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사발의 마음

다도 이야기가 나오자 마사즈미는 얼굴이 환해지면서 연신 맞장구를 쳤다. 
정호다완을 소지한 오리베나 엔슈가 그 사발로 다회를 열 때는 마사즈미도 은근히 부러워했었다. 이에야스는 본디 차나 다도 같은 사교술에 무관심해서 히데요시의 측근들이 촌놈이라고 막부의 가신을 놀려댔었다. 평화 시대를 맞아 다도를 배우고 비싼 찻사발을 소지하는 막부의 가신이 늘고 있었다. 이 정도 오오이도라면 다인을 초청해 다회를 열어도 될 법했다. 어차피 다른 정호다완도 처음에는 무명이었다. 호소카와나 모리 같은 대영주가 소유하면서 유명해졌으니 자신이 정호다완을 소지하면 그것도 곧 명성을 얻을 법했다. 점점 호기심이 돋은 마사즈미는 말이 많아졌다. 

“그대는 조선인이니까 묻는 것인데…… 조선에서 이 그릇의 용도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아무도 모른다고 하니.”
그것에 대해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제, 누가, 무엇에 사용하려고 만들었는지 아무도 몰랐으니까. 그래서 절에서 사용하는 찻잔이라느니, 제사상에 올리는 밥그릇이라느니, 천한 선머슴이나 썼음직한 막걸리 잔이라느니 말이 많았다. 몽인은 차를 붓고 나서 말했다.
“양반 가문에서 제사 때 사용하는 탕기였던 듯합니다. 저희 집안에서도 이것처럼 높은 굽이 달린 굽다리탕기를 제사 때 사용했었습니다.”
“아하! 제기라 …….”
“조선에서 사용하는 제기는 굽이 달려있습니다. 조상이나 신을 높이 받는다는 뜻에서. 지체 높은 사대부 종가집이나 향교 제사에서 사용했을 듯합니다.”
“오! 총명한 젊은이구먼.”
처음 듣는 소리에 마사즈미는 진심으로 감탄한 모양이었다. 대화가 흥미로웠는지 차솥의 열기 때문에 이마에서 땀을 흘리는 몽린에게 자신의 부채를 건넸다. 
“그대도 다회에 꽤 참석했을 듯하니까 그대 입으로 이 다완을 평가해 보게.”
“이도가 송나라의 천목다완을 누른 것은 센 리큐 같은 다인이 추구했던 화경청적(번뇌가 없는 깨끗한 정신)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천목은 밤하늘의 은하수와 같아. 어둠 속에 있기 때문에 빛나 보이는 것이지. 감색이 섞인 검은 빛깔이 너무 번쩍이고 밝아서 잔잔한 화경청적과는 안 어울렸던 것이야.”
“반면에 이도는 밤이나 낮이나 같은 빛깔입니다. 남을 누르지 않고, 스스로 드러나지 않고, 고요하고, 멈추어 있고, 깨끗합니다. 그것이 센 리큐선사가 평생에 걸쳐 찾았던 와비의 미였지오.”

“오호라!”
곁에서 지켜보는 오윤겸이 놀랄 만큼 마사즈미의 표정이 밝았다. 처음 왔을 때의 딱딱하고 의례적인 자세는 간데없고 잔칫집에서 떠드는 사람 같았다. 오윤겸은 다도 이야기가 왜인을 이토록 들뜨게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매일 왜인이 차를 접대했지만 다도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 밋밋한 가루차보다 톡 쏘는 막걸리가 더 당겼다. 조선인에게 정호다완을 주면 막걸리는 철철 부어서 시원스레 마실 것이다. 
“어쩌면 그 명물도 원래 싸구려 주막집에서 술잔으로 마구 쓸려고 만들었을지도 모르지. 거기에 부어 먹는 조선의 탁주 맛이나 왜인의 말차 맛이나 그게 그것일 것이야.” 
오윤겸은 말차를 마시며 강우성에게 농을 걸곤 했었다. 마사즈미는 조선의 사신에게는 관심이 없고 몽린과 다도를 논하는데 열중이었다. 
“이도가 찻사발의 황제로 불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가이라기(매화피) 때문이기도 합니다.”
“맞아. 일전에 오리베님이 신이 내린 물방울이라고 칭송하더군.”
“응? 신의…… 물이라니?”
오윤겸은 왠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하는 얼굴로 몽린을 쳐다보았다. 
“매화나무 껍질처럼 느껴지는 가이라기는 결코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동안 많은 다인이 조선에 사람을 보내서 그것과 비슷하게 만들어 보려고 애를 썼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언제부터인가 그것은 신이 남긴 흔적이다, 신이 마신다 남은 물방울이라는 소문이 돌았소. 조선도 그렇겠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런 주술 같은 말에 더 혹하는 법이지요. 소문이 소문을 낳아서 이제는 모두가 이도다완은 신의 작품이다…… 이렇게 믿고 있소.”
마사즈미는 오윤겸이 알아듣도록 세세히 설명했다. 몽린은 향로의 불을 끄고 다관을 닦으면서 말했다.
“이 사발의 가이라기는 그 어떤 정호다완보다 자연스럽습니다. 오사카 장터에서 기자에몬이도를 처음 본 순간 저는 제 눈을 의심할 정도였으니까요.”

"올커니!”
마사즈미는 비단 하카마 바지를 끌어당기며 무릎을 쳤다. 
“손안에 넣었을 때 깃털처럼 편안했고, 물레선이 바람처럼 그릇의 몸체를 휘감아 돌았고, 굽은 한번에 깎아 내려 낭떠러지 같았고, 차를 마시면 사발의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오호! 사발의 마음까지.”
“예.”
몽린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을 때였다. 마사즈미는 돌연 정색을 하더니 부채로 다다미 바닥을 탁탁 내리쳤다.
“그대는 날 우롱할 셈인가! 유시문을 얻기 위해 이 사발을 내 앞에 놓았으면서 장터의 기물을 최고의 정호다완으로 꾸미다니.”
오윤겸의 곁에서 귓속말로 통역을 하고 있던 강우성은 깜짝 놀랐다. 오윤겸도 마사즈미가 왜어로 호통을 치자 몽린이 무슨 말을 잘못했나? 하는 눈빛으로 강우성을 쳐다보았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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