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주간시평[대숲소리]
주간시평/【대숲소리】 출구 없는 반복의 정치고재종 칼럼위원(시인)

우리나라에선 하인리히 하이네 하면 ‘낭만적 순수서정시’를 쓴 독일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80년대 중반 시인 김남주가 그의 ‘정치시’를 번역해서 세상에 알리기까지는 우리는 다음의 「참으로 아름다운 5월」 같은 시들만을 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5월,/모든 꽃봉오리 피어날 때,/나의 가슴속에도/사랑이 싹텄네./참으로 아름다운 5월,/모든 새들이 노래 부를 때,/나의 그리움과 아쉬움/그녀에게 고백했네.”
 
 하지만 유태인 박해가 심했던 독일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난 죄로 그는 생의 후반기 25년을 조국을 등진 채 파리에서 망명생활을 한다.

거기에서 당시 보수 반동적인 독일 상황을 통렬히 공격하는 정치 풍자시 『독일, 겨울동화』 등을 쓰게 된 탓으로, 그는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고국에서 철저히 멸시 당한다. 그 명예가 회복되어 오늘날 독일문학에 있어서 괴테와 쌍벽을 이루는 수준으로까지 된 데는 무려 100여 년이 걸렸다.

「슐레지엔의 방직공들」이란 시는, “침침한 눈에 눈물도 없다./그들은 베틀에 앉아 이를 간다./독일이여, 우리는 너의 수의를 짠다./우리는 그 속에 세 겹의 저주를 짜 넣는다/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로 시작하여, 방직공들의 추위와 배고픔을 돌아봐주지 않는 하느님과, 부자들의 왕과, 잘못된 조국을 통렬히 비판한다. 저임금에 하루 16시간 이상의 노동, 게다가 산재보상도 없는 살인적 근로조건 속에 허덕이던 방직공들의 파업을 지지한 시이다.

그런데 그토록 좋아하던 위 시보다 오늘 내겐 그의 「내게도 예전엔 사랑하는 조국이 있었지」란 시가 생각난다. 시 제목에서 ‘있었지’라는 과거형을 쓴 것은 시인의 망명 전과 망명 후의 심경이 드러난 것인데, 내겐 그 과거형이 오늘 이 땅의 정치문화에 대한 이상과 그것의 좌절이 가져다 준 괴로움 때문에 새롭게 소환된다.

아르헨티나의 작가인 레오폴도 루고네스는 1916년에 쓴 글에서 “정치! 그것은 국가적 재앙이다. 이 나라 안에서 퇴보, 가난, 부패에 해당하는 것은 전부 그것에 뿌리를 두고 있거나 그것에 이용당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 오래전의 말이 오늘 우리나라 정치문화에도 여전히 적용 가능하다니 참으로 기막힐 노릇 아닌가.

 여야 대선후보나 그 수하들이 날이면 날마다 벌이는 날조된 사실과 왜곡된 신념, 적반하장과 뒤집어씌우기, 발뺌과 억측, 황당한 궤변과 견강부회, 거짓말과 개소리(Bullshit)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흑색 폭로전은 호보와 후보 부인과 후보 가족들의 도덕의 민낯을 낱낱이 확인케 한다. 공당의 대표들은 그것들을 상대 후보에게 덮어씌우기 위해 시시각각 입에서 썩은 악취를 풍겨 댄다. 그들의 편 가르기 싸움에 언론들이 부채질을 하면 마침내 싸움은 지엽말단의 문제가 되어 진실은 덮인다. 하여간 5년 내내 문재인 정부가 잘한 것 하나가 이 ‘편 가르기’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로버트 그린이 쓴 『권력을 경영하는 48법칙』이란 책을 보면, 권력의 속성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마키아벨리즘의 가치를 재발견하여 ‘세계화 사회’ ‘정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자고 외치는 무차별적 적자생존주의자들의 무서운 권력 쟁취와 경영 법칙이 수두룩하다.

거기에 보면 “지저분한 일을 직접 하지 말라”라는 법칙이 있는데, 자기 이권 범죄는 감추고 책임을 떠넘기되 앞잡이를 이용하라는 내용은 오늘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철저히 사용하고 있다.
또 “일은 남을 시키고 명예는 당신이 차지하라”는 법칙이 있는 바, 나는 오늘 선거판에서 후보의 당선을 위해 사생결단하고 뛰는 사람들에게 우화 하나를 들려주고 싶다.

“눈이 멀어버린 닭이 있었다. 그 닭은 먹이를 찾아 흙을 파헤치는 게 습관이 된 나머지 눈이 먼 뒤에도 부지런히 흙을 파헤친다. 그러나 그 부지런한 바보에게 그런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멀쩡한 다른 닭이 눈먼 닭 옆에서 꼼짝 않고 있다가 그 파헤쳐놓은 낱알을 몽땅 채어 갔는데 말이다.” 돈과 거짓말로 산 후보를 위해서 일해 봐야 말짱 도루묵이라는 얘기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저명한 작가 알베르토 망구엘은 그런 정치꾼들의 지옥을 하나 마련한다. “지옥을 정의하자면 ‘우리가 했던 행동, 말, 생각이 모조리, 태초에서부터 무한수의 곱으로 무한히 증가하며 보존된, 출구 없는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 ‘출구 없는 반복’으로서의 지옥을 그들 때문에 우리도 같이 살아야 하니 너무 속상한 일 아닌가. 그런 지옥을 그들과 같이 살길 거부했기에 순수서정시인에서 현실참여시인으로 우뚝 선 하인리히 하이네는 그래서 누가 뭐래도 진실을 위해 치열했던 시인이다. *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담양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