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읍 입구 로터리에 세워진 성탄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쁜 성탄으로 보여야 할 트리가 벌써 한 해가 저물고 있다는 슬픈 마음으로 덮여버리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경제는 나빠지고 여기저기서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위에서는 듣고 있는지 피부로 느낄만한 그런 효과는 느낄 수가 없다.

내년은 좀 백성들의 말도 귀담아 듣고 좋은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작년 8월에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왔던 진인 조은산의 시무(時務)7조라는 상소문을 떠올려본다. 이 상소문은 당시 이 나라의 어지러운 정치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궁지에 처한 국민들을 굽어 살피라는 구구절절한 글로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고 이름조차 생소했던 조은산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상소문이 기억 속에서 사라지듯이 국민들의 기대도 그렇게 사라졌다. 그저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달라지고 또 그렇게 달라지게 할 것이라는 공약을 내건 대선 후보들의 말장난에 또 그렇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

시무(時務)는 당장에 시급한 일 또는 그 시대에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일을 뜻하는 것으로서 역사적으로 보면 백성이나 관료들이 임금에게 상소문을 올려 시정을 요구하는 언로의 소통수단이었다.
신라시대에 뛰어난 문필가 최치원은 중국에서 일어난 황소의 난을 토황소격문으로 제압하였고 신라의 골품이라는 신분제도와 귀족들의 문란한 정치로 백성들의 삶이 극도로 피폐해진 것을 진성여왕에게 시무10조라는 상소문을 올려 비판했다. 하지만 최치원의 상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신라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고려 6대왕 성종은 정5품 이상의 관리에게 나라를 다스릴 좋은 의견을 올릴 것을 명하여 이에 최승로는 고려 왕조가 당면한 과제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시무 28조'를 올렸다. 귀를 열고 언로를 개방하고 경청하였던 성종은 국방이나 민생 모든 면에서 고려 역사에서 성군으로 기록되고 있다.

조선시대에 접어들면 남명 조식의 단성현감사직소(丹城縣監辭職疏) 또는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라는 불리는 상소문이 통렬하다.
조식은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고 후학만을 가르쳤는데 조선 명종으로부터 단성현감을 제수받자 이를 거부하고 국방과 외교, 민생을 외면한 임금을 호되게 질타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읽어보면 조식의 용기와 명종의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격노한 명종은 조식은 물론 상소를 그대로 올린 승정원까지 처벌하라고 명하지만 언로를 막으면 안 된다는 사관(史官)들의 반대로 파문은 가라앉았다. 명종실록에서 당시 임꺽정을 두둔할 정도로 조식의 글을 보면 조선은 나라도 아니고 이러고도 망하지 않은 것이 희한할 정도로 개판이었다.

그 이후 지금으로부터 116년 전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皇城新聞)에는 이 신문의 주필이었던 장지연(張志淵)의 피 터지는 심정으로 쓴 논설이 실렸다.
제목은 역사를 배웠던 사람들이라면 귀에 익은 ‘이날을 목 놓아 우노라(是日也放聲大哭)’다. 을사보호조약의 굴욕적인 내용을 폭로하고 조선의 주권을 찬탈하려는 일본의 흉계와 이렇게 나라의 주권을 넘긴 조정의 대신들을 각자의 영리만을 생각하고, 위협에 벌벌 떨면서 나라를 팔아먹는 개돼지만도 못한 도적이라며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상소는 역사적으로 백성과 지도자간에 이루어진 언로였다. 정치가 바르고 제대로 된 나라에서는 그 당시 지도자가 귀를 열고 언로를 개방하고 경청하였다. 이 시대 나라가 어지러운 것을 언론이 언로의 역할을 못하고 정치는 이를 막고 경청하고 있지 않은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나라와 국민이 당신들 보다 더 소중하니까.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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