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田 송희자의 【꽃차이야기】(21)
담양뉴스는 2022년 새로운 생활문화 코너로 우리 지역에서 꽃차전문가로 활동중인 茶田 송희자 님의 ‘꽃차이야기’를 월2회 게재합니다. 
茶田 송희자 님은 ‘茶田(차밭)’ 이라는 호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차와 우리 꽃을 소재로 오랜 시간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책을 펴내 국내외 명성을 얻고있는 꽃차 전문가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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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시간을 기억하는 기국차

입동이 지나고 조석으로 찬 서리가 내려앉는다. 따뜻한 차 한 잔이 그리운 계절이다. 
국화 중에서 가을부터 흰 눈이 내리는 겨울까지 핀다하여 동국이라 불리는 국화가 있다. 올 봄에 심어놓은 동국이 창문 너머로 노랗게 피어있다. 동시에 이때쯤이면 시어머님이 울타리로 남겨 놓으신 구기자 끝에는 빨간 열매가 매달린다.

그 소박하고 어여쁜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도 하고, 차(茶)로도 만들어보고, 한때는 화장품회사의 의뢰를 받아서 열매 뿐 아니라 구기자의 잎과 꽃, 뿌리에 대한 연구도 함께 했었다. 현재는 전라남도 진도의 구기자가 훌륭한 품질을 자랑하며 지역 특산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청양 또한 오랜 역사를 가진 구기자의 고향이다.

특히 청양 구기자는 알이 작고 과육이 풍부하여 오랜 기간 동안 청양 구기자를 구해 차를 만들어왔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30년이 넘게 집 주변을 지켜온 담양 시골집의 구기자부터 청양의 구기자까지, 구기자는 세월 속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주고 새로운 공부를 하게 만들어준 존재이다.

봄이면 구기자잎과 국화잎으로 차를 만들고, 겨울 들어가는 이때쯤이면 동국차와 구기자열매를 건조하여 구기자차를 만든다. 이어 한 해의 마무리를 위해 동국과 구기자를 혼합해 기국차를 만든다. 

『동의보감』, 『한의학대사전』, 『생약도감』에 의하면 국화는 간의 열을 다스리며 두통과 이명에 이롭다고 하며, 현대에 와서는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항산화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구기자는 간에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했었다. 기국차는 이 두 가지를 함께 혼합한 차로서 면역력을 증강시키고 피로회복에 도움을 주는 약차로 사랑 받아왔다.

구기자를 흐르는 물에 빠르게 세척하여 면보로 잘 감싸 전기밥솥에 넣는다. 보온으로 12시간을 두고 밥솥을 열어 확인해보면 색은 흑빛이 되어있고 향은 달콤하고 묵직하게 바뀌어 있다. 구기자를 꺼내 채반에 통풍이 잘 되게 펼쳐 2시간 동안 식힌다. 이후 50℃에서 10시간 건조를 한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나면 건조가 잘 된 것이다.

180~200℃의 고온의 솥에서 덖음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인상 깊은 것은 소리이다. 구기자를 좌우상하로 움직여주며 덖으면 기분 좋은 소리가 동굴 속에서의 울림처럼 퍼진다. 아마 여러 종류의 재료를 덖어본 사람도 구기자를 덖는 소리를 들으면 신비롭고 영롱한 소리라고 말할 것이다.

이내 윤기가 흐르기 시작하고 향도 더 감미롭게 올라오면 잔열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덖어준다. 열매는 덖기 시작할 때는 뜨겁지 않아도 열이 일정 부분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 열로 나머지를 덖어주어야 한다. 지나치게 높은 열에서 계속해서 덖으면 과육이 타서 구수한 맛은 더할 수 있지만 영양 성분이 일부 파괴될 수 있으므로 유의한다.

구기자차 한 스푼과 동국차 3~4송이를 300ml 다관에 넣고 100℃의 끓는 물을 부어 2분 간 우려내어 마신다. 흑빛의 구기자에서 농후한 수색을 풀어내고 아름다운 노란빛의 동국은 감미로운 향을 피워낸다. 목 뒤쪽을 잡아주며 입 안까지 퍼지는 향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편안함과 따뜻함을 가져다준다.

한 가지의 차를 만들어 마시기까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1년이 걸린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마침내 구기자가 열매를 맺고 국화가 피어날 즈음, 짧아진 낮 동안 정성 어린 마음으로 그것들을 거두는 농부의 손길이 차 한 잔에 담긴 시간을 더한다. 차의 맛과 향이 좋으나 도무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느껴진다면, 굳이 표현하지 않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저 기분 좋게 차를 한 모금 한 모금 넘기며 그 안에 담긴 시간들을 되짚어본다면, 차를 마시는 순간까지도 한 잔에 담겨 시간을 더하는 게 아니겠나. 기국차 한 모금을 마시며, 국화와 구기자가 일 년 내 바라보았던 찬란했던 사계절과 거쳐 온 정성 어린 손길들을 떠올린다. 마침내 옅은 노란빛 햇살 아래 향기가 온 몸으로 퍼지는 이 순간까지를 한 잔의 추억으로 담는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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