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론광장 기획연재(소설)
담양뉴스 창간4주년 기획연재Ⅲ(소설)/소쇄원의 피로인(제35화)양진영 작가

<35화>사발의 마음

쇼군이 조선의 쇄환사를 면담하는 날이8월26일로 잡혔다. 쿄토 봉행인 이타쿠라 카츠시게는 부하를 보내 이 말을 전하면서 가물치, 다시마, 술을 한가득 보내왔다. 현재 막부를 세운 이에야스 가문은 임란에 참전하지 않았다. 오윤겸이 일전에 카츠시게를 만났을 때도 이에야스는 처음부터 조선 침략에 반대했다, 막부가 일본을 통일했으니 앞으로는 조선과 평화적인 관계로 지낼 것이다 등등 호의적인 발언을 늘어놓았다. 

오윤겸은 술과 안주를 병졸과 군관에게 나누어 주어 쉬게 하고 막부의 집정인 혼다 마사즈미를 기다리는데 더 신경을 썼다. 마사즈미가 오는 목적은 쇼군을 면담하는 절차, 양국의 서계 작성 등을 사전에 의논한다는 것이었다. 오윤겸의 입장에서는 이런 것은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일전에 여우길이 왔을 때 조선 임금에게 보내는 서찰에 일본 왕이라는 표현이 없어서 옥신각신했는데 이번에는 일본측에 이 점을 미리 일러두어서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일본은 천황 다음에 막부의 장군이 권력자이기 때문에 대내적으로는 ‘왕’이라는 표현이 없었다.
오윤겸의 관심사는 조선인 포로를 얼마나 데려가는가 하는 것이었다. 전날 강우성을 몽린에게 보내 본디 계략대로 정호다완을 마사즈미에게 상납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당부해 두었다. 물론 몽린이 다이토쿠사에 와서 다두로 차를 대접하도록 했고. 

마사즈미의 아버지 마사노부는 이에야스의 두뇌로 불렸던 중신이다.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에 이어 천하를 차지한 것도 마사노부 덕분이라는 설이 많았다. 공이 큰 데도 영지는2만 석에 만족해 녹봉을 다투는 다른 중신에 비해 이에야스의 총애가 컸다. 마사즈미는 어린 시절부터 이에야스의 측근에서 훈련을 받아서 히데타다가 새 쇼군이 된 뒤에 막부의 정무를 총괄하는 로주(老中)로 일하는 중이다. 강우성의 전언에 따르면 싸움밖에 모르는 일본의 영주와 달리 마사즈미는 문신에 가깝고 유교나 조선의 문물에 대해 호의적이라고 해서 오윤겸은 내심 그가 포로 송환에 협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점심 후에 다이토쿠사에 도착한 마사즈미는 소문대로 진중했고 언사가 점잖았다. 임란 때 겪은 우락부락한 무사와 달라서 오윤겸도 마음이 놓였다. 다만 최고 권력자의 책사답게 언변이 날카롭고 말 한 마디에도 무척 신중한 모습이었다. 쇼군에게 진상할 품목과 서계에 대해 애기를 나누면서도 곁에서 차 시중을 드는 몽린을 눈여겨보았는지, 조선인 같은데 다도 예법에 능통합니다, 라고 사신에게 덕담을 건넸다. 정무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차를 마시면서 마사즈미는 몽린에게 말을 건넸다. 

“그대도 임진년에 건너왔나?”
“그렇습니다.”
“지금은 누구를 시중들고 있고?”
“와키자카 야스하루님입니다.”
“흐음…….”
마사즈미는 뭔가 생각하는 듯 잠시 끽다에 몰입했다. 야스하루는 전형적인 무장이고5만 석 내외로 대영주도 아니다. 조선의 사신과 무관한 듯한데 그의 다두가 뜬금없이 오윤겸의 차 시중을 들고 있어서 의아한 모양이었다. 
“그대는 이번 사행길에 돌아갈 속셈이로군.”
“그렇습니다.”
몽린은 허를 찌르는 상대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했다. 상대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막부의 최고 책사다. 삼십 대 젊은이의 머리로 그를 당할 수 없을 것이다. 몽린은 처음부터 이실직고하고 그에게 쇼군의 유시문을 얻어달라고 간청할 속셈이었다. 야스하루가 이 다두를 보냈나? 순간 의심했던 마사즈미는 그제서야 몽린이 정호다완처럼 보이는 다완으로 자기를 접대하는 이유를 눈치챘다. 
“이 찻사발은 그대의 것이겠지?”
“예.”

마사즈미는 또 말을 끊고서 차를 마시던 그릇을 조심스레 들더니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꺼꾸로 뒤 짚어 굽을 보고 두 손으로 받쳐서 무게를 느꼈다. 몽린이 차를 부우면 우러나는 빛깔을 확인하고 그릇에 천천히 입술에 대고 조금씩 마셔 보았다. 그도 센 리큐 이후에 다도계를 이끈 후루타 오리베나 코보리 엔슈에게 배워서 다도에 제법 능통하다. 한데 그가 보기에 지금 앞에 놓여 있는 사발은 정호다완처럼 보였고 그것도 가장 고귀한 오오이도(큰 그릇) 같았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담양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