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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기획연재Ⅴ(소설)/추월산 길라잡이(제20화)강성오 작가

<20화>

 민경이는 계획대로 친정에서 보름간 머물렀다. 덕령이는 이틀이 지나자 수학을 이유로 돌아갔다. 아침이면 광옥이가 눈을 비비며 대청마루로 나왔다. 광옥이는 머뭇거리지 않고 갖신을 신고 마당으로 나갔다. 곧장 근행석으로 올라가 기지개를 켰다. 광옥이는 마당 가장자리에 놓인 근행석 위에서 주야장천 시간을 보냈다. 무예 연마를 흉내 내고, 눈을 감고 앉아 명상을 하고, 근행석 위에 누워서 잠들기도 했다. 민경이가 돌아올 때는 광옥이가 잠든 틈을 이용했다. 친정으로 올 때처럼 광옥이가 돌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을 우려해서였다. 대감은 민경이 시댁으로 보낼 ‘이바지’음식에 부족함이 없게 넉넉히 하라고 하인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친정어머니 같은 모습이었다.
  
 달구지에 이바지 음식이 가득 실려 있었다. 한눈에 봐도 친정으로 올 때 가져온 음식보다 열 배는 넘을 듯했다. 민경이는 준비한 음식은 하인들에게 나눠 먹이고 떡이며, 저육, 나물 같은 간단한 음식만 가져갈 거라고 했다. 시댁에서 가져온 것만큼만 가져가야지, 너무 차이나면 시댁에서 의기소침해진다고 했다. 비교당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만, 마늘 재운 석청은 있는 대로 달라고 했다. 허허, 누구 명이시라고. 대감은 손수 석청 단지 2개를 내주었다. 민경이는 무엇보다 석청 단지를 아꼈다. 능주가 지고 온 석작에 가장 먼저 석청 단지를 담았다. 단지가 깨지지 않게 헝겊을 넉넉히 두르고, 여유 공간에 음식을 넣었다.

                               5. 1593년 8월
              
  덕령이가 기병한다는 소식이 마을을 넘어 담양, 장성, 나주, 곡성 등 사방팔방으로 퍼졌다. 삽시간이었다. 초장이 끝나면 기병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니 함께 할 의병을 모집해 달라고 덕령이가 각 고을의 부사나, 현감에게 부탁한 탓이었다. 사람들은 드디어 덕령이가 기병한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덕령이가 사는 성촌마을 한 가운데에는 돌샘이 있는데, 극심한 가뭄에도 샘이 마르지 않았다. 돌샘은 사람들에게 1년 내내 물을 공급했고, 사랑방 역할도 했다. 아낙들이 샘가에 둘러 앉아 빨래하며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병을 모집 중이었으니 화제의 중심은 당연히 덕령이었다. 덕령이가 얼마나 용력이 대단한지, 마치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생생하게 전했다. 환벽당에서 공부하던 유년시절에 한 손으로 처마에 올라가 새를 잡았다고 했다. 무등산 정상에 있는 지왕봉에서 바위와 바위사이를 가볍게 뛰어다니며 무술을 연마했다고 소리를 높였다. 주검동에서 칼을 만든 후 실험하려고 바위를 내려쳤는데 바위가 쩍 갈라져 두 동강이 났다고 허풍까지 떨었다. 이구동성으로, 용력이 뛰어나 왜군을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울 거라고들 했다. 다들 덕령이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한 사람, 단 한 사람만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민경이었다.
  
 덕령이가 초장을 끝내고 기병할 거라는 소식을 들은 순간, 민경이는 얼굴이 새하얘졌다. 주체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집에서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하며 보낼 수는 없었다. 덕령이가 언젠가는 기병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초장이 끝나면 바로 기병할 거라는 예상은 아예 하지 못했다. 워낙 효성이 지극해서 3년 시묘살이가 끝나면 기병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민경이는 그 전에 전란이 끝나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전란이 끝나면 기병할 일이 없을 게 아닌가. 덕령이를 전장 터에 보내지 않을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시묘살이도 중단한 채 기병이라니. 민경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또 기병이라니. 또. 민경이 가슴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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