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출근길, 나는 먼저 고서 고읍리의 어머니 집에 들린다. 
광주집에서 나오는 시간이 얼추 7시 무렵인데 20분 정도면 고향집에 도착한다. 그런데 출발이 20분만 늦어도 소요되는 시간이 30분으로 10분이 더 늘어난다. 나들목에서 이뤄지는 만성적인 체증을 피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약간의 짜증스러움은 있지만 그럼에도 다른 도시에 비해 광주는 약과라서 응당 게으른 나를 탓할 뿐이다. 

집에 도착하면 요즘은 깨 널고 말리는 일로 분주한 어머니를 뵌다. 
참깨를 수확하는 철이라 벨 것은 베고, 묶고, 나르고, 털고, 널고 그러는게 지난 2주간 쉼없이 이어졌다. 저번 봄에 씨앗을 뿌렸는데 어찌나 가물었던지 주전자를 들고 다섯 번이나 물을 주었던 지라 내 자신도 각별해지는 것이 이번 수확이다. 그러다 보면 어머니는 논에 물꼬를 보고 오라는 청을 자주 하신다. 두 곳에 있는 논에 물꼬를 보러 가면 자연스럽게 고읍지라는 저수지에 오르게 된다. 논이 저수지 아래에 있음에도 응당 가봐야 할 것처럼 끄는 힘이 있다. 논에 물들어오고, 통장에 돈 들어오고, 아이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 보다 더 행복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사실 이 모든 것의 발단은 물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 같다. 

어릴 적 그 저수지가 말라가고, 동네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논두렁을 걷는 발걸음이 분주해 지는 모습은 여러 번 경험했었다. 그런 탓인지 저수지의 물이 벙벙하게 차오르면 마치 내 일처럼 보람차게 느꼈던 시절이었다. 천상 하늘만 바라보는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동네 저수지에 광주호의 물이 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마을출신의 노병인군수가 마을사람들의 한을 풀어준 것이라고 동네사람들은 작은 목소리로 그분을 칭송했다. 그리고 슬그머니 그분의 공적을 기리는 공덕비를 세우기도 했다. 행여 제 고향에 대한 배려나 편견으로 보여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저수지에 올라보면 금방 알 수 있기에 나 또한 그런 훌륭한 일을 해주는 향촌 출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저수지의 물이 내려오는 수로의 물줄기가 세찬 소리를 내면 덩달아 기운이 불끈 솟아지는 그런 논으로 가는 길은 이제는 얄미운 뱀이나 두더지가 구멍을 파서 흘러내리는가를 살뜰히 살피는 것도 중요한 일과중의 하나가 되었다. 물걱정이 없다는 것이 내심 고향 마을사람들의 든든한 뒷심이 되고 있었던 것이고, 도시 사는 내 자신 또한 그런 혜택을 입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든든해지는 한 두 시간을 고서에서 보내고 읍내의 책방으로 돌아올 때 백동리 사거리에서 멈칫 거린다. 거진 1년이 다 되가는 듯한 심리적 느낌이다. 바로 읍내 중앙로 길에서 이뤄지는 공사 탓이다. 대저 그 공사가 무엇 때문에 이뤄지는지 조차 모르고, 매일 공사차량과 크레인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교통 통제를 하고 어느 때는 수신호에 따라 돌고 돌아 객사리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 몹시도 짜증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지난 수해로 중앙로의 일부 상가와 주택이 침수되는 광경을 목도했던 지라 수해 방지를 위한 공사로 알았는데, 도무지 공사의 내용을 알 턱이 없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보니 전선지중화 공사로 나온다. 도시미관을 위해 중요한 공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때 허벅지까지 차 오른 물길이 생생하다. 당시야 관방제림을 거의 넘어설 듯이 뿌려대는 집중강우라서 그럴수도 있겠다 라고 여겼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중화 보다 급한 것이 배수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더 먼저 아닌가 라는 생각이 인다. 
서울에서도 이번 물난리를 겪으며 이전에 논의되었던 배수터널까지도 다시 시작되는 마당인데, 심지어 읍내를 넘어서는 물줄기를 잡아주기 위해 담양부사 성이성이 조선 인조때인 1648년에 관방제림까지 구축했던 담양읍이 지난 물난리를 겪고도 방관해서야 되겠느냐는 볼 메인 하소연을 해 본다. 

혁신도시니, 창조도시니, 문화도시니, 인문도시니 하면서 배우겠다고 야단치는 세상에 조선 인조때의 관방제림은 동시대 치수관리의 모범사례가 아니었을까? 여러 생각이 겹쳐진다. 물이 부족한 저수지에 도수펌프를 설치해서 시름을 해소해 주었던 지방관과 물이 넘치는 곳에 제방과 숲을 조성하여 수해로부터 안전하고 아름다운 경관까지 선물로 주었던 지방관이 있었던 도시 담양. 21세기 생태적인 우수성이 수많은 방문자를 모셔오는 도시가 정작 그 중심에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수해로부터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고민하고 있어서야 되겠는지 말이다. 
아울러 그 공사현장의 공사구간 안내나 깔끔한 현장관리는 요원한지도 궁금할 따름이다. 오늘도 백동사거리에서 직진을 할지 좌회전을 할지 고민했던 흔적을 토로한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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