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군민기자석 동네한바퀴
600년 된 옛 구기(舊基), ‘구터마을’동네한바퀴(46) 담양읍 구터마을
마을 자랑을 해주시는 이장님과 노인회장님

담양 풀뿌리공동체 지원센터의 ‘마을 활동가’ 교육을 받으면서 알게 된 지인이 이곳에 살고 있어서 방문하게 되었다. 
이 마을은 600여년 전, 고려 공민왕 때 전주이씨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때 집을 지을 때 이미 집터가 있었기 때문에 마을이름을 구터(구기: 舊基)라고 불러왔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관리가 “마을 이름이 구터가 뭐야, 신촌(新村)으로 불러.”라고 하면서 강제로 마을이름을 ‘신촌’으로 개명했다가 해방 후 다시 ‘구터마을’로 원상 복귀했다.
원래 이 마을의 세대수는 30호를 넘지 않았는데 이것은 마을의 지형이 소쿠리를 닮은 까닭이라고 한다. 현재도 28호가 살고 있다. 
(김지원 노인회장님 설명)

마을 입구의 정자 구기정(舊基亭)은 조선 19대 숙종왕 말엽 시정(詩亭: 마을 어른들이 책을 읽었던 곳)으로 지어졌다. 23대 순조왕 때 마을에 가까운 현 위치로 옮겨와서 정자 옆쪽에 당산나무 3그루를 심고, 재해·재난·질병 부정(不貞)을 막아준다는 마치 정성을 다해 깎아 낸 듯 매끄럽고 예쁜 검정색 수문석(守門石)을 세워 당산제를 지내왔는데 일제 강점기 때 제사를 지내는 것을 할 수 없게 되었다.
200년 넘은 당산나무 2그루의 품위 있고 든든한 호위를 받고 있는 구기정(舊基亭)에는 아름다운 사연이 있다. 200여년 전, 자(字)는 기옥(祇玉) 호는 성삼(成三)이고 택호가 독굴양반·독굴 댁인 전주 이씨 부부는 후사가 없자 평생 열심히 생업으로 벌어들인 부유한 재산을 마을주민들에게 균일하게 나눠주었다. 그 이후 마을주민들은 감사의 마음으로 이 마을이 사라질 때까지 제사를 모시기로 약속하고 지금까지 매년 음력 사월 초파일에 제사를 모시고 있다. (현재는 묘지 앞에서 제사를 모신다.)

나무와 대나무가 연출하는 예쁜 마을길

마을 입구에서 조금 걸어가니 마을회관이 보였다. 회관 옆에 독특한 건물이 있어 물으니 벼 건조기라고 했다. 이전에 마을사람 몇 분이 공동으로 설치해서 사용했는데 지금은 집집마다 벼 건조기가 설치되어 있어 사용하지 않는다. 마을회관 왼쪽으로 올라가니 처음 마을에 터를 잡아 정착했다는 자리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밭으로 사용하고 있다.
다시 조금 내려와 오른쪽으로 나 있는 골목으로 가니 이장(홍광기)님이 안내해 준 오래된 나무 대문을 봤는데 색깔이 아름다워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노인회장님과 이장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면서 노인회장님께 92세에도 몸이 정정한 건강 비결을 물으니 걷기와 자전거 타기, 그리고 공부라고 했다. 
두 분과 헤어지고 혼자 마을을 돌았다.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끌었다. 나무를 감상하고 있으니 주인이 오셨다. 시할아버지께서 심은 파시 감나무로 100년 가까이 되었는데 지금도 감이 잘 열린다고 했다. 집주인과 함께 비를 피해 처마 밑으로 들어가자 가지런히 잘 정돈되어있는 살림살이가 눈에 들어왔다. 장화 3켤레를 가지런히 줄을 세워놓았고 문이 열려있는 부엌도 플라스틱 그릇과 나무 그릇을 나누어서 가지런히 정돈해 두었다. 

감나무 댁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나서 마을주민과 같이 마을을 더 돌았다. 주민이 마을에 있었던 큰 샘터와 작은 샘 위치를 알려주었다. 중간에 큰 샘을 보러 가다가 폐타이어 위에 놓인 학독(돌로 만든 조그마한 절구로 보리나 들깨 등의 껍질을 벗길 때 사용)에 멋스럽게 낀 이끼를 보고 이쪽저쪽 여러 방향에서 사진을 찍고 있자니 “뭐 저런 것을 다 찍고 그러네.”라는 어르신의 말소리가 들려 눈빛을 맞추고 웃었다. 

마을을 빠져나오는데 축사가 크게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축사 주인은 15년가량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어머니 혼자 적적하실까 염려됐다. 이분 가족은 광주에 살고 있던 때라 어머니 댁에 더 자주 들릴 수 있는 방법은 소를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소 3마리로 시작했다. 15년여가 지난 지금은 소가 50두 가량으로 늘었다. 태어난 지 1주일 된 아주 귀여운 송아지와 추운 겨울에는 소가 마시는 물을 덥혀 줄 수 있는 ‘음수대’를 보게 되었다. 소가 소리를 크게 내서 울어 왜 그러는 것인지 물었더니 먹이를 먹어야 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처해서 먹이 주기 체험을 했는데, 소에 따라 사료와 지푸라기 주는 양이 달랐다. 수컷은 몸무게를 불려야 하니 지푸라기보다 사료를 더 많이 주고, 암컷은 출산해야 하니 비대해져서는 안 되므로 사료보다 지푸라기 위주로 먹이를 주었다.

구기정·수문석·독굴댁·독굴양반을 비롯해서 큰샘·작은샘·옛날외양간·학독·벼건조기 등등 이야기 거리가 풍부한 마을이기 때문에 울력을 통한 환경정리와 함께 적은 금액의 마을사업만 조금 하면 예쁜 마을로 거듭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도 내리고 추운 날이었지만 예상 밖으로 좋은 것들을 많이 봤다. 이장님·노인회장님·동네 주민께 감사드린다./ 양홍숙 전문기자

대나무 무더기 주변, 큰샘이 있었던 곳
100년이 넘었을것이라는 파시감나무

 

정착민들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곳-펜스 뒤쪽 밭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광호 편집국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