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의 피로인
양진영 작가담양뉴스는 2019년 창간4주년 기념 『기획연재Ⅲ/소설』로 ‘2019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자인 양진영 작가의 걸작 장편소설 【소쇄원의 피로인】을 연재중입니다.
소설 ‘소쇄원의 피로인’은  제7회 송순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조선왕조 정유재란때 일본으로 끌려간 소쇄원의 주인 양산보의 후손들이 고향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과정을 사료를 바탕으로 그려낸 소설입니다. 양진영 작가의 장편소설 ‘소쇄원의 피로인’은 월2회 가량 지면을 통해 연재중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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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허허실실

“주군이 찾으십니다. 혹여 우리 일이 들통이라도?” 어느새 다가왔는지 솔례가 겁먹은 눈으로 말했다. 평민의 딸인 그녀는 며칠간 잠을 못 이루었는지 얼굴이 가무스름했다. 솔례 역시 귀국을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성당에 다니는 대여섯 명은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을지 몰랐다. 천주교 신부는 상하 구분 없이 인간은 모두 같다고 설파하고 있었다. 조선에서 신분이 미천했던 피로인은 이 말에 혹했다.  다시 조선에 돌아가서 양반의 핍박을 받으며 힘겹게 사느니…….차라리 왜인 주인을 섬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법했다. 조선에서는 신분 상승이 어려웠지만 일본은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바늘이나 팔러 다니는, 천한 상인에서 일본의 지배자까지 오른 걸물이었다. 그렇다 보니 조선에서 천대 받고 살았던 평민 계층에서는 귀국을 꺼리는 사례가 많았다.
 
그들 사이에 많이 회자되는 피로인이 사카자기 나오모리라는 조선인 영주였다. 조선에서는 천한 신분이었던 재인 출신으로 알려진 그는 임진왜란 중에 포로가 돼 우키타 히데이에의 가신이 됐다. 이윽고 히데요시 사후에 천하인을 결정하는 세키가하라 내전에서 이에야스 편에 서서 츠와노에 3만 석의 영지를 받았다. 이때부터 그는 데와노카미라는 관직을 받아 사카자키 나오모리라는 성을 썼다. 그는 이에야스가 자신의 주군이었던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를 공격한 오사카 전투에서 히데요리의 부인이며 이에야스의 손녀인 센히메 구출에 공을 세웠다. 이에야스는 그녀를 구한 무장에게 손녀를 시집 보낸다고 약속했으나 센히메는 혼다 가문으로 재가하게 됐고 이에 수치심을 느낀 나오모리는 할복했었다. 그의 삶은 비극적이었지만 조선의 천인에서 단숨에 일본의 영주가 된 그는 피로인들 사이에서는 늘 화제거리였다. 
 
몽린은 잔뜩 겁 먹은 솔례를 달래듯 말했다.
“허어, 그 무슨 방정 맞은 소리. 혹여 우리 일이 새 나가도 혼다님이 보내올 중신과 군사가 우리를 호위할 것이므로 아무 일 없을 것이야. 모두에게 안심하라고 일러라.”
 몽린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하고 주군의 거처로 발길을 돌렸다. 야스하루는 지난해에 은거해 쿄토에서 승려 행세를 하고 있고 현재 오즈의 영주는 야스모토였다. 지난8월에 천황의 부친이 죽어서 거개의 영주들이 후시미 인근의 저택에 머물고 있었다. 야스모토도 장례식 참석차 들렀다가 며칠 후에는 영지로 돌아간다고 들었다. 적적한 참에 한때 유학을 가르쳐 주었던 몽린을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는 듯했다. 
 야스모토는 다른 영주들과 달리 문예에 조예가 깊어서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다. 책 수집광이어서 조선에서 온 유학 서적을 비롯해 닥치는 대로 구입하더니 국조오례의등 천 권도 넘는 서적을 보유 중이다. 강항 등에게 사서오경을 왜어로 번역하도록 하고 그 댓가로 조선으로 돌려보내 준 아카마츠 히로미치라는 영주가 보유한 서적이 그 정도 분량이니 야스모토가 얼마나 책 수집에 열중했는지 짐작할 만했다. 그 탓에 책을 멀리하는 일본 영주들 사이에서는 서책이나 만지는 서생이라는 냉소를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시대가 바뀌어서 쇼균은 무신 보다는 문무를 겸비한 신하를 중용하고 있어서 야스모토도 막부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몽린이 처음 일본에 왔을 때 야스모토는 한 살 어린, 열두 살 소년이었다. 어디서 유교에 대해서 들었는지 공자묘가 어떻게 생겼느냐, 유교식 삼년상은 어떻게 지내느냐 등등 희한한 것을 물어보더니 삼사 년 뒤에는 사서오경을 구해 와 몽린에게 본격적으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당시까지 왜어로 된 사서오경이 없어서 몽린이 일본어로 떠듬떠듬 설명하면 야스모토가 알아서 이해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형이 죽어 야스하루의 후계자로 지명되자 몽린을 아예 유학 스승이라고 외부에 공표하고 곁에 머물도록 했다. 몽린이 이때부터 야스하루의 다두까지 겸임하게 된 것도 성내에 몽린을 잡아 두려는 야스모토의 뜻인 듯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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