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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의 詩이야기/ 詩의 향기,삶의 황홀(32)(고재종 칼럼위원)

엄마와 작은 연가

아침저녁이면 발이 제법 쌀쌀합니다. 이럴 때 거리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군요. 바로 그 행상 이야기를 다룬 김종삼의 시 「엄마」라는 시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김종삼 시인은 1921년 황해도 운율에서 태어나 1984년 작고하신 시인으로 <북치는 소년> 등 많은 수작을 남기셨습니다.
  

 

 

아침엔 라면을 맛잇게들 먹었지
엄만 장사를 잘할 줄 모르는 행상이란다

너희들 오늘도 나와 있구나 저물어가는 산허리에

내일은 꼭 하느님의 은혜로
엄마의 지혜로 먹을거랑 입을거랑 가지고 오마

엄만 죽지 않는 계단
                                                -김종삼, 「엄마」

예전에 날품팔이 행상하는 엄마들이 많았습니다. 상이군인 주정뱅이 아버지들도 많았습니다. 파출부하고 장사하는 엄마들, 실업과 노숙의 아버지들이 지금도 많습니다. 쌀이 남아돌아 창고에서 썩어가는 세상에서 아침에 라면이나마 맛있게 먹는 가족이 있습니다. 행상하는 엄마가 장사를 잘할 줄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런 엄마를 기다리느라 아이들은 산동네 등성이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엄마의 보따리 속에는 쌀 한 봉지와 귤 몇 개와 신문지에 값싼 간고등어 한손이 라도 들어 있었으면 합니다. 아이들 과외공부를 시키기 위해 노래방 도우미로 나가는 엄마들도 있는 판국에 아이들 끼니갈망도 힘든 엄마들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엄마들은 어떻게든 아이들의 밥상을 마련합니다. 거리에 좌판을 펼치고 과일 몇 개를 팔거나, 공사판에서 못을 뽑거나, 새벽까지 포장마차에서 떨거나, 음식점에서 산더미처럼 쌓이는 그릇을 닦거나 엄마들은 끝내 아이들의 밥상을 마련합니다. 하느님의 은혜로, 엄마의 지혜로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엄마의 살과 피로 빚어낸 마술의 밥상으로 키가 컸습니다. 그 밥상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우리들의 키 눈금은 날로 자랐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죽지 않는 계단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입니다. 지금도 그런 엄마들이 세상에 참 많습니다.

여기서 ‘행상(行商)’이란 ‘도붓장사’를 가리키는데, 장사치가 물건을 가지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파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이런 도붓장사를 하는 장수들을 많이 봤습니다만 요새는 거의 사라졌지요. 

다음은 박정만의 「작은 연가」라는 시입니다. 박정만 시인은 순수 서정시인이면서도 독재의 마수에 걸려 억울하게 요절한 시인입니다. 5공 시절 중앙일보에 연재되던 한수산 소설의 필화사건으로 이유 없이 연행된 그는 이때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몸져누웠고, 이어 가정이 파괴된 채 술과 절망으로 살다가 끝내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지요.

사랑이여, 보아라 
꽃초롱 하나가 불을 밝힌다.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 
해질녘엔 저무는 강가에 와 닿는다.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流水와 같이 흘러가는 별이 보인다. 
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눈 밝히고 가다 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바람도 풀도 땅에 눕고 
사랑아, 그러면 저 초롱을 누가 끄리.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우리가 하나의 어둠이 되어 
또는 물 위에 뜬 별이 되어 
꽃초롱 앞세우고 가야 한다면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눈 밝히고 눈 밝히고 가야 한다면. 
                                                -박정만, 「작은 연가」

서두에 밝힌 대로, 그의 서러운 삶을 반영한 듯 「작은 연가」라는 시는 삶과 사랑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에서 오는 서러움이 가득합니다. 시인은 문득 어떤 발견이라도 한 듯 사랑하는 사람을 호명하며 꽃초롱 하나가 불을 밝히는 것을 보라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꽃송이 하나가 막 피어나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꽃송이가 환하고 아름다웠던지 그걸 등불의 다른 이름인 꽃초롱으로 바꾸고, 그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자고 합니다. 꽃초롱으로 밝히는 사랑은 또 얼마나 환하고 아름다울 것인지요? 

하지만 그런 우리의 사랑은 어느덧 해질녘의 강가에 와 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흐르는 물처럼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론 별이 흐릅니다. 사실 꽃은 피면 질 수밖에 없는 것, 그처럼 사랑도 어느덧 유수와 같이 흘러 서쪽의 저물녘을 맞게 되는 것, 그런데도 못 다한 사랑의 마음을 가진 시인은 유한한 '꽃'을 영원한 '별'로 환치시키며 우리도 그 별을 하나 얻어서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히자고 합니다. 눈을 밝히고 밤이건 어둠 속이건 헤쳐 가다가 우리가 진짜 “마지막 어둠”이 되면, 다시 말해 영원한 죽음을 맞게 되면 바람도 풀도 모두 땅에 누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죽어도 사랑의 꽃초롱이나 별초롱은 꺼질 수 없는 것, 그 때문에 “저 초롱을 누가 끄리”라고 진술한 것은 오히려 우리가 죽어도 “저 초롱은 누군가 계속 켤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꽃초롱’이라는 말은 꽃으로 만든 초롱을 일컫는데, 꽃을 초롱으로 미화한 은유법입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시지만, 그 밑에는 삶의 우수와 비애가 무겁게 흐르는 박정만의 작은 사랑의 노래였습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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