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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남산 ‘금광’ 증언한 박기용(80세) 옹

“그 당시엔 내가 17살 때니까 어렸지만 광산 일은 아주 잘했어. 금 캔다고 고향 남촌에 들어와 3년간 발파공으로 열심히 일하면서 돈도 벌고 재미도 있었어....”

담양읍 남촌마을 남산에 그 옛날 금을 캐던 금광이 있었음을 증언한 이 마을 박기용(80세) 옹이 당시 광부로 일했던 시절을 잠시 회상했다. 그는 1954년 당시 17살 어린나이에 광산 다이나마이트 발파공 기술자로 고향마을 남산 금광개발에 종사했다.

기자가 어찌 그런 어린나이에 발파공 기술을 습득해 고향마을 광산개발에 참여했는가를 묻자, “화신백화점 박경식 사장이 그 당시 나주 공산면에서 금광을 개발해서 금을 엄청나게 많이 캤지. 그곳에서 내 이모가 함바집을 운영했는디 도와주러 갔다가 한 발파공 인부의 권유로 발파기술을 배웠지. 한마디로 그 사람 조수로 있다가 발파공인 된 것이제∼. 그 후에 화신백화점 박 사장이 담양 남산에서 금광을 판다고 함께 가자고 해서 고향으로 돌아와 발파작업에 참여했제.”

남산 금광개발 당시 광부들은 어디서 먹고 자면서 작업을 했는지 궁금함을 묻자, “금광 바로 아래쪽에 함바집을 지어 갖고 거기서 먹고자고 했어. 한 20명 정도가 매일 낮에는 굴을 파고 밤에는 함바집에서 노곤한 몸을 쉬었제. 그 당시에는 지금 저기 문화회관, 버스터미널이 있는데는 아무것도 없는 온통 논밭뿐인 허허벌판 이었제. 그 근동에는 효자비가 있던 박기훈씨네 탱자나무집 하나 있었네”

당시 광산일은 힘들었지 않았느냐는 말에. “말도 마소, 징그랍게 힘들었어. 당시에 뭔 장비가 있는가. 기계가 있는가. 전부 다 맨손으로 일을 했제. 남산은 온통 깡깡한 화강암이었어. 굴을 파는데 워낙 바위가 깡깡한께 나같은 발파공이 필요했제. 그래서 다이나마이트로 암석을 폭파하고 그 돌을 사람들이 일일이 삼태기에 담아 퍼냈지. 진짜 힘든 것은 수직으로 굴을 팔때인디, 지하에서 파낸 돌을 드라무통(드럼통)에다 담아서 위로 올리는 작업이 최고 힘들었어. 아조 다들 녹초가 됐지. 그 일을 한 삼년 했네.”

박 옹은 “언제 굴을 다시 파볼라고 헌당가? 굴 입구를 파볼라믄 나한테 말을 하소. 내가 정확하게 안께. 무작정 포크레인으로 파믄 안되네. 입구만 살살 파헤치믄 굴은 암석굴인께 시방도 그대로 있을 것이네∼”

박기용 옹은 남산 금광개발에 1954년부터 3년간 종사했으며, 당시의 상황들을 지금까지도 상당부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 장광호 기자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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