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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시평 【대숲소리】/서봉사의 것은 서봉사지로김옥열 칼럼위원(광주전남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전남대학교 민주마루(옛 대강당) 앞 잔디광장에 가면 아주 멋진 모양의 부도가 하나 놓여있다. 
돌로 된 종 모양의 부도는 조형미가 꽤 좋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부도(浮屠)는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축조물을 말하고 흔히 부도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찰에 가면 대개 절집 입구쪽 한 켠에 큰 밭을 이루어 여러 개가 놓여 있는 경우가 흔하다. 
이 부도는 방형의 지대석과 연꽃을 뒤집은 듯한 모양이 조각된 하대석, 그리고 8각의 낮은 중대석이 1개의 돌에 표현됐다. 그 위에 원형의 상대석을 놓고 옆면과 위에 또 연꽃을 조작했다. 탑신부는 석종형인데 고려시대 후기부터 조선시대에 유행한 양식이란다. 전체적인 모양이 무척 아름답다. 이 부도 옆에는 석탑도 하나 있다. 무너져 일부 유실된 것을 복원한 탑이라 기단부가 부실하다. 돌이 없어 복원하지 못하고 3개 층의 옥개석과 탑신석만을 세워놓아 모양새가 좀 빠진다. 기단부가 제대로 2단으로 갖춰진다면 매우 멋진 3층 석탑 일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식이나 탑신의 비율 등으로 미뤄 고려시대에 조성된 탑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이곳 전남대 캠퍼스에 왜 사찰에 있어야할 부도와 탑이 자리잡고 있을까? 그리고 집을 떠나 캠퍼스에 있는 이 부도와 탑은 또 어디에서 온 걸까? 
이 부도와 탑은 담양이 고향이다. 담양군 가사문학면(옛 남면) 정곡리 서봉사지에서 발견한 것을 1969년 전남대학교로 옮겨왔다. 그래서 이름이 담양 서봉사지 부도와 담양 서봉사지 석탑이다. 알려지기로는 터만 남은 이곳에서 그나마 유실을 막기 위해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가 박물관으로 옮겨왔고 이게 다시 지금의 자리로 이전해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이 당시 도굴범들이 해체, 반출하려했었다는 설도 있다.

서봉사는 우리나라 3대 명찰?

서봉사는 지금 남아있지 않다. 무등산 동쪽 자락 서봉산이라는 산 아래 위치했던 서봉사는 담양의 대표 절을 넘어 한 때 우리나라 3대 사찰로 꼽힐 만큼 큰 절이었다고 한다. 절의 위치가 담양과 화순을 오가는 길목에 절묘하게 위치해 있고 명산 무등산 아래에 있어 상당히 큰 사찰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지금도 건물 초석, 석탑 옥개석 등 절의 흔적을 알 수 있는 유물 파편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고 한다. 담양군에서 한 때 절터를 정비하고 복원계획을 세웠으나 현재는 터가 사유지여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절터 아래 마을에도 이 절의 크기를 짐작할 만한 유물들이 산재해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 길이나 담장, 하천정비 과정에서 묻히고 유실되긴 했지만 아직도 관련 유물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한다.
상태가 좋은 유물들은 다 도굴되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살아남은 유물이 또 있다. 국립광주박물관에는 서봉사지 석조불상과 나한상이 있다. 또 1774년 원효사로 옮겨 영자전에 보관하고 있다가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원효탱화도 서봉사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도 증심사 석조보살입상 역시 서봉사지의 유물로 추정되며 현재는 행방을 알 수 없는 금동입상 2구와 소조불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문화재는 제자리로 돌아와야하지 않을까

서봉사지는 담양으로서는 아픈 역사이자 복원해야할 문화재로 보인다. 지금도 몇 개의 사찰이 있지만 역사성이나 규모 등으로 미뤄 보았을 때 서봉사 만한 사찰은 없을 것 같다. 따라서 복원을 한다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 공간이 될 것 같다. 특히 전남대에 있는 부도와 탑 등 명맥을 잇는 유물이 버젓이 살아있고 절터 또한 정확하게 확인된 만큼 복원을 검토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그 의미가 살아난다. 그런 뜻에서 우리나라도 일본 등 제국들이 약탈해 간 각종 문화재를 돌려달라는 요구와 함께 반환받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 버젓이 남아있고, 상태도 양호한 문화재가 전혀 관계없는 공간에 서 있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서봉사지에서 나온 각종 유물은 서봉사지로 가져왔으면 한다. 당연히 절터는 복원해야하고, 어딘가에 흩어져 나뒹굴고 있거나 다른 곳에 가있을 유물은 복원하고 되찾아와 절터에 세우거나 보관해야 한다. 아직도 마을 곳곳에 그런 유물이 있다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다. 사라져 없는 역사도 찾아 복원하는 세상인데 흔적이 뚜렷한 역사유적을 방치한다면 안 될 일이다. 담양으로서는 새로운 명소를 얻게 되는 일이고 군의 문화적 위상을 높일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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