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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창작판소리의 맥을 잇자담양의 명창 박동실제 판소리 『열사가 학당』을 개설하며...
▲강성남 담양문화원장

 우리 민족의 전통소리인 판소리는 17세기부터 등장한 한국의 전통 음악이자 연극으로, '소리꾼' 한 명이 북을 치는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소리(노래), 아니리(말), 너름새/발림(몸짓)을 섞어 이야기를 풀어내는 구비서사시다.

다시말해 한민족이 지녀온 갖가지 음악언어와 표현방법이 총결집된 민속악의 하나이며, 현장연희에서는 일부 연극적인 표현요소까지도 구사하는 종합적 예술이다.

1. 판소리의 전래
판소리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무당이 굿을 하며 음악 소리에 맞추어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설과, 길거리 광대가 평민을 대상으로 풀어놓은 이야기가 원류라는 설, 그리고 이 둘이 서로 영향을 주며 발달했다는 혼합된 설도 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판소리는 양반층이 아닌 일반 하층민을 대상으로 시작된 예술 문화라는 것이다. 18세기에 들어 판소리는 양반층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곧 판소리는 조선 전국에서 사랑받는 문화가 되어 현재까지 전해 내려져 오고 있다.
우리가 흔히 판소리라고 일컫는 것 속에는 단가, 판소리, 창극, 승도창, 병창, 창작 판소리 등이 있다. 판소리의 오랜 역사 속에서 판소리가 이런저런 다른 것을 파생시키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해서 생겨난 것들이다. 

판소리의 유파로는 크게 두 가지로 봐도 무방한데 그것이 바로 동편제와 서편제이다. 
동편제는 섬진강을 기준으로 동쪽지역을 일컫는 것으로, 소리가 우렁차고 씩씩하며 웅장한 가락인 우조를 많이 쓴다. 발성은 무겁고 통성을 사용하며, 소리에 끝을 짧게 끊는 것이 특징이다. 굵고 웅장한 맛이 나며 기교를 부리지 않는 대마디 대장단과 함께 쇠망치로 내려 치는듯한 철성이 대부분으로 목으로 욱이는 소리제이다.
서편제는 동편제와는 달리 부침새와 시김새가 매우 정교하고 다채로우며 기교와 가공이 풍부한 소리제로써 공력이 매우 중요하다. 소리제가 전반적으로 애절하고 처절하며 한스러운 목구성으로 이루어 진 것이 특징이다. 박동실제 <심청가>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외에 동쪽도 서쪽도 아닌 ‘중고제’가 있는데 굳이 따지자면 동편제에 가까워 성량이 풍부한 사람에게 유리하다. 여기에는 근세에는 명창 송만갑 선생이 꼽히고 있으나 이후 이 기법을 쓰는 이가 없어 거의 맥이 끊겨가고 있다. 
또 ‘강산제’는 조선말 명창 박유전의 호를 딴 것으로 소리는 우렁찬 동편제를 닮았지만 서편제의 기교를 취한 소리제로써 음색이 다양하다. 
그리고 ‘동초제’는 송만갑 선생의 제자였던 고 김연수 명창의 창법을 말한다. 동초는 그의 아호로 동편제에 가까운 소리이며, 세세한 사설과 함께 뚜렷한 발음과 발성이 특징이다. 
해방이후 쇠퇴의 길을 걸어온 판소리는 정부가 지난 1964년부터 무형문화재 제도를 시행하면서 국가적 보호아래 인간문화재를 배출하게 됨에 따라 활발한 전승활동이 이루어 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 창작판소리의 역사적 흐름
창작판소리는 전통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의 5바탕 외에 20세기 이후에 새롭게 만들어진 판소리이다. 창작의 방식은 과거 판소리의 더늠의 확장과는 완전히 다른, 작가의 개성화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현대적인 창작판소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창작판소리는 작가 개인의 문제의식과 예술화 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는데, 그것은 시대성의 발현위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창작판소리의 발전과정은 그 내용과 표현방식에 있어서 새로운 양식이 출현하는 시기가 있었고 수용자의 반응 또한 크게 일었던 때가 있었다. 이것을 기본으로 하여 다섯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태동기(일제강점기∼해방후)에는 판소리의 형식과 내용이 정착된 이후 새로운 판소리의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특히 박동실은 해방후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저항한 인물들의 활약상을 가지고 열사가를 작창하여 발표하였다. 이는 당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창작판소리라고 할 수 있다.
암흑기(1950년 전반∼1960년대 전반)에는 판소리 자체가 매우 약화되었으며 이 때문에 창작판소리는 전혀 만들어지지 못하였다. 
탐색기(1960년대 후반∼1970년대 후반)에는 민족주의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판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게 되었는데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박동진은 실전판소리를 복원하는 창작판소리를 만들었다. 
모색기(1980년 전반∼1990년대 후반)에는 다양한 형태의 창작판소리가 만들어졌다. 임진택은 김지하의 담시인 <오적>, <소리내력>, <똥바다>를 판소리로 만들어냈는데 이는 판소리사에서 획기적인 일이었다. 정철호는 열사가류의 창작판소리를 만들었으며 그밖에 많은 창작판소리가 만들어졌다. 부흥기(2000년∼현재)에는 비록 시기는 짧지만 많은 창작판소리가 만들어졌다. 전주산조축제의 또랑광대 콘테스트와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창작판소리사습대회는 이러한 분위기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창작판소리의 중요성을 인식한 젊은 판소계승자들이 거리판에 창작판소리로 여러 작품들을 올려 공연을 함으로써 이러한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었다. 

