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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의 詩이야기/ 詩의 향기,삶의 황홀(26)(고재종 칼럼위원)

출렁거림에 대하여

▲ 고재종 칼럼위원

온 천지가 꽃 잔치와 초록잔치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저는 이진명 시인의 「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라는 슬픈 시 한편을 우선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진명은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했습니다.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등 여러 권의 시집이 있지요.

김노인은 64세, 중풍으로 누워 수년째 산소호흡기로 연명한다
아내 박씨 62세, 방 하나 얻어 수년째 남편 병수발한다
문밖에 배달 우유가 쌓인 걸 이상히 여긴 이웃이 방문을 열어본다
아내 박씨는 밥숟가락을 입에 문 채 죽어 있고,
김노인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아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급차가 와서 두 노인을 실어간다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거동 못해 아내를 구하지 못한,
김노인은 병으로 실려가는 도중 숨을 거둔다
  -이진명, 「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지독한 죽음의 참상을 옮겨놓은 시로써 참으로 목불인견의 내용입니다. 중풍으로 수년째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수발하던 아내가 어느 날 밥을 먹다가 음식물이 기도에 막혀 쓰러집니다. 남편은 그걸 눈 뻔히 뜨고 바라보았지만 중풍으로 거동을 못하니 아내를 구하지 못한 채, 다만 눈물 가득 머금은 눈으로 아내 쪽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아내가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편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그 고통 때문에 결국 남편도 이웃에게 발견되어 병으로 실려 가던 중 죽습니다.

인간의 삶은 때때로 이렇게 무참하고 부조리합니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신념이나 신앙의 체계마저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삶이 참절의 극에 달합니다. 땅투기, 부정축재, 병역면제, 이중국적, 논문표절, 공금횡령, 세금포탈 등의 갖은 파렴치한 죄악을 저지르고도 턱하니 장관이 되고 지도자가 되는 1% 부자들의 세상에서 겨우겨우 살면서, 또 사람들은 위 시의 김노인네처럼 비참하게 죽어갑니다. 이럴 때 과연 눈물 머금은 신은 우리를 내려다보시기는 하는 걸까요?

 그럼에도 “내일은 맑을 거야”라고 망망대해의 난파자는 말한다고 합니다. 그런 맹목적인 희망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삶인 것입니다. 부촌의 마님들은 천국을 마치 예약된 자리처럼 믿는다지만, 그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도 수정되어야 하나요? 아닙니다. 그럼에도 정의로운 자는 백단나무처럼 그를 후려치는 자를 향기롭게 합니다. 때때로 장님이 눈이 보이는 자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병마로 쓰러져 고생하면서도 나라의 혜택이라곤 쥐뿔만치도 못 받는 사람들을, 그러므로 눈물 머금은 신은 꼭 내려다보고야 말 것입니다.  
 이 시에서 ‘병수발’이라는 말은 병자 가까이에서 여러 가지 시중을 드는 일을 말합니다. 노인 요양원에서 음식수발, 대소변수발, 목욕수발, 안마수발 등 다양한 병수발을 하는 봉사자들을 보면 가슴이 참으로 뜨거워질 때가 많지요.

 다음으로는 제 시 「출렁거림에 대하여」라는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아무래도 꽃 잔치와 초록잔치에 일렁이고 출렁이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가곡으로도 만들어져 유튜브 등을 통해 들을 수 있지요. 저는 1984년에 등단하여 지금까지 10권의 시집과 시론집, 에세이집 등을 7권정도 냈지요. 최근에는 불교의 선문답과 한국의 현대시의 교감을 추적한 『시를 읊자 미소 짓다』라는 에세이집을 펴내 한겨레신문과 한국불교신문 등 15곳이나 되는 언론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너를 만나고 온 날은, 어쩌랴 마음에 
반짝이는 물비늘 같은 것 가득 출렁거려서
바람 불어오는 강둑에 오래오래 서 있느니,
잔바람 한 자락에도 한없이 물살 치는 잎새처럼
네 숨결 한 올에 내 가슴 별처럼 희게 부서지던
그 못 다한 시간들이 마냥 출렁거려서
내가 시방도 강변의 조약돌로 일렁이건 말건,
내가 시방도 강둑에 패랭이꽃 총총 피우건 말건.  
                                                        -고재종, 「출렁거림에 대하여」 
 
 영혼의 자유를 지킨 화가라고 일컫는 루오의 그림 중 「베로니카」는 작품이 있습니다. 베로니카가 자신의 옷으로 성면(聖面) 곧 상처 입은 예수님의 얼굴을 씻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거기에 주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보는 사람이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게 될 만큼 감동적인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늘 꿈꾸었던 화가의 순결한 신앙심이 무척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다.
  
 그런 신앙심이 아닌 애인에 대한 사랑의 마음도 깊어지면 그것이 신앙심에 맞닿습니다. 애인을 만나고 온 날, 마음이 반짝이는 물비늘 같은 것이 가득 출렁거려서 바람 불어오는 강둑에 오래오래 서 있는 마음이야말로 얼마나 순결하고 애절합니까? 잔바람 한 자락에도 한없이 물살 치는 오월의 초록처럼, 또한 애인의 숨결 한 올에 가슴이 별처럼 하얗게 부서지던 시간처럼, 그렇게 싱그럽고 찬연합니다. 
  
 그런 못 다한 시간들이 마냥 출렁거려서 내 마음이 강변의 조약돌로도 일렁이고, 강둑의 패랭이꽃으로도 총총 피어나는 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성스러운 얼굴을 닦은 치맛자락에 주님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과 흡사한 일이지요. 특히나 로맨틱한 연인들이 자신들의 사랑에 신비로운 확신을 주기 위해서 하늘의 별자리까지도 둘만의 우주적 증표로 떠 있는 양 치부하는데, 이를 일러 더 무어라고 주석을 달겠습니까? 
 이 시에서 물비늘, 잔바람, 조약돌 등은 참으로 아람다운 우리말입니다. 잔잔한 물결이 햇살 따위에 비치는 모양을 이르는 말인 물비늘, 잔잔하게 부는 바람의 간결한 시적표현인 잔바람, 물결에 씻겨 작고 동글동글하게 된 돌을 가리키는 조약돌 등은 우리말의 대단한 향취를 얻은 말들입니다.
  
 시라는 것은 삶의 고통스런 모습을 표현하여 우리의 평안과 행복의 보금자리를 뒤흔듭니다. "나는 네가 아프다“라는 말은 비문법적 표현이지만 타자의 삶에 대한 무한한 연민을 시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사실 사랑하는 자식이 아프면 차라리 자기가 대신 아프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처럼 타자의 슬픔을 나의 슬픔과 아픔으로 같이 겪게 하는 것이 이진명의 시입니다.
 또한 시라는 것은 마음의 천변만화하는 구중궁궐을 표현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열정은 장미처럼 붉고 그 일렁임은 오월의 초록 잎새들과 같을 것입니다. 이렇게 맛난 것 먹고자 하면 임 생각나고, 좋은 것 보아도 임 생각나는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저의 시입니다. 세상에는 슬픔만 있으란 법도 없고 찬란한 날들만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슬픔과 사랑을 잘 변주하는 능력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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