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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4주년기념 기획연재Ⅲ(소설)/소쇄원의 피로인(제44화)양진영 작가

소쇄원의 피로인
양진영 작가담양뉴스는 2019년 창간4주년 기념 『기획연재Ⅲ/소설』로 ‘2019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자인 양진영 작가의 걸작 장편소설 【소쇄원의 피로인】을 연재중입니다.
소설 ‘소쇄원의 피로인’은  제7회 송순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조선왕조 정유재란때 일본으로 끌려간 소쇄원의 주인 양산보의 후손들이 고향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과정을 사료를 바탕으로 그려낸 소설입니다. 양진영 작가의 장편소설 ‘소쇄원의 피로인’은 월2회 가량 지면을 통해 연재중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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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허허실실

▲ 양진영 작가

야스모토는 스스로에게 취해 황당한 논리를 늘어놓는 몽린을 어이없다는 눈초리로 응시했다. 하지만 조금 전의 날카로운 눈빛은 아니었다.

“겪을수록 그대는 영리한 자야. 내가 그대에게 배울 것이 남아서 이왕이면 오래 같이 했으면 했는데 말이야.” 어투가 부드러워져 몽린은 잠시 혼란스러웠다. 곧 처단한다는 뜻으로도 들렸고 살려서 돌려보낸다는 뜻으로도 들렸다.

“그대가 방금 말한 기 말이야. 아주 흥미로운데…… 그것이 조선의 유학자가 심취했다는 태극도설인가 뭔가에 나오는 논리인가?”
“그렇습니다.”
“그것에 따르면 내 몸도 일본의, 수많은 기로 이루어져 있겠군. 그 기운이 흩어지면 나는 죽는 것이고.성리학에 따르면 내가 죽은 뒤에도 그 기는 내 육신이 모두 썩어가는 수십 년간 땅에 남아 있다, 그래서 무덤 속에 육신이 모두 썩어 없어져야 비로소 사람이 죽은 것이다, 그런 교리를 믿는 조선인은 부모가 죽어 무덤에 묻혀도 살이 완전히 썩기 전까지는 기가 주변에 떠돈다고 보아서 제사를 열심히 지낸다, 그런 말인가?”
“맞습니다. 바로 알고 계십니다.”
“흥. 나를 부추겨서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군. 영리한 그대에게 그 정도 계략은 아무 것도 아니겠지. 내가 유학에 흥미가 있는 것을 알고 성리학과 기를 들먹여서 나를 혹하게 하려는 것이야, 지금 그대의 머릿속 생각은!” 야스모토는 고함을 지르는 척 했지만 노기는 없었다. 
“좋아. 내가 한번 넘어가 주지. 내가 제안을 하나 하겠어. 그대가 오늘밤 날을 새서라도 그 태극도설을 내 머리에 집어넣어 봐. 내가 내일 새벽까지 그대가 말한 기 논리를 터득하면 그대의 가족과 그대를 따르는 조선인 시종이 모두 귀국하도록 허락하지.” 
“네? 그 말씀 진정이십니까. 약조하시는 것입니까?” 몽린은 오즈의 왜인이 하늘처럼 섬기는 영주에게 약속을 걸자고 했다가 흠칫 목소리를 낮추었다. 일본의 영주는 자신의 수족은 누구의 허락도 없이 목을 칠 수 있는 권력자이다. 그러나 야스모토는 선선히 말했다.
“물론이야. 사내끼리의 약속이니까. 일본 사내와 조선 사내의 내기이니까 각오를 단단히 해!” 돌이켜 보면 배움에 목 마른 야스모토는 일전에도 사서오경의 어떤 문장을 놓고 내기를 한 적이 종종 있었다. 
“알겠습니다. 저희 어머니를 놓아 주신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것입니다.”
“아직 그대의 귀국을 허용하지는 않았어! 너무 앞서나가지 말고.”
야스모토는 손으로 초의 심지를 자르며 일갈했다. 
“그대는 아마 자신의 계략이 모두 성공했다고, 지금쯤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부르겠지. 영리한 그대는 마사즈미님을 움직이면 아버님도 어쩔 수 없이 그대를 놓아줄 것으로 계산하지 않았나?” 야스모토는 몽린의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인다는 투로 말했다. 그것은 어느 정도 맞는 추측이었다. 마사즈미는 오래 전부터 히데요시의 유일한 아들은 죽이는 일에 앞장섰다. 2년 전에 이에야스가 시작한 오사카 전투도 기실 그의 계책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야스하루는 옛정을 내세워 참전에 소극적이었으니 마사즈미 입장에서는 눈에 가시였을 것이다. 야스하루가 막부에 신임을 얻고 있는 아들에게 냉큼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으면 마사즈미의 함정에 걸려들어 가문이 단절됐을 수 있었다. 마사즈미와 야스하루의 악연을 아는 몽린은 그 점을 이용해 오윤겸에게 마사즈미를 설득하도록 권유했었다. 몽린이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자 야스모토는 비아냥대는 말투였다.

“어쩌면 그대는 탈출이 발각되어도 무사할 것이라고 다른 조선인을 설득했을 것이야. 그렇지 않나?” 야스모토는 짓궂게 물고 늘어졌다. 그 말은 솔례에게도 여러 번 했었다. 야스하루의 입장에서는 구태여 조선인 포로 수십 명을 잡아두려고 마사즈미와 다툴 이유가 없었다. 잘못되면 가문이 반쪽 날 위험이 있으니까. 
“흐응. 답변을 못 하는군. 역시 영리하고 위험한 자야, 그대는! 주인에게 위험한 부하는 없애버리거나 내쫓는 것이 최선이라고 아버님은 늘 충고하셨지.”
“죄송합니다. 저희 모자에게 잘 대해주셨는데…….”
“그대답지 않게 입 발린 소리를!”
“…….”
“내일 결과야 어찌 됐건 그대는 좀 전에 말한 자사 선생의 교시를 충실히 따른 셈이군. 환난을 당하면 환난에 처한 대로 행하라, 했는데 그대는 다른 조선인처럼 분노를 못 참고 주인에게 대들다 살해되거나 스스로 자결하지 않았단 말이야. 또 군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깨달아 얻어내야 한다고, 했는데 그대는 다도와 승려 신분이 일본에서 견디는데 유리하다고 보아서 그것을 택했고 그 지위를 이용해서 고국으로 돌아갈 계책을 세웠으니 그대야 말로 군자의 길을 걸어 온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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