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뉴스는 기획취재 【슬로시티 담양 미래 전망은?】 보도와 관련해 담양군 슬로시티사무국 실무책임자인 정호 사무국장의 칼럼을 통해 슬로시티 담양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 등에 대해 몇 차례(월2회) 칼럼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

정호 사무국장(프로필)

· 담양군 슬로시티사무국 국장
· 담양군자치분권추진협의회 위원
· 담양교육참여위원회 위원장
· 전남도교육참여위원회 미래혁신교육특별위원회위원장
· 대숲교육공동체 대표 
· 창평향교 장의

말복 날, 삶은 달걀 두 개와 멸치국수 한 그릇 시켰으나 한 사람에 대한 아득한 미안함 때문에 목이 메어 수저를 들 수 없다. 흐르는 백진강 여울에 떠오르는 소중한 그 사람의 얼굴은 고인 눈물에 흐릿해 보이고, 지리산 단풍처럼 고왔던 그 사람의 모진 삶은 심장 속에 또렷하다. 어찌 잊으랴! 할 수만 있다면 그 시절 철없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이하 성이성 담양부사와 춘향 이야기) 

때는 광해군 3년 1612년, 당시 내 나이 열여섯이었다. 아버님 성안의가 남원부사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발령이 날 무렵, 광한루에서 우연히 만난 춘향이와 첫사랑을 맺은 이도령. 나의 본래 이름은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이다. 당시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한 여자를 수절케 하여 천추의 한을 남긴 천하의 못난 놈이다. 나는 1595년 선조 28년 임진왜란 중 태어났으니 전쟁세대이다. 반정으로 정권을 잡았으나 조선의 가장 치욕적인 왕으로 남은 인조가 나와 동갑이다. 우리가 살았던 시대는 明·淸 교체기에 극도의 내우외환이 반복되던 시기였다. 나의 스승 조경남이 남긴 저서 그대로 〈난중잡록–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까지의 기록〉이었다.

국내정세는 임진왜란을 수습해야 했고, 국제정세는 명이 쇠퇴하고 청이 급부상하고 있었다, 중립외교는 생존전략이었고, 명을 사대하는 것은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짓이었다. 나는 1623년 향명배금(向明排金) 노선의 인조반정세력이 집권한 후, 정묘호란이 일어난 1627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엔 사헌부 지평 벼슬을 하고 있었다. 요즘 감사원장이다. 높은 벼슬이다. 그러나 타고난 성정과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 조경남, 강복성으로 이어지는 학맥을 계승하고 있던 터라 임기 중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남한산성에서 완강하게 버틴 조선은 결국 59일 만에 항복하고 말았다. 청 태조에게 무릎을 꿇은 인조는 세 번 절할 때마다 세 번씩 머리를 땅에 찧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삼전도 굴욕으로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자존심을 무너지게 했다. 

당시 조선 민중의 형편과 처지를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으랴. 나는 무너진 나라의 실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민생을 방치할 수 없었다. 이후 나의 공직생활은 암행어사 6년, 담양부사 2년을 포함한 지방행정관이었다. 호남을 암행할 때의 일이다. 호남 12고을의 수령들이 잔치를 베풀었다. 이때 나는 걸인 행색으로 연회장에 참석했다. 이들은 나를 조롱하며 '그대가 시를 지으면 종일토록 놀고, 짓지 못하면 가라.'고 했다. 나는 곧 바로한시를 한 수 읊었고, 이어 변사또 같은 6명의 부패한 수령들을 즉석에서 봉고 파직시켰다. 
그때 지은 한시를 다시 읊어 보겠다. 당신이 만일 부끄럽다면 죄를 면할 것이요, 부끄럽지 않다면 당신도 파면 대상이요 탄핵감이다.
 
“금준미주金樽美酒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낙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라.”
“금동이의 술은 만 백성의 피요/ 옥반의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농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래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더라.”   

내가 지금의 자강도 강계부사로 일할 때는 살아있는 부처라는 소리를 들었다. 여진족 등의 약탈과 흉년이 겹쳐 극도의 민생고에 시달리고 있던 백성들의 삼세(蔘稅, 산삼과 인삼)를 모두 면제해 버렸더니 부처가 환생했다느니, 생불이라느니 별소리를 다했다. 이는 나를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소리다. 나는 16살 철없던 시절 만난 첫사랑 춘향이를 버리고 출세한 나쁜 남자이다. 나는 평생 춘향이를 잊지 못했다. 1647년 11월 25일 52살 때 순천을 암행하던 중 신분이 노출되어 소환된 적이 있다. 나는 일주일을 걸어 12월 1일 남원을 찾았다. 백방으로 춘향이를 찾았으나 만나질 못했다. 그 쓸쓸한 그리움을 달랠 수 없어 시 한 수를 남겼다. 
“서리와 함께 난간에 앉으니/ 눈은 뜰에 하얗게 깔려있고/ 눈 쌓인 대숲은 흰그늘이다/ 나는 소년 시절의 일을 생각하며/ 밤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이예 춘향아 이리 와 업히거라/ 춘향이 부끄러워 하니/ 부끄럽기는 무엇이 부끄러워/ 이왕에 다 아는 바니/ 어서 와 업히거라/ 춘향을 업고/ 아따 그 계집 똥집 장히 무겁다/ 네가 내 등에 업히니 마음이 어떠냐/ 한껏 나게 좋아요/ 좋냐/ 좋아요/ 나도 좋다/ 내가 좋은 말을 할테니 네가 대답해 보아라/ 네가 금이지야/ 금이라니 당치 않소/ 그럼 네가 해당화냐/ 해당화라니 당치 않소/ 그러면 네가 반달이냐/ 반달이라니 당치 않소/ 네가 그러면 무엇이냐/ 날 호려 먹는 불여우냐/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네가 무엇을 먹으려느냐/ 생률 속률을 먹으려느냐/ 아니 그것도 내사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려느냐/ 시금 털털 개살구를 먹으려느냐/ 아니 그것도 내사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려느냐/ 돌 잡아 주랴/ 게 잡아 주랴/ 내 몸 통째 먹으려느냐/ 어화 둥둥 내 사랑아”

철없던 시절 이토록 진하게 놀았으니 이를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이듬해 1648년 여름 나는 남원이 가까운 담양부사로 부임했다. 
담양은 영산강의 시원이라 장마철이면 강둑이 범람하여 피해가 막심했다. 2년에 걸쳐 제방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심었다. 제방에 나무를 심으면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오히려 제방 둑을 무너뜨린다고 하여 심지 않는 것이 당시 관행이었다. 그러나 나는 뿌리를 깊게 내리고 비바람에 강한 토종나무만 골라 심었다. 푸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184그루를 심었다. 모진 세월 수모를 견뎌 낸 춘향이를 생각하며 아득한 그리움으로 심었다. 못다 한 사랑, 애린 마음으로 심은 관방제림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는 모두 첫사랑 춘향이를 자유롭게 만나고 싶은 쓸쓸한 늙은이의 몸이다. 관방제림 숲속에 새가 날아들면 춘향이 네가 온 줄로 알겠다. 춘향아! 보고 싶구나!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