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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시평【대숲소리】(49)/이 가을에 시를 읊자고재종 칼럼위원

“너희들은 어째서 시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그것으로 감흥을 자아낼 수 있고, 그것으로 사물을 살필 수 있고, 그것으로 여럿이 모일 수 있고, 그것으로 원망할 수 있으며,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고, 또한 시로써 새나 짐승, 풀, 나무들의 이름도 많이 알게 된다.---그러므로 시를 배우지 않으면 할 말이 없다.” 2,500년 전의 공자님 말씀이다. 
  
이 가을에 웬 공자님 말씀인가? 이 가을에 웬 시 타령인가? 
태풍예보 속에서도 벼이삭은 피어오르고, 궁극엔 태풍을 이기고 들판은 황금이삭으로 일렁일 것이다. 감들은 붉게 읽어가고, 길섶엔 코스모스니 구절초 등이 그 청초한 꽃을 하늘거리겠지. 그러니 시 쓰는 사람으로서 왜 시 한 수 생각나지 않겠는가.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서정주)거나,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고은)라던 시인들처럼, 가을엔 왠지 눈이 맑아지고 가슴이 틔어 시를 읊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공자님 말씀을 좀 현대적으로 풀면, 시는 그것으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노래할 수 있고, 어떤 존재나 사물을 통해 삶의 깊은 지혜를 발견할 수 있고, 여럿이 모여 화락할 수 있다. 또한 불의와 부조리에 분노할 수 있고, 가족과 이웃의 눈물겨운 삶의 애환을 돌아볼 수 있는가 하면, 나라와 민족의 올바른 길을 물을 수 있다. 그리고 새나 짐승이나 풀이나 나무 등 여러 동식물에 대한 호명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을 꿈꿀 수 있고, 무엇보다도 애인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이런 시를 왜 배우려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는 공무원을 시로 뽑는 나라였다. 
과거시험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를 배우지 않아 아예 할 말이 없어지니, 핸드폰을 입에 댄 여고생의 입에서 연신 쌍소리가 터져 나온다. 대낮 음식점에 모인 주부들의 입에서 줄곧 피부미용과 아파트타령만 남발하고, 피시방에서 죽쳐대는 대학생들의 입에서 게임소식과 포르노이야기만 담배연기처럼 뿜어 나온다. 그리고 늘 후줄근한 우리 아버지들의 입에선 돈타령만 끝 간 데 없이 새어나온다.   
“사랑스런 시여, 예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여, 우리 마음속에 창조의 힘을 불러일으키며 우리를 신성(神性)으로 몰고 가는 것이여! ---내가 너에게 바치던 사랑은 수많은 환멸도 꺾지 못했다.” 프랑스의 시인 아폴리네르의 말이다. 그는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허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라는 명시를 남긴 바 있다. 이런 전문적인 시인이 아니더라도 가을엔 너나없이 시를 읊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주말에 충청남도 예산 향교에서 열린 “고재종 시인의 사랑콘서트”에 주인공이 되어 다녀왔다. 향교의 좁은 마당에 지역의 유림, 문화예술인들, 마을주부와 노인 할머니들과 대학생들이 빼곡하게 모여 나의 강의와 토크에 주목해주었다. 
독한 가을모기에 다리를 쏘이고, 벌써 밀려든 한기에 떨면서도 여러 사람들이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해주는 가운데 2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양반 동네의 향교에서 이런 시 행사를 벌인 것도 감동이었지만, 그들에겐 생소할 시에 호응해주는 것 또한 콧등을 시큰하게 하는 일이었다.
식전 시간이 있어서 잠깐 카페에 들렀는데, 가는 길에 어느 여선생이 “선생님, 언제부턴가 바람이 좋아져요. 왜 그럴까요?”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엉뚱하게 “가을이잖아요. 이제 시를 쓰겠네요”하고 말해버렸다. 세상의 온갖 것과 관계하고 다니는 바람이 좋아지니, 세상의 온갖 것에 관계하는 시를 쓸 수밖에 없잖은가. 바람 불어 좋은 이 가을날, 세상만물을 사랑하려거든, 우리 모두 시를 읊자. 평생 시 한 수 읊지 않고 화장장의 불세례를 받을 것인가*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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