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전고필 위원의 <주간시평>을 읽다가 떠오른 단어가 ‘물꼬’였다. 
내가 코딱지 만한 우리 논배미 왔다갔다 하며 부모님 부탁으로 물꼬 점검이라도 한 게 초등학교 시절이었으니 1970년대 이야기다. 그 시절엔 요즘처럼 저수지도 많지 않았고, 관개 또는 수리시설은 미비했다. 당연히 모내기를 시작할 무렵부터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가 가뭄이라도 들면 물 전쟁을 치러야했다. 부족한 물을 채우려면 한 방울의 물이라도 새지 않도록 물꼬 단속은 당연하고 논두렁에 어디 구멍이라도 났나 늘 노심초사 감시하고 둘러봐야 했다. 특히, 모내기철에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는 위에서 내려오는 물이 우리 논으로 잘 들어가도록 물꼬높이를 잘 조절하거나 정비해야 했다. 개울에서 흘러내린 물이 우리 논으로만 들어오도록 물꼬를 터놓아도 안되었다. 아래 논도 물을 대야하니 우리 논으로 적당히, 나머지는 밑으로 흘려 아래 논도 물맛을 보도록 해야 했다. 물꼬를 둘러싼 싸움은 내려오는 물을 자기 논으로만 돌려놓을 때 발생했다. 욕심 사나운 논 주인이 위에서 물줄기를 온통 자기 논으로만 돌려놓으면 으레 아래쪽 다른 논 주인들은 몰래 올라가 위쪽 논 물꼬를 막아버리고 물을 아래로 흘렸고 밤새 이 물줄기를 둘러싼 전쟁에 논둑엔 농민들의 발소리가 쿵쾅거렸다. 그러다가 필경 삿대질이 오가고 멱살잡이는 기본이었다. 칼부림, 삽부림도 다반사였다. 내가 구경한 물꼬싸움도 눈에 선하다. 물꼬확보 전쟁을 하시던 부모님도 많이 보았고, 밤새워 우리 논으로 물이 들어가는 지 물꼬 앞에서 보초를 서보기도 했다.

이런 건 이제 옛 이야기가 되었다. 
요즘이야 워낙 물관리가 잘 되어 어지간한 가뭄은 티도 안나고 넘어간다. 저수지는 많아졌고 수리시설도 잘 만들어져 물싸움할 필요 없이 물이 각 논으로 잘 배달되기 때문이다. 꼭 저수지가 없는, 과거로 치면 천수답 지역도 관정을 파고 양수기로 물을 대니 매년 풍년이다. 농사짓기 편해졌다. 과거 죽기 살기로 ‘내논부터 물대기 전쟁’을 벌여 모를 심어보고자 했던 것은 그 농사 아니면 사실상 굶어죽기 십상이고 자식농사 또한 불가능했기 때문이리라. 쌀은 절대적 주식이었지만 늘 부족했고, 그만큼 귀하고 돈도 되는 금쪽같은 물건이었다. 
나락 한 톨 어디 흘릴까봐 조심조심 낫질을 하고 추수 뒤 떨어진 벼 이삭이라도 다시 줍기 위해 늦가을 들판을 훓었던 추억까지 이야기하자면 워낙 ‘옛 이야기’가 되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된 스토리도 아니다. 그 사이 우리의 농사환경이 워낙에 좋아져서 모두 잊고 있지만 말이다.
‘농사라떼’ 이야기가 길었다. 
모내기를 하기 위한 물꼬전쟁을 치를 만큼 쌀에 목숨 걸었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 데, 쌀 한 톨을 무슨 금가루 다루듯 소중히 여기던 게 눈에 선한데 세상은 급변해 풍년 쌀이 웬수 취급 당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서 물꼬 이야기부터 꺼냈다. 
쌀값이 똥값 돼 농민들이 울상이다. 지난 주 전국 곳곳에서 쌀값 보장을 요구하는 농민들이 애지중지 키운 논의 벼를 갈아 엎어버리는 시위가 벌어졌다. 터무니없이 떨어진 쌀값을 좀 보장해달라는 주장을 하며 삭발도 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귀한 벼가, 자식처럼 키운 벼가 이제 막 누렇게 익어가고, 풍년가 부르며 수확해야 할 텐도 갈아엎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농민들에 따르면 국내 쌀값은 지난 15일 기준 20㎏에 4만2,522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5만5,630원에 비해 23.5%나 떨어졌다. 전년대비 하락 폭으로는 45년 만에 최대 기록이라는 게 농민들 주장이고 언론보도다. 반면 지난달 말 기준 쌀 재고량은 48만6천t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 28만t에 비해 70%가량 늘어났단다. 이러니 올 햅쌀이 나올 경우 가격의 추가 폭락은 불가피한 상황이고 그럴 경우 농협의 햅쌀 수매는 줄어들 수 밖에 없으니 농민들의 애가 타는 것이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쌀값의 계속적인 하락은 복합적이다. 여러 요인에 의해 농사는 거의 매년 풍년인데 쌀 소비는 크게 줄어들고 있다. 20년 전에 비해 쌀 소비가 40%나 줄었다는 통계도 있다. 우리가 쌀밥은 커녕 밥을 안 먹거나 덜 먹는다는 거다. 거기에 외국산 쌀 수입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정부의 가격조절정책 부재, 적절한 재배면적 조절이 안되는 상황 등이 종합적으로 빚은 안타까운 사태로 보인다. 아직도 쌀농사에 대한 절대적 의존도가 높은 농민들의 비중이 높고 갈수록 소비는 줄어들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들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보면 앞으로도 당분간은 개선의 여지는 안 보인다.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 한.

지금 가격으로 산정하면, 우리가 지금 먹는 밥 한 공기에 들어가는 쌀 원가가 300원도 안되는 모양이다. 짜장면 한 그릇도 5천 원이 넘는데 말이다. 그래서 농민들은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이라는 구호까지 들고 나왔다.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대 어른들이 아시면 뒤로 자빠질 것 같지만 현실은 그러한 것 같다. 정부가 당장의 농민들 눈물을 닦아주고, 또한 긴 미래를 내다보고 적절한 대안을 내놓을 때까지 ‘300원짜리 쌀밥’이라도 좀 많이 먹어야 할 것 같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