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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의 문화에세이(25)전고필(문화기획가, 향토사전문책방 이목구심서 대표)

유니끄 베뉴(Unique Vanue)의 확장을 통한 회합의 중심지 담양으로의 전환
 

서럽지만 문화는 아직도 공급자 중심이다. 1990년대말, 21세기를 맞이하며 문화의 세기가 오고 있다고 했지만 그것을 외친것도 중앙정부였고, 이에 부응하여 정책을 마련하고 인프라와 소프트웨어를 공급한 것도 정부였다.

문화부분에 대한 모든 정책의 근간을 정부가 주도했던 역사는 아직 변함이 없다. 달라진 모습이 있다면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국뽕 위주의 관제 행사가 부추김을 받고 집중 지원을 받던 시기에서 점진적으로 예술의 외연이 확장되고, 국민들의 문화적 경험이 다복다복 쌓이면서 그런 식의 접근이 오히려 예술의 창조성을 훼손하고, 현장에서도 외면받는다는 점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문화예술이 보다 더 일상속으로 다가갈 수 있는 정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대규모의 극장과 문화센터, 문화예술회관 등에서 문화의집, 생활친화적 문화공간, 생활문화센터 등과 유휴공간이나 폐산업시설의 문화공간화 사업 등이 200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직도 이런 문화시설이 부재한 자치단체도 있지만 담양의 경우는 다행스럽게 고서면 주산리의 폐교, 창평면사무소 옆 회의동을 생활친화적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했던 경험이 있고, 담빛예술창고, 해동문화예술촌과 같은 곳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전국 각지의 지자체와 문화활동가들에게 선망의 장소로 꼽히고 있다.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타지역의 획일화된 시설 중심으로 공간을 구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기에 공간 자체가 관광매력물과 연접하여 더 뜨거운 명소로 각광 받고 있다.

문화적으로 좋은 공간이란 접근성이 용이하고 문턱이 낮고, 채워진 것도 있지만 비워진 공간이 있어서 새로운 형태의 전시와 공연과 발표 및 회합이 언제나 가능한 곳이어야 한다.

그런면에서 보더라도 담양의 문화공간은 충분히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운영되고 있는 강점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가 되면서 대면은 줄어들고 비대면이 일상화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소규모의 회의와 워크숍 등은 지속되고 있다. 안전한 우리끼리 삶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트렌드에 부합하는 것이 유니끄베뉴와 같은 시설이다. 국제적인 회의는 컨벤션센터를 활용하지만 소규모 회의는 이동이 용이하고, 독립된 활동이 보장되며, 숙박과 음식이 제공되는 공간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예전 같으면 호텔이나 연회장을 갖춘 곳이 주목을 받았지만 현 시기에는 그런 경직된 공간은 선택지에서 제외되는 경향이 높다.

유명한 명소로서 주목도도 높고,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함께 있으면서 논스톱 서비스가 제공되는 유니끄베뉴는 지금 담양이 도입해야 할 가장 시급한 시설이자 프로그램이다. 이를테면 죽녹원의 시가문화촌과 같은 공간, 담빛예술창고·해동문화예술촌 등과 연계된 유휴공간, 도시재생사업으로 새롭게 조성된 담빛담루를 비롯한 담빛길의 유휴공간, 고착된 공간이지만 변용 가능한 대나무박물관이나 가사문학관 같은 곳 등이 그 대상으로 적절하다.

이제 문화공간과 시설은 본원적인 자기 역할에 더해 소비자의 니즈에 부합하는 것으로 변화무쌍한 시도가 가능하는 것이 좋은 공간으로 선택 받을 수 있다.

굳이 수익 발생률과 체류시간의 증대와 지역에 대한 선한 이미지의 구축이라는 강점 말고도 현재와 미래가 그 공간에서 발현되는 장으로서의 역할이 매우 유의미한 점이다. 과거의 정부 정책에 의해 깍두기 같은 시설이 장소만 다를뿐 천편일률적으로 들어설 때 적어도 담양은 그 방식을 따라가지 않았다.

자치단체의 수장과 책임을 맡은 공무원들은 관련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베껴 쓰기도 아니고, 오늘 당장에 만족하는 시설이 아닌 담양과 운명을 같이할 미래를 염두에 두고 기반 시설을 구축해왔던 것이다.

이런 강점들이 앤데믹을 준비하는 지금 시점에서 고려되는 것은 어떨까? 바다와 산이라는 천혜의 자원을 관광 중심으로만 운영하던 강원도가 워케이션의 성지로 돋움하며 더욱 선호하는 매력적인 곳으로 지위를 굳혀가는 것은 담양의 입장에서 강건너 불구경 하듯 지켜 볼 일은 아니다. 거슬러 보면 담양은 옛부터 이런 회합의 성지였던 역사를 지속해 오고 있지 않은가? 소쇄원의 역할이 당대 문사들의 살롱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나, 면앙정에서 송순의 회방연을 열고 4명의 문인들이 스승을 가마에 메어 주던 일. 식영정 아래 성산의 계류에 11명의 선비가 모여 시회를 열고 시대를 걱정하고 미래를 기약했던 탁열도의 행차, 제봉 고경명의 격문에 추성관에 한데 모인 호남 의병, 면앙정 가단, 식영정 가단, 수남 학구당, 수북 학구당, 후대의 상월정과 영학숙과 창흥의숙, 오늘날의 대성사. 마치 대나무 숲처럼 평화로울때는 학문과 시회를 위한 모임이 중심지로, 전란시에는 구국의 일념으로 죽창을 다듬었던 곳이 아닌가.

모든 곳을 한번에 다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나씩 시범적으로 설치하고 그 운영은 민간이 근력을 키우고 차차 도맡아 하며 자립과 발전의 도화선으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기존 방식의 관광이 규모의 축소, 안전관광, 독립된 생활 보장, 체류시간 증대, 현지민과의 접촉 기회 확장 등으로 변화하는 시점임을 공감했으면 좋겠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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