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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의 문화에세이(31)전고필(문화기획가, 향토사전문책방 이목구심서 대표)

다미담 예술구의 월담을 보면서

‘담을 넘는다’ 라는 말에는 일정한 공식이 없을 듯하다. 다만 다양한 변주가 있을 뿐이다. 
문화분야에서 변주는 먼저 포용성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이를테면 나만 독보적이라고 하면 상대는 끼어 들 틈이 없다.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거려주며 은은한 눈길을 보내며 서로의 의지처이자 비빌 언덕이 되어주며 공감하고 공명하는 것이 문화의 힘이다. 

담양출신 손택수 시인의 시를 평한 평론가 신형철 교수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받침의 모서리가 닳으면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사각이 원이 되는 기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말을 좀 들어야 한다. 네 말이 내 모서리를 갉아 먹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너의 사연을 먼저 수락하지 않고서는 내가 네게로 갈수가 없는 것이다. 서정시가 세상과 연애하는 방식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내 말을 하기전에 먼저 너의 사연을 받아 안지 않으면 내 말이 둥글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일 것이다.”라며 70년대산 서정시의 젊은 본령으로 손택수 시인을 평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이 수록된 ‘느낌의 공동체 ’라는 평론집을 수시로 들여다보는 축에 속한다. 
내 선배 한분은 아예 그 책 전부를 필사하기도 했음을 알고 있다. 상대방에게 내 귀를 내 마음을 열어준다는 것이 갖는 의미는 어쩌면 관계의 시작이다. 눈으로 섬과 섬 사이를 이어주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라고 얘기한 이문재 시인의 시어와 닮아있다. 

이달 초 다미담예술구에서 열린 야시장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가졌다.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형성된 20여 채의 건물이 완공될 2019년 나는 담양에 책방을 열었다.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책으로 사람과 소통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워낙에 고풍스러운 책, 꼰대스러운 책인 향토사에 사람들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쉽게 낙담하거나 좌절할 이유는 없었다. 문화분야의 다른 일상의 일들은 늘 따라주었기 때문에 그 일과 병행하며 다미담보다 먼저 형성된 담빛길에서 나름 활기차게 3년여를 지내왔다.

그러는 사이에 많은 이웃들이 떠나갔다. 크게는 지역의 창조인력이라 할 수 있는 로컬크리에이터들인 이들은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이들이었다. 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아는 분들인데, 그 손의 끌텅이 담양은 죽세공예와 맞닿은 것인데, 이들을 초대할 때의 환대는 어느 사이 사라져 버리고, 행정이나 중간 지원조직으로부터 관심이 끊겨 버리니 행여 다시 호명하길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버린 분들이었다. 

이 광경을 보면서도 손쓸 겨를이 없는 내 자신의 한계가 아쉬움이 있었지만, 연고도 없고, 지위와 권력도 없는 상황에서 속수무책 애만 태울 뿐이었다. 그런 2019년 다미담을 실험적으로 분양 모집한다고 공고를 내고 그 결과를 들어보니 또 수많은 이들이 경쟁적으로 이곳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을 것이지만 크게는 담양의 브랜드 이미지가 예술중심의 도시, 생태도시, 인문학 도시라는 인지도와 더불어 이를 입증하듯 수많은 방문객들이 줄을 잇는 관방제림과 죽녹원과 국수거리에 인접해 있는 입지 조건이 큰 역할을 했을 법 하다. 

하지만 모집과 입주는 별개의 일이었고, 이들 공간은 각양각색의 전시와 발표회와 회의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가용시간이 많아지지 않을 때 느끼던 조바심이 있었지만 언젠가는 나름의 역할을 하리라고 기다려왔다. 그리고 문화도시추진단에서 아트마켓을 겸한 야시장 월담을 한다고 기별이 왔다. 와서 책을 팔면 어쩌냐는 제안이었지만 나는 장사보다는 이 자리를 즐기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하고 사양을 하고 개회식의 현장으로 달려갔다.

마켓을 형성한 담양의 공예인들이 매대에서 상기된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신명이 났다. 모두들 건강하게 잘 계셨던 것이다. 다소 심드렁해졌을 법한 중간 지원조직의 제안에 이렇듯 흔쾌히 나와 주신 것을 보니 스스로의 치유력이 있었는지, 아니면 행·재정적인 지원은 하지 못했어도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의 끈을 놓지 않았는지 무언가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생각했다. 

미리 찾아둔 현금을 들고 이리 저리 다니며 아름다운 수제품들을 들여보고 구매하는 즐거움을 나는 3년 만에 다시 찾았다. 그러면서 그곳의 세러들에게 여쭈었다. 이렇게 보니 반가운데 언제 또 보면 좋을까요?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매주 보면 좋지요”. “에고 그러면 문화재단이나 추진단 사람들 순직해요. 살살 한달에 한번씩 하다가 맷집 생기면 매주 하면 어때요?”. “그렇게라도 하면 좋지요”  이런 생기 넘치는 대답을 들으며 월담이 또 하나의 경계를 허문 좋은 행사라는 것을 다시금 재확인했다. 

곳곳에 차고 넘치는 행사가 있지만, 농업과 예술과 공예라는 장르가 담양문화의 심장부에서 만나고 서로 안부를 묻고 뭉칠 꺼리를 찾아내고 다시 새롭게 탄생하여 방문객들과 만나 즐거움을 주는 이런 행사야 말로 연관문화도시를 표징하는 아름다움 아닌가. 새롭게 활력을 찾은 다미담예술구의 변신은 이제 입주자 모집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농부와 입주자와 공예인과 예술인들이 일구어낼 월담이 마냥 기다려진다.  .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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