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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 칼럼(2)/ 달팽이 걸음으로 삼인산을 오르며정호 사무국장(담양군 슬로시티사무국)

담양뉴스는 기획취재 【슬로시티 담양 미래 전망은?】 보도와 관련해 담양군 슬로시티사무국 실무책임자인 정호 사무국장의 칼럼을 통해 슬로시티 담양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 등에 대해 몇 차례(월2회) 칼럼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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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를 순우리말로 ‘넉넉한 고을’ 이라고 하면 걸맞겠다는 분이 있다. 
방송통신대 최봉영 교수이다. 최 교수는 슬로시티를 상징하는 달팽이의 느린 걸음이 단순히 느리다기 보단 여유롭고 넉넉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담양출신 김정원 시인도 같은 생각인 듯 “장대비 그친 뒤/ 구름은 달팽이 걸음으로/ 깍아 지른 암벽을 핧으며/ 삼인산 정상에 오른다/ 삶은 고독하고 우직한 소걸음인 듯/ 외길을 싸목싸목 걸어 이른 산마루/ 부용정에 걸터앉아/ 땀 닦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머리 들어 멀리 쳐다보니/ 티 없는 하늘은 시원한 동해이다./”
달팽이 걸음으로 오른 산마루의 하늘이 시원한 동해로 보였다.”고 하니 이보다 더 넉넉할 순 없지 않은가? 
가뭄이 길어지고 있다. 어젯밤 구름이 잔뜩 끼고 개구리가 떼창을 하길래 비님이 오시려나 했으나 애만 탈 뿐이었다. 마을마다 있는 물 없는 물 끌어대고 있다. 천수답은 꿈도 못 꾼다. 해가 거듭될수록 더욱 심해질 터, 농민들의 시름. 이를 어찌하면 좋은가? 

지난 5월 14일 슬로시티 담양 해동문화예술촌 오색동에서 특별한 공연이 있었다. 
금년 82세의 세계적인 현대무용가 홍신자 선생의 백남준 탄생 90주년 기념공연이었다. 이른바 ‘홍신자의 오마주’. 오마주는 ‘존중’이라는 뜻의 프랑스 말이다. 홍신자 선생은 80세 되던 해 11월 ‘나의 죽음을 보았다’며 본인의 장례식을 바닷가에서 공연형식으로 치루었다. 장례식 이후 공연이 ‘홍신자의 존중’이었으니 이날 공연은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백남준 생애 90주년 기념공연 이었으나 백남준 개인을 넘어 그 시대를 살아온 모든 이들을 추모하는 공연이었다. 
1932년부터 2022년 오월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명멸해 갔는가? 우리 어메, 우리 누이, 우리 동생, 우리 아이도 있었을 것이고 섬과 육지, 산과 바다에서 오뉴월에도 떠났고 시월에도 떠났을 중학생, 여고생, 대학생, 시인, 노동자, 농민들도 있지 않았겠는가? 팔순 노인에게 남아있는 솟짓, 발짓, 고갯짓, 순결한 할미꽃 홍신자의 혼신을 다한 영혼의 몸짓 40분. 한마디로 기우제였다. 눈물이 쏟아졌다. 

가뭄을 이기려면 이렇듯 혼신을 다해야 한다. 마을공동체의 온 마음이 모여야 한다. 죽음 너머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마을주민들이 갖게 되면 마른 논에 물을 댈 수 있다. 마을 지하수 관정을 총동원하기로 기꺼이 마음을 내고, 윗 논부터 아랫 논까지 차근차근 물을 대면 슬기롭게 헤쳐갈 수 있다. 물 한 방울까지 다 모아야 한다. 영끌이다. 그러면 비로소 마을에 감동의 눈물꽃이 피고 웃음꽃이 만발할 것이다. 

이래야 모두가 행복한 마을공동체, 여행자가 제일 가고 싶어하는 최고의 여행지가 된다. 이 마을이 바로 ‘그 사람, 에코사피엔스’가 사는 슬로시티 마을이다. 슬로시티 세 가지 기둥은 ‘마을자치공동체, 마을경제공동체, 마을교육공동체’이다. 

세 가지 목표는 ‘탄소중립, 자립, 생명안전’이다. ‘자치, 경제, 교육공동체’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이 가뭄에 마음만 모으면 세 가지 기둥을 단박에 세울 수 있다. 논에 물을 가득 채우는 것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일이고, 함께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자립의 길이며, 애타는 마음을 더불어 나누는 것이 생명안전의 길 아닌가? 
달팽이 걸음으로 삼인산에 오른 시인은 “세상의 모든 풍경은 걸음의 속도에 맞추어져 있고, 가장 맑은 렌즈는 등줄기에 흐르는 땀으로 닦은 눈”이라고 말한다. 

달팽이 걸음으로 마을 구석구석을 알뜰하게 살피자. 물이 가득한 논을 찾아오는 여행자를 만나고 싶지 않은가? 달팽이 걸음으로 마을주민들의 마음을 살뜰하게 챙기자. 먼지 앉은 장독대에 윤기가 날 것이며, 집집마다 묵혀버린 씨간장과 씨된장이 토방으로 나올 것이다. 그리곤 된장찌개 푹 끓여 한 상 차리자. 그러면 마을주민이든 여행자든 가릴 것 없이 한 식구가 되어 도란도란, 쓰담쓰담하며 희미해진 옛 고향 집의 아랫목이 생각날 것이다. 그래야 도시에서 팍팍하게 사는 출향민에게 대꽃 피는 고향마을로 언제든 돌아오라거나, 고향을 상실한 채 갈 곳을 잃은 이들에게 물이 가득한 논을 보러 완행열차 타고 달팽이 걸음으로 오시라고, 전화 한 통 넣을 수 있지 않겠는가?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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