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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의 詩이야기/ 詩의 향기,삶의 황홀(31)(고재종 칼럼위원)

너를 부르마, 마음아

 안녕하십니까? 날씨가 한층 시원해졌습니다. 곧 가을걷이가 시작되겠지요. 이런 가을날 정희성의 따뜻한 사랑시 「너를 부르마」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정희성 시인은 1945년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나셨고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습니다. 대표시집으로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등이 있습니다.

너를 부르마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 하마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아도
내 가장 가까운 곳
나와 함께 숨쉬는
공기여,
시궁창에 버림받은 하늘에도
쓰러진 너를 일으켜서
나는 숨을 쉬고 싶다.
내 여기 살아야 하므로
이 땅이 나를 버려도
공기여, 새삼스레 나는 네 이름을 부른다.
내가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이름을 부른 뒤에도
그 이름 잘못 불러도 변함없는 너를 
자유여
                                        -정희성 「너를 부르마」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 할 것입니다. 사랑은 그리 멀지도, 그리 어렵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아, 사랑아, 자꾸 그냥 부를 것입니다. 아무 데도 보이지 않지만 공기처럼 우리 몸의 안팎에 있고, 공기 같은 사랑이 있어서 ‘내’가 지금 숨 쉴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사랑과 같은 게 또 하나 있습니다. 자유입니다. 지금 자유로운 자는 어떻게 우리가 자유로워졌는지를 모릅니다. 김수영 시인은 자유라는 말에는 피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피 흘리는 투쟁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피 흘려 찾은 이 자유는 공기처럼 존재하기에 그 고마움을 모릅니다. 어쩌면 자유의 고마움을 모를 때 우리는 진정 자유로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과 자유, 이 두 가지는 우리를 삶의 고독과 질곡에서 해방시킵니다. 사랑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기쁨과 풍요와 신생에 떨게 합니다. 쓸쓸하고 괴로움 많은 세상에서 사랑이 있어 우리는 그나마 삶을 희망합니다. 자유는 우리를 현실의 질곡에서 해방시킵니다. 사랑과 자유, 이 두 가지는 공기처럼 우리의 생명을 보장합니다.

 이 시에서 ‘이름’이라는 말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말로 생각하는데, 그 뜻이 여러 가지가 있다는 사실은 모를 것입니다. ‘이름’의 첫 번째 뜻은 ‘서로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이나 현상에 붙여서 부르는 일컬음’입니다. 한자어로 명칭이지요. 두 번째 뜻은 ‘사람의 성 뒤에 붙여 남과 구별하여 부르는 사람마다의 일컬음’입니다.

‘저의 이름은 똘똘이라고 합니다’ 할 때 쓰이지요. 세 번째는 성과 이름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성명’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또 ‘그는 장사여서 철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우리 회사의 이름으로 그를 추천한다’, ‘그곳은 이름 있는 곳이다.’ 등 수사법으로도 쓰입니다. 

  가을걷이가 시작되는 계절입니다. 수확의 아름다움은 두고두고 찬송을 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이런 때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하리라’라는 말을 시의 슬로건으로 삼고 오늘까지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있는 곽재구 시인의 시 「마음」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곽재구 시인은 1954년 광주에서 태어나셨고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습니다. 시집으로 『사평역에서』 등이 있습니다.

아침 저녁
방을 닦습니다
강바람이 쌓인 구석구석이며
흙냄새가 솔솔 풍기는 벽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가장 열심히 닦는 곳은
꼭 한 군데입니다
작은 창틈 사이로 아침햇살이 떨어지는 그곳
그곳에서 나는 움켜쥔 걸레 위에
내 가장 순결한 언어의 숨결들을 쏟아붓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찾아와 앉을 그 자리
언제나 비어 있지만 
언제나 꽉 차 있는 빛나는 그 자리입니다.
                                                   -곽재구, 「마음」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상의 억압으로 인한 사형선고와, 시베리아 유형과, 간질과, 도박 빚으로 평생을 고생하면서도 인류가 이룩한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죄와 벌』,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악령』 등을 쓴 작가의 문학의 모토가 별처럼 빛납니다.

  ‘우리 시대의 서정시인’으로 불리는 곽재구 시인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 모토를 자신의 시의 모토로 걸고 그동안 민중의 삶의 애환을 노래하면서도 그 빛나는 서정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별과 꽃처럼 아름다운 시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고자 애쓰는 시인의 마음은 아마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위의 시 「마음」도 시인의 사랑의 자세가 얼마나 결곡한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인은 아침저녁으로 방을 닦습니다. 구석구석과 바람벽까지 닦습니다. 그러나 매일 가장 열심히 닦는 곳은 꼭 한 군데입니다. 바로 작은 창틈 사이로 아침햇살이 떨어지는 곳입니다. 그곳은 언젠가 사랑하는 ‘당신’이 찾아와 앉을 자리입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비어 있지만 언제나 꽉 차 있는 빛나는 그 자리를 닦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시인은 언어로 말하는 자이기에 가장 순결한 언어의 숨결들을 그 자리에 쏟아 붓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입니까. 시인으로부터 가장 순결한 언어의 숨결들을 받을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아무래도 독실한 신자에겐 하느님일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 시에서 ‘숨결’이란 말은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말입니다. ‘숨’과 ‘결’이 합쳐져 된 숨결은 숨을 쉴 때의 결, 숨의 높낮이, 숨의 속도 등을 가리키는 말로 물결, 살결, 마음결 등과 같은 류의 형성원리를 갖고 있습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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