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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형세가 연꽃을 닮은 ‘연화촌’동네한바퀴(54) 창평면 유곡리 연화촌

마을 형세가 연꽃을 닮은 ‘연화촌’

▲연화촌 마을 전경

담양 이주 2년이 된 해에 마을활동가로 활동하면서 ‘연화촌 마을’에 대해 들었다. 
처음에는 이름이 예뻐서 끌렸었고 그다음에는 마을사업들을 열심히 하고 있어서 관심이 더 갔다. 얼마 전 창평에서 연화촌 이장님을 우연히 만난 덕분에 자연스레 취재 일정이 잡혔다. 농사와 축산업을 병행하느라 바쁜데 그래도 일정을 잡아보자고 흔쾌히 답해주신 덕분이었다.

날씨도 덥고 이장님께 폐를 덜 끼쳐드리고자 저녁 6시경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연화촌은 현재 27호가 살고 있으며 그중 5호는 이주민이다. 
마을 주민분께 “어르신 안녕하세요. 저는 마을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 왔는데 이장님 댁이 어디인가요?”라고 묻자 “이장님 금방 들어가셨는데요.”라고 대답해주신다. 
잠시 후 소먹이 주는 시간이라며 분주해 하시는 이장님께 천천히 하시라고 하고 회관 앞에 운동하러 나오신 성동댁에게 운동 삼아 마을 한 바퀴 같이 돌아줄 수 있는지 여쭈자 좋다고 하신다. 연화촌 마을 자랑해달라고 했더니 “마을 사람들이 인심 좋고 이장님이 너무 좋다.”고 하신다. “이전에 10년간 이장과 부녀 회장직을 맡아준 송태영 부부도 정말 잘했다.”고 하시면서... 

▲마을주민 휴식처 연화정

바로 마을정자 연화정(蓮花亭)에 가봤다. 
정자 주위에 200~300년 이상 된 왕버들 3그루와 느티나무 1그루가 수형도 수피도 정말 아름다웠다. 성동댁과 연화정에 도착했을 때는 한 사람이 정자에 앉아있더니 이내 5명으로 늘었다. 어디에서 왜 왔는지 묻자 이곳이 시원해서 ‘차동마을’에서 쉬러 왔다고 한다. 연화정 바로 옆에 광덕천이 있고 주위가 훤히 터져 있어 시원해서 주변 마을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성동댁과 하얀강아지

성동댁은 원래 대전면에서 살다가 창평면에 국회의원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연화촌으로 시집왔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였을까? 
“죽세품을 머리에 이고 행상을 해서 8남매를 키워, 이제 자식들은 ‘○○산업안전센터·○○은행·건축설계’ 등 좋은 직장에 다니며 다들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다.”고 얘기하는 얼굴 표정에서 자긍심이 읽힌다. 성동댁 집에 가봤다. 30년 된 개가 새끼를 한 마리 낳았다며 보여줬다. 흰색의 어여쁜 강아지를 만져볼 수 있어 좋았다. 성동댁은 무엇인가를 주고 싶어서 찾더니 텃밭 오이 하나를 물에 씻어 내 손에 쥐어줬다. 마침 허기질 시간이라 오도독 맛있게 먹으면서 마을을 돌아봤다. 골목길은 새마을사업으로 넓혀져 있고 집들은 특별히 꾸미지는 않았지만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 마을 전체 분위기가 좋았다.

▲이장님 댁

이장님의 소 먹이주기가 끝났을 즈음 이장님 댁으로 갔다. 
이장님 집은 양옥집 한 동과 한옥 한 동이 한 집터 안에 같이 있었다. 양옥에는 현재 가족이 살고 있고,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흙벽으로 지어진 한옥은 수확한 농산물이나 농기구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고 있는 데 오래된 흔적의 색이 아름답기도 하고 깨끗하게 관리되어 자꾸만 눈이 갔다. 희망컨대 될 수 있다면 이 한옥이 오랫동안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이장님과 함께 축사로 향하는 길에 마을 주민 두 분이 “이장님 저희 휴가 가요. 다녀와서 밥 사드릴게요.”라며 마치 친척 오빠에게 얘기하듯 친근하다. 광주에 살면서 마을에 화실을 지어 사용하는 분들이라고 했다.

이장님 인기의 비결이 무엇인가 묻자 이장님은 “별다른 것은 없어요. 정보는 알려주고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 등은 나눠 먹이요.”라고 했다.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나누고 친절하게 대하는 데에 익숙해서 이주민들과 마을 사람들과의 소통도 아주 좋다고 했다. 이장님은 50여 년간 쭉 소를 키웠다고 해서 축사가 궁금해졌다. 논둑을 걸어서 이장님 축사로 갔다. 쌀 냄새가 풍겨와서 벼꽃이 피었음을 알게 되었다. 향기가 정말 고소해서 나도 모르게 심호흡으로 벼꽃 향을 음미했다. 
50년 소 키우는 동안 소 가격이 폭락할 때는 어떻게 했는지 묻자 그래도 계속 키웠다고 했다. “저는 한번 하면 꾸준히 합니다.”라고 했다. 축사에 도착해서 소들을 보니 표정이 웃는 얼굴의 이장님과 닮은꼴인 듯했다. 축사가 바닥이 고실고실해서 연유를 묻자 환풍기를 틀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50년의 노하우가 있어서 뭐가 달라도 다른듯하다.

▲옛 시골집 나무 대문

다시 마을회관으로 돌아오니 노인회장님이 오셨다. 
성함을 여쭤보니 이분이 바로 성동댁이 칭찬했던 송태영 전임 이장님이었다. 노인회장님께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옛날 현감이 이 마을을 지나가다가 마을의 형세가 연꽃과 같으니 ‘연화촌’으로 고쳐 부르고, 화재가 빈번한 것은 마을 앞산이 화성산(火城山)이라서 그러니 수성산(水城山)으로 바꿔 부르도록 했다. 마을 이름과 산 이름을 바꿔 부른 이후 실제로 화재가 없어져 현감 덕분이라고 생각했다.’는 설명을 해주셔서 ‘연화촌’의 유래를 알 수 있었다.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온다는 예보가 있으니 지인이나 가족들과 함께 ‘연화정’으로 피서와야겠다./ 양홍숙 군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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