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천년담양 담양이야기
담양알기3/ 담양의 역사인물(47) 의병장 추기엽(秋琪燁)

담양알기3/ 담양의 역사인물(47) 의병장 추기엽(秋琪燁)

▲ 추기엽 의병장 기념비(담양군 무정면 덕곡리)
▲ 의병전적비

추기엽 의병장(1879~1909)은 담양 무정면 덕곡리가 본향이다. 

당초 조선 왕궁을 지키는 친위대 제1대대 소속 장교로 근무했고 진위보병 제1대대 장교인 부위·정위·참령을 거쳐 정3품 통정대부 시위연대 향관으로 활약했으나 1907년 한일신협약 체결로 대한제국 주권이 위태로워지자 국권회복을 위해 윤현보·이봉오 등과 함께 전북 익산에서 봉기한 황준성 의병대에 가담했다.

무장항일 투쟁을 벌이던 중 음력설을 맞아 잠시 고향으로 가던 중 일제에 발각.체포되어 1908년 3월 전북 재판소에서 유향(귀양살이)10년형을 언도받고 완도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황준성·이봉오 등과 함께 탈출해 해남군 송지면 대둔사에 들어가 150여명의 의병을 모집하고 호남창의대장으로 추대되었다. 1908년 대둔사를 근거지로 삼아 미황사의 황준성, 대흥사의 황두일 등과 함께 40여차례 교전하며 많은 전공을 세웠으나 1909년 7월 대둔사 전투에서 다수의 의병들이 전사하자 책임소재로 다투다가 남창 해변가에서 부하 6명에게 암살당해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으며 담양군 무정면 덕곡리에 있는 의병장 추공기엽 기념비가 2004년 12월 24일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독립유공자공훈록> 제9권에 기록된 공적에 의하면, 
“추기엽 장군은 1907년 9월경 이봉오·윤현보·황준성 등과 함께 활동하다 일제에 체포되었다. 1908년 3월 3일 유형(流刑) 10년형을 받고 완도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탈출한 추 장군은 해남·영암 일원에서 의병을 모집해 황준성이 대둔사에서, 황두일은 대흥사에서, 추 장군은 미황사에서 각각 수백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활동했다. 1908년 8월부터 해남 등 해변을 중심으로 40여 차례 활동했다” 고 기록돼 있다.

한편, 무정면 덕곡리 추기엽 의병장기념비 옆에는 의병전적지가 있으며 담양군이 세운 전적비에 따르면, 이곳은 1909년 5월 17일 의병장 추기엽 이하 40여명이 덕곡리에 잠복중 5월 16일 새벽 일본국으로부터 불시의 기습을 받아 약 5시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의병 10여명이 전사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광호 편집국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