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의 피로인
양진영 작가담양뉴스는 2019년 창간4주년 기념 『기획연재Ⅲ/소설』로 ‘2019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자인 양진영 작가의 걸작 장편소설 【소쇄원의 피로인】을 연재중입니다.
소설 ‘소쇄원의 피로인’은  제7회 송순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조선왕조 정유재란때 일본으로 끌려간 소쇄원의 주인 양산보의 후손들이 고향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과정을 사료를 바탕으로 그려낸 소설입니다. 양진영 작가의 장편소설 ‘소쇄원의 피로인’은 월2회 가량 지면을 통해 연재중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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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귀환의 노래

얼마나 지났을까. 무사 대장은 눈을 연신 껌벅거렸다. 교자상 건너편에서 연신 술을 들이키는 부하의 옷이 하나로 보였다, 두 개로 보였다 했다. 
이상하다? 너무 마셨나. 
손등으로 눈을 몇 차례 훔친 뒤에 마당을 보니 거기는 더 가관이었다. 사람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고 눈을 깜박일 때마다 낮과 밤이 갈마들었다.
이런 젠장할. 좀 취했네. 

대장은 초소로 가려고 엉거주춤 일어서다 풀썩 주저앉았다. 다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 제멋대로 구르는 느낌이었다. 다시 일어나려고 해도 종아리가 종잇장 같았다. 간신히 눈을 치켜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거개의 부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상 위에 질퍽하게 구토를 하는 자도 있었고 쓰러져 세상 모르고 잠든 자도 있었다. 

몸에 마비가 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독이 전투의 한 방법이다. 엔간한 무사는 독을 다루는 법을 배우며 자랐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대장은 먹다 남긴 잔을 끌어 당겨 남은 술을 상에 쏟았다. 독은 오래 두면 아래에 가라앉는다. 그 액체에 혀를 가만히 담그던 대장은 눈을 부릅떴다.
게즙이다! 참게가 썩을 때 나오는 누런 액을 술에 탔구나.

부하들에게 소리 치려고 해도 입술만 오물거릴 뿐. 게는 부드러운 속이 부풀었다, 줄었다 하면서 몸을 차갑게 하는데 술이나 홍시와 같이 먹을 경우 독성을 띤다. 배가 아파오고, 설사를 하고, 토하게 된다. 많이 먹으면 의식이 흐릿해지고 한동안 깨어나지 못한다. 다행히 게즙을 탄 술을 먹고 죽지는 않는다. 푹 잠을 자거나 몇 번 토하면 깨어나게 된다. 

그때서야 대장은 몽인 일행이 자신들을 끌어들여 술에 독을 탄 것을 눈치챘다. 상대는 왜인을 죽일 의사는 없고 하룻밤 혼절케 하려는 듯했다. 게즙의 효능을 아는 대장은 조금 안심이 돼 술을 안 먹은 사람을 찾으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데 술을 먹지도 않은 아이와 여자들까지 비틀거렸다. 

저, 가물치탕?…… 술을 못 마시는 애와 여자들을 노리고 저기에 독을 탔구나!
그 물고기는 예로부터 임산부나 허약한 여자의 보양식으로는 최고라고 했다. 인기가 많아 제법 값이 나가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초청된 왜인 아이와 아낙네는 조선인이 공짜로 주는 가물치탕에 환장을 했다. 독초는 맛이 쓰거나 맵지만 진한 생선 국물에 넣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산을 밥 먹듯이 타는 산척패는 독초에 능했다. 감시병과 인근 주민을 하룻밤 잠 재우려 마황을 술과 가물치탕에 탔다. 초마황의 줄기를 갈아서 만드는 이 약재는 호흡 곤란이나 천식의 특효약이다. 부녀자가 뚱뚱해진 뱃살을 뺄 때 이것을 조금씩 복용하는데 한번에 너무 많은 양을 먹으면 구토, 설사를 하고 몸이 마비된다. 가물치 국물에 섞인 그 독극물을 먹었다면 이삼 일이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다. 콩이 해독제여서 콩을 갈아 마시면 내일이라도 멀쩡해 질 수 있었다. 

몽인 일행은 술과 탕을 먹고 나서 남몰래 뱉거나 익힌 콩을 한 움큼씩 씹어 먹어서 몸이 성성했다. 일본의 무사들은 말차를 마실 때도 상대가 독을 탔는지 의심해 한 잔을 돌려가면서 마신다. 조선인들도 초청한 왜인과 잔을 주고 받았지만 해독제를 동시에 복용해서 큰 탈이 없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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