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도 없었던 것만 못하다

새들은 늘 탱자울을 드나든다
으르렁거리는 가시에 찔리기는 커녕
드나들 때마다 똘망똘망한 눈은 더 맑아진다

그 눈을 찬찬히 들여다볼까나
노란 탱자가 주렁주렁 향기를 뿜는다

울 주인은 길에서 떨어지지 말라며 웃는다

-고재종, 「맑은 눈」 -

세상은 가시가 으르렁거리는 탱자울 같다. 
그런 살벌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사람이다. 사람의 욕심이 오탁악세(五濁惡世)를 만들었다. 불교에서 오탁이란 첫째 전쟁, 기아, 전염병 등의 재난이 끊이지 않는 겁탁, 둘째 욕심, 성냄, 어리석음 때문에 번뇌하는 번뇌탁, 셋째 서로 믿지 못하고 그 인과응보로 인해 끊임없이 윤회하는 중생탁, 넷째 중생이 잘못된 사상을 믿고 옳은 것을 듣지 못하는 견탁, 다섯째 중생이 악업을 지어 수명이 점점 줄어드는 명탁이다.
  21세기 들어서도 전쟁과 기아, 그리고 요즘 대유행을 멈추지 않는 코로나19바이러스 같은 전염병은 끊일 줄 모르고 일어난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수그러들지 않는 한 이런 겁탁은 끝나지 않으리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화와 인구의 도시 밀집화 현상 이면에 이미 놓인 덫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세계화란 곧 전 지구적 자본화라는 말과 다름 아닌데, 그런 자본의 화염 속에 참여한 사람들의 욕심과 거기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의 분노가 합쳐져, 마침내 인간 세계에서 인간은 사라져버린 어리석음만이 어둠처럼 드리운다. 사람들은 결코 서로 믿지 못하고 절망에 빠진 채로 지구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의식 때문에 혹세무민하는 잘못된 사상이나 사이비 종교를 쫓아간다. 그런 사이비 종교가, 과학 기술과 합리적 이성이 가져온 것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오히려 더 창궐한다.
  
이런 세상에서 제일 살기 힘든 것은 서민들이다. 
중생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서민들은 역시 세상을 기세등등한 가시로 짜인 탱자울 같다고 여기리라. 그런 탱자울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새들이 있다. 참새나 뱁새들로 아주 작은 새들이다. 그런 새들에게 사실 탱자울이라는 경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의미가 없을 뿐더러 그곳을 자주 놀이터로 삼는다. 
한데 그렇게 드나들어도 “으르렁거리는 가시에 찔리기는 커녕/드나들 때마다 똘망똘망한 눈은 더 맑아진다” 
어떻게 그 수많은 탱자 가시들을 피하여 드나들까. 그것도 신기하지만 한 번의 실수로도 사방팔방 제 마음대로 난 탱자가시에 찔릴 법도 하련만 결코 찔리지 않는다. 탱자가시는 드세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죽하면 집의 안과 밖의 경계를 탱자나무 울타리로 쳤을까. 
  
새들은 그런 으르렁거리는 가시에 찔리기는커녕 드나들 때마다 눈이 더 똘망똘망 해진다. 
그러고 보니 시인은 아마도 그런 새에게서 선승의 이미지를 발견한 것 같다. 가시울타리라는 어쩌면 드나들며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경계, 곧 안팎과 유무와 범성과 진속과 시비와 선악과 미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유자애와 무애의 정신을 구가하고 있는 선승 말이다. 한마디로 경계부터 가시울타리가 쳐진 세상에서도 자기의 혜안 법안 불안 혹은 자기 안의 광명을 잃지 않고 푸르고 성성하게 수행 정진을 잃지 않는, 그래서 아주 천연스럽게 가시울타리 쳐진 경계의 세상을 허물며 안팎에 나툰다.
  
그렇다는 것은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시 구절들이 증명해준다. 
가시울타리를 드나들면서 더욱 맑아진 새들의 똘망똘망한 눈을 들여다보자하니 “노란 탱자가 주렁주렁 향기를 뿜는다” 한마디로 새들의 눈에서 그 눈망울 보다 수십 배는 더 큰 노란 탱자가 주렁주렁 쏟아질 듯 향기를 뿜는 것이다. 물론 그 노란 탱자는 탱자울에 열렸겠지만 그 삼엄한 경계를 노란 탱자 열매로 바꾼 것, 그것이 새들의 자유로운 드나듦의 결과라고 생각한 것은 시인의 상상력이다. 새는 이미 시인에서는 선승이기 때문에 선승의 경계 허물기는 그 마음의 경계인 눈에 탱자 열매를 열게 함으로 성취했다는 연상적 상상력이 아주 자연스럽다.
하지만 “울 주인은 길에 떨어지지 말라며 웃는다” 울 주인은 물론 조사일 것이고. 길에서 떨어지지 말라는 것은 그 노란 탱자 열매로 상징되는 깨달음에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겠다. 
깨달았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순간 다시  길 밖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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