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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편견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박환수 칼럼위원

편견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 박환수 칼럼위원

지구상의 종교를 분류하면 흔히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등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 종교들은 교리든지 자신의 생각이든 반드시 확신과 믿음이라는 것을 신도들에게 가르치고 주입시킨다. 종교와 비슷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식의 논리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고착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을 전수해주는 선생님의 역할에 따라 미래세대를 살아 갈 학생,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어떤 방향으로 가르치느냐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필자가 아주 오래 전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비행기를 그리라는 선생님 말씀에 잠자리 모양의 날개가 달린 비행기, 즉 수직적 시각에서 보는 비행기를 그렸는데 옆 친구는 별로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약 45도 기울어진 측면에서 본 비행기를 그렸다. 멀리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실제로 그런 모양인데 왜 나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까 하는 창피함이 지금도 잊어지지 않고 평생을 고착된 시각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즉 편견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는 것이다. 

평면의 개념에서 벗어나 입체적 관점을 가르치고 다양한 각도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물의 모양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스스로 그것을 깨우치지 못한 나 자신을 지금도 사고가 고착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고 있다. 많이 들었던 얘기지만 코끼리를 만진 장님들이 다양한 표현을 하지만 결국 코끼리는 코끼리일 수밖에 없듯 항상 진실과 사실을 찾기 전에는 섣불리 편견을 갖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오늘도 여러 사건사고들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범죄가 되는 것은 수사를 받고 잘잘못을 가려내는 기관이 있고 법이 있지만 도무지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죄의 유무를 떠나 그 사람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고 설사 그렇다 해도 법이 잘못되었다는 고착된 편견속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거짓은 진실을 이기지 못하지만 어떤 사물이나 사건, 논리를 두고 자신만의 주장을 굽힐 줄 모른다. 

나의 편향적 시각, 편견은 한번 만들어지면 쉽게 변할 수 없고 그 편견은 매사를 색안경 끼듯이 나만의 색깔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게 된다. 그래서 학자들도 계파가 있고 모든 직업의 종류마다 그런 편견이 존재한다. 편견이 세상과 부합하고 그것이 진실과 정의에 따른 것이면 논란이 될 수 없다. 그것은 공정과 상식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조작된 것이라면 큰 문제이며 더 큰 문제는 우리가 그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편견에 싸여 사는 것이다. 

요즘 정치와 언론에 관련된 사람들은 이런 점을 교묘히 이용하는 대표적인 집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치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고 편향된 언론은 이를 전달해주며 시민은 어떤 언론을 듣고 보느냐에 따라 편견으로 키워지는 집단이 되어 버린다. 

국가는 나라의 근간을 헌법으로 정해놓고 이런 편견의 집단들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좌냐 우냐의 생각의 차이는 있지만 법은 공정이라는 잣대로 흔들림 없이 국가를 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와 같은 국가의 정체성은 헌법이 정해놓은 것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던 간에 흔들려서도 흔들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모두가 통합을 말한다. 하지만 헌법의 정신을 훼손해가며 편견을 가진 사람들과 통합은 그럴듯하게 보일지라도 진정한 통합은 이루기 어렵다. 지금도 갈등과 분열이 더해가는 것은 자신의 편견이 나라의 근간보다 우선하고 버릴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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