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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시평 【대숲소리】/달라진 겨울에 대한 준비전고필 칼럼위원(문화기획가, 향토사전문책방 이목구심서 대표)

가사문학면으로 바뀐 남면 가암리 청촌마을이 외갓집이다. 
유둔재를 사이에 두고 고서 쪽의 포근함에 비해 그곳은 협곡에 해당되는 지역이라서 기온의 차이가 족히 3-4도 정도는 아래인 지역이다. 화순 적벽을 구경하러 온 평양감사를 모시고 오던 가마꾼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적벽과 유사하게 보이는 낭떨어지를 보고 감사에게 여기가 적벽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의 평양다리가 그 마을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다. 

평양감사도 감쪽같이 속은 그 벼랑 아래는 더 서늘해서 겨울이면 얼음이 꽁꽁 얼어 썰매를 타고 노닐기 좋은 곳이다. 그곳에서 고무신과 운동화를 몇 켤레 태워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겨울놀이의 천국이었다. 여름이면 그곳은 응달이 크게 지고해도 일찍 저물어지는 곳이라 멱을 감고 놀다가 밤이 되면 물고기를 잡기도 용이한 곳이었다. 보가 형성된 곳이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는데 겨울철의 고기잡이는 얼음 위로 튀어나온 바위를 큰 망치(갠노라고 불렀다)로 두들겨서 기절시켜 잡는 방식이었다. 조리 같은 얼개로 기절한 물고기를 쓸어 담아 초장에 찍어 먹던 그 시절의 기억이 아련하기만 하다. 

평양다리 맞은편으로는 길게 늘어선 마을 숲이 형성되어 있다. 
한줄기로 뻗어 있는 나무들은 일사분란하게 마을을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 양지바른 이곳은 겨울이면 꿩과 비둘기가 가장 많이 모이는 핫 플레이스에 해당된다. 누군가 짚 비늘을 해 두고, 그 아래에 탈곡이 끝난 짚풀을 방치해 두면 이곳을 기억하는 새들이 특히 눈 녹을 무렵이면 가장 많이 찾아든다.
겨울이 가기전에 재래종 감을 모아서 소쿠리에 담아 두고 짚 비늘로 덮어서 Y자형 나무에 얹어 두었다가 꺼내먹으며 외삼촌이 하는 일은 사금파리 스무개쯤 모아오고, 콩의 한 단면에 구멍을 뚫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잠들고 나면 무언가를 비워진 곳에 채워두었다가 눈이 내린 아침에 그곳 양지바른 곳, 짚새기가 내버려진 곳의 귀퉁이에 눈을 치우고 조심스레 사금파리를 놓고, 그 위에 콩 한알을 놓는 것이었다.
산감이라 불리던 산림감시원이 가장 무서운 시절이었지만 새들이 날아오기 전까지 삼촌은 나무를 하다가 어느덧 점심 무렵이면 꿩 몇 마리가 모여진 것을 확인하고 그때부터는 모든 촉각이 사금파리를 놓은 곳으로 집중했다. 그것을 삼킨 꿩은 울음소리를 하며 하늘을 날다가 급작스럽게 땅에 곤두박질을 친다. 싸이나 라고 불렀던 청산가리가 콩 안에 있어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꿩이 떨어진 곳을 이미 보았으니 한 두마리 더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수거하러 간다. 묵직한 꿩을 들고 나오는 기분은 천하를 얻은 것 보다 더 큰 기쁨이었다.

 남도의 겨울은 그렇게 깊어갔고, 담양의 추억은 그렇게 익어갔는데, 이제 그런 겨울이 불편해졌다. 외삼촌도 돌아가시고, 평양다리의 얼음도 더 얼지 않고, 큰 망치를 든 청년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 흔한 꿩들도 이제는 양지바른 논으로 날아오지 않고, 마을숲은 언제부터인가 시들해 져 버렸다.
청촌 마을의 어르신들은 그 어느때 보다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고 계시지만 그 마을 한계절을 담당했던 풍경과는 언제부터인가 결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아픔의 시발은 어디일지 종잡지 못하지만, 적어도 도시화 되어가고, 산업화 되어가고, 기계화 되어가며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삶이 생략되면서 더 심화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이런 현상이 동반한 기후변화는 기존의 자연환경을 모두 변화하게 만드는 주범이 되어 버렸다. 

 얼지 않고도 맞이하는 혹독한 추위는 어느 순간에도 겨울을 이겨낸 대나무들이 동해로 말라 죽게 만들고, 푸르름의 대나무가 황금빛으로 변하는 이변을 낳았다. 거기에 관방제림 숲에도 겨울은 어김없이 찾아와 푸조나무나 느티나무가 맥을 못추리게 만들었다. 
4월이 지나가도 싹이 트지 않는 나무들을 우리는 올해 마주할 수 있었다. 둘러보면 곳곳이 문화재와 생태자원인 우리 담양도 이제 다른 방식의 겨울맞이를 준비해야 할 터이다. 식물에 눈 밝은 선배가 천연기념물인 관방제림의 나무들이 변고를 당하니 전해주는 말씀은 겨울내 동사로부터 안전하게 해주는 코팅막 같은 것을 뿌려주는 방식이 가장 주효하다고 한다. 이제는 사후약방문 같은 방식으로 무언가를 지켜내는 것은 버거운 세상임을 충고하면서 말이다. 

 위드 코로나가 어렵게 시작된 시기, 담양을 찾아 먼길을 온 관광객들에게 우리가 지닌 생태와 인문이 결합된 문화도시를 함께 공유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먼저 연구하고, 대응하고, 이런 경험을 타 지역과 나눌 줄 아는 기품있는 도시로서 담양의 모습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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