 달려올 것이다. 그런 사정을 아는 몽인은 느긋하게 맞섰다.
“집사 나리, 어쩐 일이시오. 이틀간 코빼기도 안 보이시더니.”
“자세한 사정은 찬찬히 이야기하고 우선 좀 진정하시오.”집사는 평소 뻣뻣했던 모습은 간데없고 살살 달래는 말투였다.
“허허, 저는 지금 말짱하오. 이녁에게 하등 원한이 없소.”
“그럼 왜 이러시오. 그 사발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잘 알면서.”
“내가 이 사발을 깨는 것은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이오.”
“그것은 무슨 해괴한 말이오?”몽인은 깨진 사금파리를 한 움큼 집더니 손바닥을 펼쳤다.
“보시오. 멀끔했을 때는 귀한 기물도 깨지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부스러기일 뿐이오. 나와 카미야님과의 신뢰도 이것처럼 산산조각이 났다고 보아서 이도와키를 부순 것이오.”
“…….”
“나는 선친의 유훈에 따라 오상(인의예지신)이라는 도덕률을 하루 세끼 밥 먹는 것보다 더 많이 외우며 자랐소. 그중 신은 서로간에 믿음이며 남을 진심으로 대하는 자세요. 조선 상인끼리 거래할 때는 이익보다 신뢰를 우선으로 친다고 들었소. 조선에서는 아무리 이윤이 많아도 믿을 수 없는 자와는 친교를 맺지 않는다고 하오.”
“…….”
“한데 오늘 보니까 카미야님과 나는 서로 믿을 수 없는 사이요. 이런 거래는 위험하오. 재물이 탐나서 언젠가는 칼부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오. 하여 나는 카미야님과는 더 이상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이 사발을 부수는 것이오.”
“그 말은 앞으로는 이도와키를 우리에게 팔지 않겠다, 그 말이오?”절박한 집사는 몽인에게 매달렸다. 오사카의 다인은 오즈에서 나오는 이도와키를 최고로 쳤다. 한데 잘못된 계략 탓에 몽인의 사발을 못 샀다고 하면 가문의 당주가 길길이 날뛸 것이다. 
“물론이오. 팔지 않을 뿐더러 여기 남은 사발도 죄다 부술 것이오.”집사가 말릴 겨를도 없었다. 몽인이 차례를 셀 때마다 이도와키가 바삭바삭 으깨졌다.
“아홉이요.”
“퍽!”
“열이요.”
“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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