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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의 詩이야기/ 詩의 향기,삶의 황홀(25)(고재종 칼럼위원)
▲ 고재종 칼럼위원

다시 살구꽃이 필 때

사방에 꽃이 펑펑 터지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마종기 시인의 <꽃의 理由>라는 시를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마종기 시인은 아동문학가 마해송 씨의 아들로 오랫동안 미국에서 의사노릇을 하면서도 모국어로 시를 쓴 시인입니다. 대표시집으로 <이슬의 눈> 등이 있습니다. 
 
꽃이 피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다
꽃이 필 적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떠는 것도 몰랐다.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보면 어쩔까.

                  꽃이 지는 이유도
                  전에는 몰랐다
                  꽃이 질 적마다 나무 주위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물 젖은 바람소리.
                                                -마종기,「꽃의 理由」

  꽃이 필 때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떠는 걸 볼 수 있는 사람은 시인뿐입니다. 꽃이 질 때 나무 주위에 깃든 생명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소리를 듣는 사람도 시인뿐입니다. 이 바쁘나바쁜 세상에 광양의 매화꽃, 구례 산동의 산수유꽃 피어 만화방창인데, 그 꽃잔치에 한번 못가는 주제에 꽃 피고 지는 일의 사랑을 그 누가 쉽게 알 수 있겠습니까?
  마종기 시인은 「상처」라는 시에서 산다는 것은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봄바람에 바르르 떨며 피어난 꽃은, 바람에 떨어지며 ‘바람소리’를 일깨웁니다. 산다는 것이 ‘바람’이라고 했으니, 꽃은 지며 생명의 씨를 맺는다는 이야기겠지요. 그것이 삶이라는 것이겠지요. 부연하면 바람은 우주의 호흡이니 꽃 피고 지는 일이나 우리의 삶이 모두 우주적인 일이라는 말이지요.
  
 세상의 모든 생물은 제 새끼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주고 죽습니다. 꽃도 바람으로 피고 지며 생명의 씨를 열매에게 줍니다. 이것은 신성한 사랑이고 삶의 엄연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제쯤 꽃을 피우며 나무가 몸을 떠는 순간을 한번 보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한 꽃이 지며 모든 생명을 일깨우는 일도 한번쯤 생각해보면 참 좋겠지요. 그리고 우리도 바람 불어 꽃 피고 꽃 지는 날, 바람나서 사랑 한번 해야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꽃이 종자식물의 생식기라는 사실을 여러분도 아시겠지요. 꽃은 또한 암꽃술, 수꽃술, 꽃부리, 꽃받침 등 아름다운 우리말로 이루어진 사실도 아시겠지요. 또 하나 ‘꽃 본 나비, 물 본 기러기’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은 그리운 임을 만남을 이르는 은유법이라는 것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곳저곳 마을마다 복사꽃 살구꽃이 필 때, 다음은 장옥관 시인의 <다시 살구꽃 필 때>라는 시를 소개해드립니다. 장옥관 시인은 1955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시집으로 <하늘우물> 등이 있지요. 
 
옛 외갓집 살구나무 꽃 필 때 
막내이모는 아궁이 속에서 굴러 나온 
달을 품고 잠이 들었다 
곤곤한 달빛 위로 흰 발목이 둥둥 떠다니며 
장독마다 차오르는 물소리를 
내 어린 풋잠은 엿들었던 것이니 
그런 날이면 한밤중에도 
오줌보가 한껏 탱탱하게 부풀어올랐다 
문풍지를 스미는 희미한 향기 
먼 우주의 조기 떼가 안마당까지 몰려와 
하얗게 알을 슬어놓고 
꽃잎 떨어진 자리마다 눈 맺혀 
돋아나는 초승달 
벌겋게 달아오른 외할머니의 아궁이는 
한밤 내내 식을 줄 몰랐다 
그 불씨 이어지고 이어져 
둥그스름 달집 내 딸아이의 몸 속으로 
벌건 숯불 다시 타올라 
봄밤의 구들 뜨겁게 달구어낸다 
                                            -장옥관, 「다시 살구꽃 필 때」
 
 장옥관의 시 「다시 살구꽃 필 때」는 신화적, 우주적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는 시입니다. 존재의 떨림과 사물의 비의로 가득 찬 상상력으로 우리를 순식간에 삶의 황홀로 데려가줍니다. 이런 '신성한 이야기'인 시 속의 살구꽃, 아궁이, 달, 장독, 물소리, 알, 달집, 불씨, 벌건 숯불 등은 여성의 생식력과 원초적인 성적 욕망에 대한 원형상징물입니다. 
그러므로 살구꽃 필 때 "막내이모는 아궁이 속에서 굴러 나온/달을 품고 잠이 들었다"는 것은 생식력과 결부된 원초적 성욕을 품고 봄밤의 잠에 들었다는 뜻이지요. 아울러 이때 사내아이인 어린 '나'는 "장독마다 차오르는 물소리를" 잠결에 엿들으며 오줌보를 탱탱 부풀리는데, 이는 외할머니며 막내이모는 모두 어머니라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조용하지만 분주한 생식력은 "먼 우주의 조기 떼가 안마당까지 몰려와/하얗게 알을 슬어놓고"라는 표현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달빛이 조기 떼가 되어 장독대 가득 물소리를 내며 안마당으로 들어와 하얗게 알을 슬어놓는다는 상상은 바로 살구꽃이 피는 장관을 우회적이면서도 가장 핵심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원초적 생명력에 의한 탄생, 곧 살구꽃이며 조기떼 알이며 외할머니며 막내이모며 나중엔 내 딸아이의 둥그스름한 달집에까지 이어질 그 탄생의 '진통'엔 이처럼 우주가 함께 동참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 제일의 신화종교학자인 조셉 캠벨은 『신화의 힘』이란 책에서 신화를 '삶의 황홀한 경험'이라고 정의합니다. 외적 가치를 지닌 목적에만 너무 집착해서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내적 가치, 즉 살아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삶의 황홀을 되찾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벌겋게 달아오른 아궁이가 봄밤 내내 식을 줄 모르는  이 장관은 옛 외갓집이란 공간에 속한 것으로 신화적인 것인데, 그 불씨는 내 딸아이의 ‘둥그스름 달집’의 ‘벌건 숯불’ 곧 월경하는 자궁에까지 이어져 다시 타오릅니다. 그래서 신화는 곧 오늘의 삶의 황홀에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시에서 ‘풋잠’은 잠든 지가 오래지 않아 아직 깊이 들지 못한 옅은 잠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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