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6. 1592년 6월  (23화)

  사실 민경이는 능주가 산에 오르려고 준비하는 것을 보고, 산에 오르지 말고 덕령이에게 다녀오라고 말하고 싶었다. 덕령이가 떠난 이튿날부터 입에서 맴돌았다. 덕령이가 주둔한 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었다. 민경이가 말하면 능주는 바로 움직일 것이다. 지금까지 능주가 민경이 말에 토를 단 적도 없었다. 그래도 민경이는 능주에게 말하지 않았다. 덕령이 때문이었다. 덕령이가 떠나기 전에 시난고난 앓고 있는 어머니를 걱정해 능주에게 별도의 지시를 내렸다. 석청을 따서 꿀에 재웠다가 시어머니께 차를 끓여 드리라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니 대용으로 꿀차를 생각한 것이었다. 근행 때 친정에서 가져온 마늘 재운 석청을 덕령이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죄다 시어머니께 드렸다. 
  
 능주가 가장 비중 있게 한 일 중 하나가 석청을 따는 것이었다. 때죽꽃이 피면 만사 제치고 산에 올랐다. 석청을 찾아 산을 헤맸지만 빈손으로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산에 오를 때마다 석청을 딸 수 있다면 석청이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지역마다 때죽꽃이 피는 시기가 달라, 남쪽의 영암 월출산부터 북쪽의 덕유산까지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산에 오르곤 했다. 한 달 반 동안 대여섯 번 이상 산에 오르지만 석청을 따오는 경우는 고작 한두 번에 불과했다. 벌집을 거르고 나면 두 돼 가량 되는데, 팔 할 가량을 마늘 재우는데 사용했다. 1년 이상 재워야 효과가 좋다면서 1년간은 단단히 보관했다. 그렇게 마련한 꿀은 시어머니 전용이었다. 민경이가 덕령이에게 직접 꿀차를 끓여 주어도, 덕령이는 시어머니께 드리곤 했다. 누구보다 꿀차를 좋아했지만 항상 시어머니가 먼저였다.
 
 “왜 이제사 그런 생각을 했냐? 진즉 보내지.”
  시어머니가 타박했다.
  “그렇게 되었네요. 어머님, 수리동산으로 나갔다가 저녁에 올 게요.”
  “내 걱정은 말어라. 광옥이도 기다리던 눈치던데 좀 데려갈래?”
  “어머님 곁에 있어야 제 맘이 더 편해요.”

 민경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와 보니 광옥이가 대문 앞에서 근심어린 표정으로 서 있었다.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고, 광옥이는 땀으로 흥건했다. 뙈약볕 아래서 왜 저렇게 있는지 민경이는 알고 있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광옥이가 자기도 가고 싶다고 했다. 민경이가 할머니 곁에 있으라고 하자, 배웅도 하지 않고 뾰로통한 얼굴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점심때가 되어 민경이가 차려준 점심을 먹고, 민경이가 시어머니와 대화를 하던 중 대문앞에 서서 민경이가 나오기를 기다고 있었던 것이다. 민경이를 따라 나서고 싶어서.
 
 “날도 덥고, 할머니 거동이 불편하시잖아? 심부름도 해 드리고, 부채질도 해드려야 하는데, 네가 없으면 누가 하겠어?”
  “왜 맨날 내가 해야 해요?”
  광옥이가 삐진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너밖에 없잖아? 능주 아저씨 오시면 같이 가자.”
  “쳇, 아저씨가 오시면 아버님께 가보라 하신다면서요?”
  
 광옥이가 안방에서 나눈 민경이와 시어머니의 대화를 들은 모양이었다. 하긴, 나이가 어려도 자식인데 걱정이 되지 않을 리 없을 것이다. 덕령이가 기병하기 전까지만 해도 마당에서 무술을 연마하다 모두뜀을 뛰며 놀던 아이였다. 광옥이는 무예연습을 한답시고, 얏, 얏, 기합소리를 내며 작은 죽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천진하게 놀던 광옥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는데, 광옥이의 얼굴에서 천진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애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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