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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창평현의 고을 창평면 삼천리뚤레뚤레 동네한바퀴(47) 창평면 삼천리
이장님과 주민과의 반가운인사

 창평우체국에서 소포를 보내다가 옆에 놓인 인절미 과자에 눈이 갔다. 
인절미 과자를 좋아하지만 먹고 나면 입에 남는 텁텁한 맛 때문에 더 먹지 않게 되었다. 이 과자는 어떨까 궁금해서 한 봉지 사서 먹어보니 마음에 쏙 들었다. 먹은 후에 갈증이 나지도 않고 작은봉지 8개들이 포장인데, 한  봉지를 먹고 나서도 두 번째 봉지에 손이 가고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아 일부러 참아내지 않으면 8개 작은 봉지를 다 먹을 것만 같았다. 이 회사 ‘명진식품’이 있는 삼천리에 가봐야겠는 생각이 들었다.

창평현청 앞 400여년 수령 느티나무 군락

 창평면 삼천리는 앞산인 월봉산을 조망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이 마을은 1510년경 형성되었고 현재 여러 채의 한옥이 잘 보존되어 슬로시티가 있다. 먼저 마을 입구격인 담양 지방에서는 보기 드물게 평지에 세운 정자 남극루(南極樓)에서 출발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양로정(養老亭)이라 부른다. 향후 이 주변 1만 평 부지에 전통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러나 행정기관에서 지금까지 전통공원에 대해 마을주민 의견을 전혀 묻지 않아 혹여나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봐 많이 걱정하고 있다. 
또 마을 오른쪽으로 나 있는 왕복 2차선인 국지도 60호선 2.5km 구간이 4차선으로 확장된다. 마을주민들은 이 4차선이 획일적인 도로가 아닌 현재 2차선 양쪽으로 차로를 하나씩 만들어 갓길(노견路肩)도로로 만들어서 방문객들이 산책도 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한다. 행정기관에서 귀담아 들어두면 좋을 듯하다.

 마을을 돌면서 안내판을 보니 ‘삼지천(三支川)마을’ 이라고 표기가 되어있는데 3개의 냇물 안에 있는 마을이라 ‘삼지내(三支內)마을’이 맞다고 한다. 담장 역시 돌로만 쌓아진 제주도의 돌담과 구분하여 ‘흙돌담’이라고 부르면 좋겠다고 한다. 삼천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목길이 있다고 해서 가보니 지게지고 지나다닐만한 소로(小路)였는데 담장이 일자로 반듯한 것이 아니라 튀어나오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하는 올록볼록한 형태가 흥미로웠다. 한국의 자연적인 리듬감이 느껴졌다. 
생활속 예쁜정원 집, 첨성대를 닮은 돌탑 집, 집집마다 개성적인 디자인을 한 나무 대문들, 돌탑을 사랑하는 집, 석류나무가 많은 집 등의 마치 택호(宅號) 같은 호칭들은 사람 이름보다 훨씬 더 정겹기도 하고 다음은 어떤 집일까 하는 궁금증도 생겨서 좋았다. 

 창평면사무소를 지나 당산제를 지내는 은행나무를 보고, 아스콘을 걷어내 살린 400여 년 수령의 느티나무 군락을 감상한 다음 왼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창평시장으로 가는 길이라서 수도 없이 다녔던 길에 객사 자리가 있었다. 객사건물 지붕은 기와 모양 철판으로 씌워져 있고 밖에서 보이는 적벽돌의 커다란 굴뚝과 집 안쪽에 있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커다란 나무 대문 한 짝만 볼 수 있었지만 복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객사의 방치된 모습에 아쉬움을 안고 ‘명진식품’으로 향했다. 
우리 쌀 인절미 과자와 우리 밀 건빵 그리고 국내산 두부 과자를 인기 상품으로 만든 박순애 사장님은 해곡리 유씨종가집 태생으로 명절과 제사 때 한과 만드는 것이 생활이었다.
작은 군 단위에서 사업하기가 어떤지 물으니 옛날엔 인력 구하기가 쉽고 다 알음알이로 오는 사람들이라서 자기일 하듯 성의껏 일해준 것이 좋았다면 지금은 인력 구하기가 어렵고 큰 시장(판매처)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라고 했다. 인력 부족으로 판로는 있지만 생산량을 줄이는 상황이라고 해서 이주민 고용은 어떤지 물었다. 명절 두 달 전이 가장 바쁜 시기인데 이주민을 고용하자니 소통이 어려워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주민은 일자리가 필요하고 고용주는 인력이 필요한데 문화 차이와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서로 만족도가 낮다고 하니 지자체에서 이주민 대상으로 사업장에 보내기 전에 교육시켜서 인력을 배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긴 시간을 들여 마을 설명을 해주신 송희용 이장님은 은퇴 후 귀촌해 ‘담미가’라는 식품회사와 ‘한옥에’ 라는 민박집을 운영한다. 
부인은 도시 출신이지만 3대째 엿을 만들고 있고 4대인 딸이 계승을 한다. 한방식품 산업학과를 졸업한 20대의 딸 송지현 씨에게 궁금증이 생겨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어려서부터 조부모님이 엿치기하는 것을 보고 자랐어요. 코로나 상황이 시작되면서 결혼 전 부모님과 함께하고 싶어 도시생활을 접고 집에 돌아왔죠. 사실 전통식품에 종사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많이 힘든 일이예요. 하지만 지금 많은 젊은이들이 가업을 잇고자 들어오고 있어서 좋아요.” 
부모님 세대의 경험 및 기술력과 젊은 세대의 사회관계망 소통(SNS)능력이 합해지니 전통식품(엿·조청·기정떡)구매에 30대 고객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새삼 전통과 현대가 조화되는 것이 중요함을 느꼈다./ 양홍숙 전문기자

예술공간으로 바뀔 마을 창고
객사와 굴뚝
마을앞 들녘의 남극루
명진식품 담양한과 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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