3. 창작판소리대가 박동실과 열사가
창작판소리의 시작은 박만순이 쓰고 박동실이 작창하여 부른 <열사가>부터 라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박동실은 우리 담양출신이다. 판소리 창자가운데 박동실은 이념적 성격이 강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동실은 서편제의 소리를 하였다. 그는 박유전 · 이날치의 맥을 이어온 명창으로, 특히 판소리의 보급뿐 아니라 교육에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 창극단을 이끌고 활동하면서 거의 몰락위기에 있는 판소리의 보급에 힘썼으며 훌륭한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박동실은 국악계의 대부로서 대부분의 국악인이 그의 영향 아래 있었다. 특히 열사가의 창작을 비롯하여 작곡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으며, 이들 작품은 주로 '박동실 창작극단' 등에서 주요한 레파토리로 공연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박동실은 1950년경에 창극단 단장으로서 공연차 북한으로 간 후, 휴전선이 생겨남으로 내려오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이루어질 기회가 없었다. 박동실의 음반자료는 아주 드문 편인데, 최근 그가 부른 흥보가 한대목이 소개된 바 있다. 

박동실의 <열사가>는 해방 전후 이준.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등 항일 열사들의 삶을 소재로 우리민족의 드높은 기개를 사설로 담은 창작판소리다. <열사가>는 창작 직후부터 50년대 말까지 국민들의 반일정서와 맞아떨어져 전통적인 "다섯 마당"과 함께 소리판마다 애창 판소리로 불리워졌으며 당시 국내의 명창치고 부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60년대 군사정권이 한일회담을 진행하면서 사실상 "금지곡"으로 묶은 데다 일반인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사라져가 소실될 위기에까지 놓여 있다가 신나라레코드에서 8.15기념음반으로 복원하게 된 것이다. 복원작업에는 박동실의 4대 제자(한승호 김동준 장월중선 김소희) 중 한사람인 김동준 명창에게 소리를 배운 이성근 명창과 장월중선 명창의 딸인 정순임 명창이 참여했다. 현재는 담양이 고향인 권하경 명창까지 전승되어지고 있다. 우리 담양에서 2002년도 한국가사문학관내에 박동실기념비를 세우고 정순임 명창을 초빙 열사가 소리를 들은바 있다.

4. 박동실제 판소리 열사가의 맥을 잇자
조선조 판소리가 허구적 사건을 엮은 것이라면 창작판소리 「열사가」는 역사적 인물의 전기적 사실을 바탕으로 엮었다는 점에서 전통 판소리와는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음악적 표현은 전통 판소리와 차이가 없다. 창작 판소리는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를 판소리에 담아내기 위한 노력 속에서 발생한 것이다. 창작 판소리를 통한 그러한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일회적인 데 그침으로써, 구전적 전통 속에 흡수되어 생명력을 얻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으나 최근 소수의 애호가로부터 시작해서 지식인층을 거쳐 근래 다수의 일반 대중으로 관객층이 이동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상 속 에피소드를 이야기로 끄집어내어 보다 친근하고 단순한 판소리의 양식을 부각시켰고 이후 극장으로 들어가 작품의 수준을 높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판소리가 한국의 음악이라는 세계화 속에 창작 판소리의 역사는 계속 진행될 것이고, 그 과정 안에서 판소리의 전통은 전승되기도 하고 소실되기도 하며, 세계인의 공통정서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동시에 한국의 민족주의 표출의 통로로 사용될 것이다. 2000년대부터 심화된 창작판소리가 민족문화예술의 전통을 올바르게 잇고 동시대에 맞는 새로운 판소리로 계승 발전하는 모태가 담양에서 이루어졌으면 한다. 또한 담양에서 최초로 창작된 열사가(유관순, 안중근, 이준, 윤봉길)가 담양 향토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맥이 끊기지 않고 후대에 계속 전승 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에 담양문화원에서는 전승교수로서 박동실제 판소리 보존회 회장으로 활동 중인 담양이 고향인 음악박사 권하경 명창을 판소리 강사로 위촉하여 지난 10월 31일 『박동실제 판소리 열사가 학당』을 개설했다. 이를 시작으로 창작판소리에 대하여 다각적으로 연구, 창작, 실연하여 생활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새로운 소리판을 일구는 작업과 동시에 전수, 교육, 이론 정립과 판소리 보존 영상 작업을 위하여 행정뿐 아니라 예술인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로 담양이 명실상부한 창작판소리의 고장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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