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뉴스 기획연재Ⅴ(소설) 추월산 길라잡이(제31화)

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31화> 9. 1594년 2월

“아직 시한이라 장군님께서 추우실 텐데, 이 단지하고 철릭하고 직령을 좀 전해주고 오시어요.” 민경이가 보자기를 능주에게 건넸다.
덕룡이가 떠난 지 두 달이 지났다. 덕룡이의 서찰이 도착했고, 서찰을 읽은 즉시 민경이가 능주에게 보자기를 건네며 심부름을 시킨 것이었다. 덕룡이가 남원의 최담년 대감 댁에서 머물고 있으니, 남원에 다녀오라고 했다.

덕룡이에 대한 걱정을 줄이려고 틈만 나면 옷을 지었던 민경이었다. 혼인하기 전에도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다고 입소문이 자자했다. 한 번은 빨랫줄에 널린 옷을 보고 능주는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마치 자로 재면서 바느질을 한 듯 촘촘한 땀의 간격이 너무도 일률적이었다. 감침질이나 새발뜨기, 휘갑치기의 간격도 마찬가지였다. 보자기에 싸인 철릭과 직령도 그럴 것이다. 단지에는 민경이가 암벽지대에서 땄던 석청에 재운 마늘이 들어 있을 것이다. 아직 1년이 넘지 않은 석청이. 주검동에서 화상을 입었을 때, 석청이 없음을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민경이는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석청을 보물처럼 소중히 여겼다.

민경이가 장군의 추위를 들먹였지만 능주는 민경이가 진정으로 걱정한 게 무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전장에 식구를 보낸 가족이라면 누구라도 목숨이 걱정일 것이다. 크고 작은 부상 또한 걱정일 것이다. 상처에 석청이라도 바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섰음에도 추위를 핑계 삼았을 뿐이리라.
능주는 길을 나서야 했다. 민경이 부탁이 아니라도 덕룡이 안위가 궁금하기도 했다. 떡배를 위해 시묘살이까지 포기하고 기병했기에 무사하기를 빌고 또 빌었으나 여태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봄의 문턱을 넘어서지 않아, 아직 농한기였다. 아침 식전에 청소를 끝내고, 아침을 먹은 후 능주는 산에 올라 땔감을 해 오거나, 약초를 캐는 거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능주는 즉시 남원으로 가기로 했다. 민경이가 전해주라고 한 철릭과 직령은 수긍이 가지만, 꿀단지에 대한 생각은 달랐다. 한때는 꿀을 광옥이 동생이 태어나기를 바라며 따러 다녔지 않은가. 광옥이가 태어난 지 7년이 넘었으나 동생은 태어나지 않았다. 불임이 어떤 문제 때문인지 모르지만 마늘을 재운 꿀차를 마시고, 덕령이가 생판 모른 여인에게 헛심을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민경이가 안쓰러워 보였다.

능주는 주먹밥, 고구마와 아주까리기름이 담긴 사기병, 등잔, 석청 단지가 들어 있는 봇짐을 등에 지고 남원으로 향했다. 왜군이 어디에서 주둔하고 있는지 정확한 정보를 모르니, 능주는 땅거미가 질 무렵 집을 나섰다. 왜군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밤길을 택한 것이다.
집에서 점점 멀어지자, 능주는 불안함을 느꼈다. 드센 북서풍이 휘몰아치는 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왜군이 길목 어디에 매복해 있다가 조총을 쏠지 몰랐다. 들은 바에 의하면 조총은 호랑이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소리만으로도 기겁을 할 정도라고 했다. 조총 한 방에 사람 한 명이 쓰러진다고 했다. 언제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과 맞닥뜨릴지 몰랐다. 석청을 따러 전라도 지방의 산은 거지반 다녔기에 산길을 잘 알고 있었다. 길을 따라 걷지 않고, 능선이나 산길로 남원까지 갈 것이다.

산길로 남원까지 삼 일은 걸릴 텐데, 산에서 밤길을 걷는다는 것이 조총보다 두려웠다. 이파리가 아직 돋아나지 않아 낮에 산길을 걸으면 왜군 눈에 띄기 십상이라 밤길을 걸을 생각이기에 시간을 넉넉히 잡았다. 왜적이 없다면 능주 걸음으로 이틀이면 갈 거리였다. 밤길은 추위도 문제고 맹수도 걱정이었다. 능주는 생사를 운에 맡기기로 했다. 옷을 두툼하게 껴입고, 단검까지 준비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초승달도 없는 까만 밤이라 주의하며 산길을 걸었다. 그래도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중심을 잃고 휘청할 때마다, 능주는 봇짐 속 석청 단지로 손을 향했다. 잘 깨지지 않도록 천으로 겹겹이 감았지만, 돌에 부딪치면 쉽게 박살날 테니, 저절로 손이 먼저 갔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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