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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의 詩이야기/ 詩의 향기,삶의 황홀(27)(고재종 칼럼위원)

  감꽃과 가시 

이번 주 광주에서는 여러 5.18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주의 피로 일군 이 땅의 민주주의에 대한 꿈이 많이 퇴색하는 것 같아 오늘은 그 반성의 시가 되는 김준태 시인의 「감꽃」이란 시를 마련하였습니다. 
  김준태 시인은 1948년 해남에서 출생하여 1969년 《시인》지로 등단한 뒤 이 땅의 민주주의와 오월과 통일을 노래한 많은 시집을 냈습니다. 특히 80년 5.18 이튿날엔 당시 전남일보에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 십자가여!」라는 장시를 최초로 써서 발표함으로 광주참상을 내외에 알렸고, 그 바람에 신군부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은 시인이기도 합니다.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 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김준태, 「감꽃」

 어릴 적, 남녘의 오월이면 우리는 감꽃을 셌지요. 새벽같이 일어나 마당가에 하얗게 떨어진 감꽃을 주워 먹기도 하고, 목걸이를 만들어 걸기도 했지요. 감꽃을 주워 먹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우리는 형제들과 우애 있게 지냈고, 부모님 말이라면 추상같이 여기면서도 부모님을 섬기는 데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지요. 배고파 감꽃을 주워 먹으면서도 그걸 다 먹지 않고 목걸이를 만들어 형제들에게 서로 걸어주던 때는 순수의 때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부모님들은 또 얼마나 흐뭇해하였을까요?
 그런 남녘에, 광주에, 전쟁과 같은 일이 일어나고 말았었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하루아침에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자들이 자기들의 권력욕을 채우겠다고 나서서 감꽃을 함께 세던 형제들에게 총을 쏘아대고, 칼을 찔러대고, 군화발길질을 하고, 발가벗겨서 시멘트바닥에 질질 끌고 갔지요. 소위 신군부라는 군인패거리였지요. 18년간 군부독재에 시달렸던 이리를 피하니 웬걸 그보다 더한 범이 나타난 셈이지요. 그러니 그에 당당히 맞선 사람들은 당당했지만, 우리같이 무지렁이가 할 일은 당당히 맞서다가 죽은 자들의 머리를 셀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그래도, 그렇게 죽은 이들의 머리를 세며 삶을 엄정히 세우던 우리가 지금은 무엇을 세고 있습니까?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고 있습니다. 항쟁 당시 죽고, 부상당하고, 또 그 항쟁 때문에 감옥 가고, 직장 못 잡고, 가정파탄이 된 사람들은 아직도 배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그 항쟁 덕으로 교수가 되고, 기자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구청장도 되고, 시인도 된 사람마저 돈을 발라 엄지에 침을 세지요.
  
 이제 세계는 전지구적 자본화의 완성 단계에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행세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지요. 그러니 있는 자들은 더 많은 돈을 쌓으려 하고, 그 다음 중산층들은 있는 자들을 따라가기 위해 뱁새가 황새 따라 가듯 하고, 피라미드의 제일 하부구조에 있는 없는 사람들만 온 어깨와 등 위에 평생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다가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되지요. 하지만 그렇게 돈만을 세다가 내일은 무엇을 셀까요? 우리는 마침내 죽음의 나이를 셀까요? 
 이 시에 나온 ‘엄지’는 엄지손가락, 그러니까 손가락 중 제일 굵고 짧은 손가락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입니다. 흔히 ‘어미’를 가리키는 ‘엄’에 ‘손가락 지(指)’를 붙여서 엄지가 된 걸로 아는데, 이희승 국어대사전에 보면 엄지는 명사로서 순우리말인 것입니다.

 이번 주 내내 우리 지방에선 여러 오월 행사를 치릅니다. 올해는 새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당 국회의원 전원까지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럼에도 오월 영령들에게 항상 죄스러운 것은 우리가 해마다 외치는 정의에 대한 다짐이 구호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남진우 시인의 「가시」라는 시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 시는 바로 우리 마음속의 허위나 양심을 건드리는 시이기 때문입니다.
남진우 시인은 1960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시집으로 「죽은 자를 위한 기도」 「타오르는 책」 등을 펴냈습니다.
 
물고기는 제 몸속의 자디잔 가시를 다소곳이 숨기고
오늘도 물 속을 우아하게 유영한다
제 살 속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저를 찌르는 
날카로운 가시를 짐짓 무시하고
물고기는 오늘도 물속에서 평안하다
이윽고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사납게 퍼덕이며
곤곤한 불과 바람의 길을 거쳐 식탁 위에 버려질 때
가시는 비로소 물고기의 온몸을 산산이 찢어 헤치고
눈부신 빛 아래 선연히 자신을 드러낸다
  -남진우, 「가시」

  일생에 단 한번 우는 전설의 새가 있습니다. 그 울음소리는 이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둥지를 떠난 그 순간부터 그 새는 가시나무를 찾아 헤맵니다. 그러다가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를 찾아 스스로 자기 몸이 찔리게 합니다. 죽어가는 새는 그 고통을 초월하면서 이윽고 종달새나 나이팅게일도 따를 수 없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릅니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와 목숨을 맞바꾸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세상은 침묵 속에서 귀를 기울이고 신까지도 미소를 짓습니다. 그 이유는 가장 훌륭한 것은 위대한 고통을 치러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콜린 맥컬로가 쓴 소설 <가시나무새>는 바로 이런 ‘켈트의 전설’을 배경으로 아름답고도 매혹적으로 펼쳐집니다.  물고기가 제 몸속에 가시를 숨기고서도 물속에서 우아하게 유영을 하지만, 죽음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제 온몸을 산산이 찢고 가시를 선연히 드러내는 모습,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삶에 대한 알레고리입니다.  
 삶은 음험합니다. 가슴 속의 가시 때문입니다. 삶은 무사안일 합니다. 가슴 속에 가시를 품고도 유유하기 때문입니다. 삶은 허위로 가득합니다. 가슴에 가시를 품고도 이를 짐짓 무시하고 오늘도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삶은 늘 괴롭습니다. 이 가시가 늘 제 자신을 찌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물고기가 제 몸 속의 가시 때문에 유유히 유영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인간에게도 그 가시가 있어야 합니다. 몸속의 그 가시가 증오건, 허위건, 양심이건, 진실이건 그 가시로 신음하고, 그 가시로 꿈꾸며, 그 가시로 긴장하고, 그 가시로 의연하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삶이 이렇게 고통인 것은 어느 누구도 살아서는 자기 몸속의 가시를 밖으로 드러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밖으로 드러낸 순간 우리는 이미 일평생 행복에 대한 꿈으로 허덕이던 마음을 까마득히 잊고 새로운 삶으로 건너가는 죽음의 관문을 지나고 있을 테니까요.
 이 시에서 ‘곤곤한’이라는 형용사가 나옵니다. 먼저 퍽 곤란함, 몹시 빈곤함을 가리키는 한자어 ‘곤곤(困困)’과, 또 많이 흐르는 물이 치런치런한 모양, 펑펑 솟아오르는 물이 세찬 것을 가리키는 한자어 곤곤(滾滾)이 있는데, 이 시에서는 곤곤한 다음에 불이 있으니 ‘세찬 불’을 가리키는 걸로 보아 뒤의 곤곤이 변형된 형용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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